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세는 올리고 대기업 혜택은 그대로…공정한가?

[복지국가SOCIETY] 조세 정책, 서민에게만 고통 분담 강요해선 안 돼

27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집회에 대해 정홍원 국무총리 주최로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정 총리는 "고령화 추세와 연금재정 상황을 감안할 때 개혁은 불가피하다. 고통 분담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상은 공무원들, 그리고 국민이었다.

"고통 분담에 동참해 달라"는 정부의 요구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마다 정부는 국민적인 단합과 고통의 분담을 요구해왔다. IMF 외환 위기 시기에는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고통 분담론'까지 등장할 정도로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이어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가 지속되었던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고통 분담에 대한 호소는 이어졌다. 국민도 이에 거부감을 크게 일으키지는 않았다. 국지적인 파업이나 집회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IMF 당시 전국적인 금 모으기 운동이나 노조들의 임금 동결 등 자발적인 대책으로 이에 호응하며 정부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외환 위기 등 국가적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곳은 정부이다. 한국은 수출입 총액이 GDP 대비 36.2%로 대외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개방 경제 구조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가 잘못된 환율정책, 각종 규제 완화 정책으로 금융기관들의 부실 투자를 촉진했던 것은 경제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연금개혁 문제의 궁극적인 원인도 애초에 현재와 같은 저부담-고혜택 연금체계를 설계하여 재정에 부담을 준 정부에 책임이 있다.

국민은 정부가 짠 사회경제적 구조를 수용하여 그 속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의 잘못된 정책 결정과 집행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왔다. 수십 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잃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퇴직 이후에도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정황들에 비추어보면, 정부의 고통 분담 호소에 대해 피해자인 국민이 더 이상 호응해야 할 당위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연합뉴스

왜 국민은 정부에 협력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 때마다 정부와 국민이 협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가 어려우니 허리띠를 졸라 매자는 정부 관계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연대' 때문이다. 연대(solidarity)란 공통적인 생활 상태를 공유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에 대해 책임지는 공동의 사회적 행위를 의미한다.

인간은 혼자서는 자신의 고유한 안녕을 보살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결합에 의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의 고유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내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원할 의무를 가지게 한다'라는 논리가 도출된다. 정부와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다. 이에 정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한 국정 운영이라는 의무를, 국민은 정부의 정책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이러한 연대의 원리 하에서, 정부는 사회경제적 큰 틀을 짜고 국민은 정부를 믿고 그 안에서 경제 활동을 영위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국민은 힘들더라도 당분간 임금을 동결하거나, 나중에 복귀시킬 것이라고 믿고 정부와 기업이 요구하는 구조조정을 받아들인다. 세부적인 정책의 곳곳에서도 연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연금 정책은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목표 하에 내가 현 세대의 노인들을 부양하는 대신에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미래 세대가 나에 대한 부양 책임을 질 것이라는 세대 간 연대에 의해 작동한다. 조세 정책을 작동시키는 연대는 개개인이 낸 세금이 모여 공동체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여기서 연대의 중요한 속성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신뢰'이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목표가 '동일'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책임이 '분담'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공동의 목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이더라도 협력하지 못할 것이고, 책임 분담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무임승차에 대한 우려로 어떻게 해서든지 책임을 축소 혹은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국가 부도의 위기를 겪은 그리스의 사례는 연대가 무너진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세금인상, 구조조정과 같은 개혁조치들은 경기침체 극복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에게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탈세를 일삼는 부유층보다 서민층에게 부담을 더 지우는 내용으로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책임 분담을 이루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리스는 연일 시위로 몸살을 앓느라 경기회복이 더뎌지고 있다.

반면 독일은 연대로 위기를 극복한 모범 사례이다. 강철선 가공설비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독일의 바피오스 기업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주 35시간이던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했지만, 기업은 해고를 하지 않았고,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줄어든 월급의 60%를 지원함으로써 상호간에 책임을 적절하게 분담하였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빠르게 위기로부터 벗어나 현재 유럽 최저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연대를 무너뜨리는 박근혜 정부의 조세정책

최근 속속 발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조세 정책은 우리 사회의 연대를 균열시키고 있다. 지방정부까지 감안하면 국가 채무는 500조 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내년도 적자 예산은 무려 33조6000억 원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부자감세-서민증세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먼저 큰 논란을 불러온 담뱃세 인상은 대표적인 서민 증세로 비난을 받고 있다. 월평균 총 소비 중 담배 구입비 비중에 있어 저소득층(1.2%)이 고소득층의 3.2배(0.38%)에 이른다는 통계청의 가계수지 분석 결과(<이투데이> 16일자 보도)와 담배가격이 정부 인상안인 4500원일 때 세수가 가장 많이 걷힌다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는 정부의 담배가격 인상이 금연을 통한 국민건강증진이 아니라 세수 확보를 위한 것이며, 그 부담이 저소득층에게 편중될 것임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1년 치 세금을 미리 납부하면 10%를 할인해주던 자동차세 선납공제 폐지 및 세율 인상, 주민세 인상, 직장인들이 세금 혜택을 보면서 저축할 수 있었던 세금 우대 종합 저축 폐지 역시 서민들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증세안들이다. 영세 고물상들이 공제 혜택을 받던 재활용 폐자원 의제매입 세액공제율 역시 하향 조정되면서 폐지 및 고철을 수집하는 영세 상인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에 대기업과 고소득자들을 위한 비과세 감면 제도는 연장되거나 확대되었다. 올해 일몰 예정이던 생산성 향상 시설투자 세액 공제와 안전 설비 투자 세액 공제는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요청에 따라 기한이 연장되거나 적용 대상이 확대되었다. 벤처기업 주식의 양도차익‧ 배당소득에 대한 법인세 면제제도 역시 대한상공회의소의 건의에 따라 기한이 연장되었다. 또한 명문 장수기업에 대한 가업상속공제 및 증여세 특례 한도를 각각 2배 및 6배 이상 상향 조정하고 조부모 교육비 명목 증여 공제 한도를 1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면서 대기업 및 고소득자들은 더욱 더 세금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의 세제개편은 근로자 및 영세 자영업자와 저소득층들의 세금 부담을 늘리고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절감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개인소득세는 5.7%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데 반해, 법인세는 0.7%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오마이뉴스> 9월 24일자 보도).

우리 사회는 노동 소득 분배율(자본과 노동이 결합하여 창출한 총 부가가치 중 노동이 가져가는 몫)이 1998년도에 80.4%에서 2012년 68.1%로 꾸준히 낮아졌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생산액 비중 격차도 2007년 2.6%p에서 2012년 8.6%포인트로 벌어지면서 이미 대기업 중심으로 소득 증가율 자체가 편중되어 있다(중소기업 연구원 발표자료).

이러한 상황에 더하여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치우친 세제 혜택은 우리 사회에서 근로자 대 자본가, 중소기업 대 대기업 간의 균열을 심화시킬 것이다. 즉, 근로자 및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적자 재정을 보전하는 데 소득에 비해 불평등하게 과다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적인 연대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

고통을 분담하는 올바른 방법

그렇다면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면서 함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고령화 및 저출산 환경과 경제 위기가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위협할 것이므로, 이를 잘 극복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즉, 공통의 목표는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연대가 작동하기 위한 또 하나의 조건인 책임 분담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책임이 적절하게 나누어져야 한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은 사실상 산업화 시기부터 정부가 탄탄히 구축해놓은 우호적 산업구조 하에서 많은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IMF 외환위기 및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투자 및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법인세 및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 정부로부터 많은 세제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몇몇 대기업들은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반면, 이들이 원활히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그간 정부는 노동자 및 영세 자영업자들을 외면했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 파업에 대한 강경한 대처, 시간제 일자리 및 비정규직 양산 등과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는 지난 2분기 기준으로 실질임금 상승률을 0%대로 떨어뜨려 이들의 삶을 악화시켰다. 이는 매번 사상 최고의 흑자를 기록한다는 국내 대기업 소식과 대비되어 대다수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정부의 조세 정책은 이러한 소득 분배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비과세 감면제도를 과감하게 축소 또는 철폐하여 수년간 혜택을 누려온 이들에게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 누진적인 직접세 인상을 통해 그동안 많은 수혜를 입어온 고소득층이 합당한 책임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담뱃세와 같은 간접세는 한계 소비 성향(새로 늘어난 소득 가운데 소비에 지출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큰 저소득층를 비롯한 서민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역진세에 해당하므로 간접세의 인상은 최후의 보루로 삼아야 한다.

보통 한 국가의 세금부담 능력은 국민 부담률로 측정하는데, 한국의 경우 25.9%로 OECD 평균 34.1%에 턱없이 부족하다. 늘어나고 있는 노인 인구로 인해 앞으로 급증할 의료 및 연금 지출을 고려하면 현재의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데만 해도 훨씬 더 많은 세수가 필요하다. 이에 더해 교육과 주거 등 여러 분야에서 복지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계속해서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처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힘들게 번 돈을 세금으로 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는 연대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 사회가, 나아가 대한민국이 행복해져야 한다. 한 고등학교 아이들이 죄 없이 죽어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유가족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던 것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을 다하지 못 했다는 연대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공통의 목표 하에 서로의 능력과 기여를 고려하여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공정한 구조가 바탕이 된다면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고통을 분담해달라고 호소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기꺼이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즉 연대가 작동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구조를 확립하는 데 우선적으로 더 큰 강조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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