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우리에게도 포기하라 말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띄우는 편지]<3> 고2 청소년들이 보내온 영상편지

청운동 농성장에 있다 보면 교복을 입고 오가는 청소년들이 자주 보입니다. "길 건너 은행나무 잎사귀만 봐도 우리 애가 '엄마 엄마' 부르며 손을 흔드는 것 같다"던 당신들은 어떤 심정으로 그이들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잃어버린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 고통스럽다가도 문득 저이들은 어떤 생각을 품고 이 거리를 지나갈까 궁금하기도 하실 테지요.

“친구들이 목숨을 잃은 건 슬픈 일이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이제 그만 유가족들이 생업으로 돌아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건의 책임자는 선장인데, 왜 대통령한테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왜 대통령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도 안 만나 줘요? 사람이 죽었는데 뭘 그렇게 따지고 있어요? 그렇게 따질 거면 특별법 얘기 꺼내지도 말지.”

며칠 전 안산 지역의 한 청소년센터에서 세월호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 오간 이야기들입니다. 이 센터는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중학교를 다녔거나 한 다리만 건너면 인연이 닿아있는 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곳이에요. 특별법 상황에 답답해하는 청소년도, 유가족을 응원하는 청소년도 많았지만, 여전히 세월호 사건을 승객을 버리고 달아난 선장의 탓으로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청소년들도 이 세상을 살아내느라 바쁜데다 학교도 언론도 세월호의 진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된다 해도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가진 사람도 결국 돈에 포섭될 거예요. 세상이 썩을 대로 썩었는데 특별법이 제정된다 해도 진실을 다 파헤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한 청소년이 던진 말입니다. 온갖 비리가 넘쳐나는 세상, 세월호 사건을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찰이 변화에 대한 열망이 아닌, 그저 무력감에 그칠까 두려워지기도 했습니다.

“나의 인연이 되어 만날 수도 있던 친구들이었기에…”

그리고 여기, 4월 16일을 여전히 잊지 않겠다고, 함께하겠다고 다짐하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이화미디어고 2학년, 글쓰기 동아리 학생들입니다. 각자 당신들께 전하고픈 이야기를 글로 써와 검토하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까지 쪼개어 만든 영상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행여 잘못 꺼낸 이야기에 당신들이 상처 받을까 조심스러워 하는 마음과 세월호 싸움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소담하게 담긴 편지였습니다.


*일부 모바일 기기에선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지금도 교복이나 가방에 노란리본을 달고 다닌다는 이다연 학생은 최근 “너는 왜 아직도 달고 있어?”라는 질문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고 해요. 한때는 당연했던 일들이 이제는 질문을 받아야 할 일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다연 학생은 “나와 인연이 되어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이 죽었다. 나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기를 바란다”고 답합니다.

“아무것도 바뀐 것 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니 선선해진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진다”는 김유미 학생은 “돕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나의 일이기에 함께하겠습니다. 잊으라는 말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주세요”라는 다짐과 부탁을 전해왔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저 지나간 일이 되어버릴까봐 무섭다는 신가희 학생은 “저와 같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유가족 분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유가족들이 있기에 ‘잊지 않겠다’, ‘가만히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슴 깊이 다지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당신들은 가희 학생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에게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되어 주십니다.

가까이에서 손을 잡아드리지는 못하지만 유가족들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픈 나은아 학생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유가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포기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은아 학생의 얘기처럼 세월호의 진실을 찾기 위한 당신들의 싸움은 무릎 꿇지 않았기에 존엄한 삶을 살고픈 우리들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힘들 당신들이 너무도 많은 일을 해야 하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는 안혜미 학생도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탰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제 자리에서 잊지 않고 함께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응원을 기억해주세요

8월말 고등학생 2명이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 공존의 세상을 위해 무기한 동조단식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으셨지요? 대개의 청소년들에게는 그이들처럼 단식을 하고 광화문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가 있기에 저 철벽의 청운동에 묶인 당신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청소년들의 생각을 궁금해 하는 언론도 많지 않아 더 들리지 않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응원하고 함께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음을 기억해주시겠어요? 모두들 가족, 친지를 찾아 한산해진 서울 거리가 더 외로울지 모를 당신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고 힘을 내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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