['얼치기' 단통법]①'눈 뜨고 당하는' 소비자

소비자 위한 법, 배 불린 건 이통사뿐

10월부터 시행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법안이 만들어질 때 까지만 해도 일반소비자에겐 낯설기만 했던 이름이 이제는 익숙해졌을 정도다. 소비자 차별을 없애고 가계통신비 인하를 목표했던 단통법이 도리어 전국민을 '눈뜬 호갱님(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손님)'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단통법이 무엇이고, 왜 제정 취지와 달리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법이 됐는지,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편집자
사용중인 스마트폰이 몇 차례에 걸친 애프터서비스(AS) 뒤에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답답해하던 직장인 김미선(37)씨. 올초 그는 가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다. 삼성전자가 신제품을 내놓으면 즉시 구매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달초 마음을 바꿨다. 스마트폰 실구입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단통법 시행 뒤로 이동통신사와 제조사가 써오던 보조금과 판매장려금이 대폭 줄어서다. 결국 그는 애플 아이폰6 출시일이 정해지면서 값이 떨어진 아이폰5S(32GB)를 애플스토아에서 79만원에 구입한 뒤,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무약정으로 가입했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비싸게 단말기를 구입한 만큼 요금제는 월 3만5000원짜리 낮은 수준으로 선택했다. 월 3만5000원 요금제 이지만 가족결합 할인을 받으니 절반 수준인 1만7500원으로 줄었고,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실요금은 월 2만원이면 충분했다.
김씨는 "이제 스마트폰은 너무 비싸서 쉽게 구입할 수 없게 됐다"면서 "이번에 구입한 제품은 아끼고 아껴서 2년 이상 꼭 쓸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단통법이 빚어낸 단말기 구입 신(新) 풍속도이다. 10월부터 단통법이 시행된 뒤 단말기 실구입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자, 단말기 교체를 보류하거나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공단말기나 중고폰을 구입한 뒤 무약정으로 저가 요금제에 가입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10만원도 안되는 보조금 받자고 약정 가입을 하는 것보다 공단말기를 제 값 주고 사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 정의당·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단통법 대폭 보완 및 단말기 가격 거품 제거, 통신비 획기적 인하 촉구'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혜택 없고…말 뿐인 단통법
단통법은 공짜폰을 넘어서 웃돈을 얹어 가며 가입자를 유치하는 마이너스폰이 등장하자 폐해를 막고자 제정됐다. 모든 소비자를 대상으로 공짜폰이 제공되면 문제가 없지만 일부 대리점·판매점에서만, 그것도 불시에 불법 보조금이 뿌려지니 소비자별로 형평성 문제가 대두됐다.
물론 단통법 이전에도 단말기 보조금 규제는 있었다. 하지만 단통법과 기존 규제와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우선 기존에는 27만원을 초과하는 보조금이 지급될 경우 다른 가입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므로 이를 위법으로 봤다. 따라서 27만원 이하의 보조금이 지급되기만 하면 가입유형, 가입요금제 등에 따라 차별이 발생해도 이를 위법으로 보지 않았다. 또 출시된지 20개월 미만의 단말기면 고급형이든지 보급형 저가폰이든지 관계 없이 모두 보조금 27만원을 초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통법은 가입유형, 지역에 관계없이 동일한 단말기에 대해선 동일한 보조금이 지급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통사는 정부가 고시한 상한액(30만원) 범위내에서 단말기별로 보조금 수준을 공시하고, 대리점과 판매점은 공시된 금액의 15%(4만5000원) 이내에서 추가 보조금을 이용자에게 지급할 수 있다. 이러한 보조금 지급 수준도 이용자가 알기 쉽도록 매장에 의무적으로 게시하도록 했다.
이용자들은 보조금 공시제도가 도입되면 투명한 가격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돼 자신에게 맞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이통사 가입자간의 보조금 차별현상도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또 기존에는 대리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이통사만 처벌할 수 있었는데, 단통법은 대리점, 판매점, 제조사의 위법행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대리점과 판매점이 보조금 수준을 게시하지 않거나 게시된 금액보다 초과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특히 대형유통점의 경우 일반 유통점보다 강한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 따로노는 정책..얼어붙은 '소비심리'
하지만 막상 단통법이 시행되자 법 내용은 잘 지켜졌을지 몰라도 법 취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보조금이 투명하게 고시되고 모든 소비자에게 균등하게 혜택이 돌아갔을 지언정, 정작 가장 중요한 '혜택의 폭'은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고시한 보조금 상한액 30만원에 한참 못미치는 보조금을 책정한 것이 원인이다. 특히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신규 단말기 일수록 보조금 액수는 더욱더 야박했다.
예를들어 삼성전자 갤럭시노트4의 경우 2년 약정에 최소 87만9000원(LTE 62요금제)을 내야한다. LTE 최고 요금제인 LTE100으로 가입해도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11만1000원에 불과하다. 정부 압력에 못견뎌 SK텔레콤이 23일부터 갤럭시노트4 보조금을 최대 22만으로 상향키로 했지만, 이미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통사와 제조사는 법이 정한 보조금 상한선만 지키면 되기 때문에 규제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통신이 규제산업이라는 특징을 활용,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이는 방법 밖에는 현재로선 보조금을 상향시킬 요인은 없다.
또 신규 단말기 구매율이 줄어들자 전국 2만5000여 이동통신사 대리점·판매점도 아우성이다. 일부 대리점·판매점의 불법·탈법을 막겠다고 시행한 법으로 모든 유통점이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불만이다. 결국 단통법으로 이득을 본 이는 소비자도, 제조사도, 유통점도 아닌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이통3사가 됐다.

비즈니스워치=프레시안 교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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