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있는 '화약고'…당신은 알고 있나요?"

[노동자가 말하는 '안전'·⑪] 화학공장 노후 설비, 대형 참사 부른다

2012년 9월 구미 불산 누출 사고 이후 지난 2014년 7월 31일 여수조선소 암모니아 누출 사고까지, 잇따라 터진 화학물질 화재, 폭발, 누출 사고의 심각성은 사회적 이슈를 형성해 왔다.

관계기관에 접수되어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한 달에 1~2건이 될 정도로 급증한 화학물질 사고 소식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졌고 정부는 사고 때마다 급히 몇 차례의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7월 31일 여수조선소 암모니아 누출 사고 후 8월 3일 일요일, '화학산단 노후 설비 정밀 실태 조사' 발표가 그랬다. 지난해에도 2차례의 '화학 사고 예방 대책'이 발표된 바 있다.

사고 때면 대책은 재빨리 잘도 나오지만 임시방편식이었다. 그래서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한 해에만 87건의 화학물질 사고로 예년 평균의 7배가 증가했다.

<2013년도 화학 물질 화재, 폭발, 누출 사고 현황>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노후 설비,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최근 국내외에서 2건의 큰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국내는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여수의 해양조선소이고 국외는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 도심 한복판이었다.

7월 31일 오후 4시 13분 전남 여수시 돌산읍 우두리 '여수해양 조선소'에서 암모니아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사고 원인으로는 수리 중이던 참치 운반선에 있던 암모니아 보관 가스통이 노후화되어 가스가 누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누출된 암모니아로 인한 화상, 질식 등으로 1명이 사망하고 2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지역은 지난해 3월 여수산단 대림산업 폭발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치는 대형 화학물질 참사가 있던 곳으로 이번 사고로 지역 주민의 정신적 충격은 더 심하다.

암모니아 누출 사고로는 올해 2월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친 남양주시 빙그레공장 암모니아 누출 폭발 사고 이후 5개월 만에 발생한 사고이기도 하다.

이번 사고의 위험성은 노후화된 설비로 인한 누출 사고라는 점에 있다.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서 설비가 수시로 점검되지 못하고 제때 교체 보수되지 못하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고였다. 화학섬유연맹은 작년 여수 대림산업 폭발 사고 대책 활동 과정에서 '일과 건강'과 개최한 '2013년 주요 산단 화재, 폭발, 누출 사고 은폐 현황 설명회'를 통해 우리나라 석유화학산단 주요 설비 노후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노후화된 설비로 365일 돌아가고 있는 석유화학공단은 말 그대로 화약고나 다름없다. 이번 사고를 한 지역 조선소에서 가스통 하나가 노후화되어 일어난 사고로 치부하고 마무리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 주요 석유화학단지 현황 - 자료 출처 : 소방방재청 예방안전국, 2008>


현재 국내에 조성된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는 여수, 울산, 대산 지역의 국가산업단지이다. 이 중 여수와 울산 국가산단은 40년 이상 된 오래된 설비가 대부분으로, 설명회에서 발표된 현장 증언 내용을 보면 충격적이다. 시급히 실태를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OO석유화학단지 A사 노동자 증언에 의하면, 가동을 시작한 지 오래된 설비 중 특히 배관, 밸브의 노후화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 정비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황산 등 취급 물질이 수시로 누출되고 있으며 이를 발견한 현장 노동자들이 고무장갑 등을 이용, 임시방편으로 막고 처리반(공무팀)이 올 때까지 대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누출 사고는 보고되거나 사고 통계로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노후 설비가 교체되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엔 여기다. 샐지 모르니 조심해라. 설비를 교체해야 하는데 바꿔주질 않는다"라는 공무팀 관계자의 하소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공무팀 관계자는 "회사 장비 설비 계약 시 저가로 구입하니 노후가 빨리 이뤄지는 것도 문제고 공장을 세운 지 30~40년이니 정기적으로 공정별로 설비를 점검하고 교체해야 하는데, 사람도 더 필요하고…. 그게 다 돈이예요. 그러니까 안 하는 거예요"라며 앞으로 예고되고 있는 사고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와 같은 노후화된 설비는 잦은 정비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어 공장 가동 시기는 물론이고 수리 과정에서 항상 사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언제 사고가 발생할 지 모르는 일이다.

이번 여수해양조선소 누출 사고도 평상시 안전 보건 조치 의무 사항에 대한 설비 실태 점검 및 보수 교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개의 가스통 누출 사고로 멈췄다는 것이다. 누출이 폭발로 이어져 14개의 가스통이 연쇄 폭발했다면, 100여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던 사고 현장이었던 만큼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했다.

대만 가오슝시 대형 화학물질 누출, 연쇄 폭발 참사

여수사고 다음 날인 8월 1일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高雄) 도심에서 석유화학공단 등에 공급하는 프로필렌 공급관에서 누출, 연쇄 폭발 사고가 일어나 최소 24명이 숨지고, 290여 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현지 뉴스 전문 채널 TVBS 등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가오슝시 첸전(前鎭)구에 있는 지하 석유화학 물질 공급관에서 누출 사고가 나 인근 하수도 통로 등으로 가스가 퍼지면서 연쇄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고 원인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석유화학공단 공급관의 이상으로 인한 누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연결 배관이나 밸브 등의 바스켓 등의 노후화로 심심치 않게 누출이 일어나는 석유화학공단의 사례를 비추어보면 그렇다.

이번 사고 물질인 프로필렌은 폴리프로필렌이라는 플라스틱 재료를 만드는 기본 원료다. 휘발유를 만드는 원유 분해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성되거나 원유를 증류할 때 유출되는 나프타를 수증기 분해해서 에틸렌을 만드는 과정의 부산물로 생성되는 화합 물질이다.

보통 생활 주변의 모든 플라스틱, PVC 제품에 쓰이고 있으며 음식을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 용기, 생명과 직결된 의료용 주사기 등의 제품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폴리프로필렌은 세상을 바꾼 발명품 1001가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할 만큼 석유화학산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석유화학산단에 존재함은 물론 화학업계인 SK가스, 효성, 여천NCC, 롯데케미칼 등은 작년 대규모 신증설 투자를 통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번 대만의 경우처럼 석유화학산단에서는 배관을 통해 이러한 물질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후화된 설비로 인한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면 연쇄, 폭발 사고로 언제든 이어질 수 있다.

정부 당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화학사업장 노후 설비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 대책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지난 8월 3일 부랴부랴 고용노동부는 9월까지 전국 30년 이상 된 노후 화학설비 보유 사업장 정밀 실태 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장 설립일이 30년 이상 경과된 사업장 495곳 중 8~9월 중에 1차로 국가산업단지 내 사업장 155곳, 최근 화학사고 발생 사업장 5곳, 위험 설비 사업장 21곳, 맹독성 물질 취급 사업장 24곳 등 총 205곳을 조사하고, 10월 이후 2차로 나머지 290곳이 조사 대상이다. 조사는 전문가 조사단을 꾸려 진행하다고 밝혔다. 아쉬운 것은 조사단이 정부 관계 기관끼리만 꾸려져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다. 하지만 발표 내용으로만 보면 이번 조사는 안전 기준 준수 여부 확인과 처벌보다는 노후 설비 사고 위험성 진단, 해결 방안 마련에 중점을 둔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이번만은 사고가 나면 그때만 반짝하고 마는 보여주기식 행태가 아니었으면 한다.

이번 정밀 실태 조사가 실질적인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노후 설비 개선 대책의 토대가 되길 바란다. 화학섬유연맹은 건설노조와 함께 정부의 1차 정밀 실태 조사가 끝난 10월 중으로 '노후 화학 설비 개선 토론회'를 열어 제대로 된 대책 수립을 요구할 계획이다.

화학물질 사고의 근본 대책, '지역사회알권리법'이 해답이다

이번 대만 가스 폭발 참사는 3시간 동안의 초기 대응 부실이 불러온 대형 참사임이 밝혀지고 있다. 관계 당국은 가스 성분도 확인하지 못 해 허둥지둥했고 안일한 대처로 주민 대피도 안 시켜 사고를 키웠다. 폭발 1시간 전부터 누출로 인한 신고가 접수되었지만 제대로 된 확인 절차도 밝지 않았으며 관련업체는 지하 공급망 이상을 확인하고도 숨겼다. 소방 당국은 소방차를 대거 동원해 가스가 분출되는 곳마다 물을 뿌려 누출 성분을 희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최초 누출 지점을 찾는 데 실패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2012년 경북 구미에서 있었던 불산 누출 사고 때와 너무나 닮아 있다. 당시 주민 대피령은 4시간 후에 내려졌고 관계당국의 부실한 관리와 대처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소방관 18명 입원, 주민 1만2000명 검진, 주민 보상액만도 380억 원에 이르는 초유의 산업 환경 재해로 기록되었다. 이 사고 이후 화학물질 관리와 비상 대응 체계 마련을 위한 문제가 회자되었다. 화학물질 사고는 정부 주도만으로 예방할 수 없으며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가 보장된 지역 중심의 관리 체계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대응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는 전 세계 화학물질 사고의 교훈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이나 캐나다 등이 '지역사회알권리법과 조례'를 통해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가 보장된 지역 중심의 관리 체계를 제도화해서 실행하고 있다. 화학섬유연맹이 참여하고 있는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에서도 지난 5월 53명의 국회의원 공동으로 '지역사회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하였고 여수, 울산, 청주 등 주요 7개 지역에서는 알권리 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5월 '화약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여수 지역에서 전국 최초로 '화학물질 관리와 지역사회 알권리 조례' 제정을 추진하였으나 소수의 여수시의회 상임위원들에 의해 본회의에조차 상정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하반기에는 사고 예방과 대응 체계를 수립하는 데 필요한 조례가 제정되어 화학물질 사고가 예방될 수 있길 바란다.

9월 본회의에 상정될 화학물질 사고의 근본 대책이라 할 수 있는 '화학물질 관리와 지역사회 알권리법'이 제정되어 화학물질사고가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기록되지 않길 바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