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4일,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됐습니다. 294명이 목숨을 잃었고, 10명은 아직 실종 상태입니다. 아직 실종자 10명의 행방조차 모르는 데, 3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사회적 대참사의 장례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국 사회는 하루하루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일상의 버거움이, 선거와 월드컵이, 기억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망각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알 수 없는 의문으로 가득합니다. 아직 분명한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이 왜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글을 보면,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대동소이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안전보다 이윤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회 풍조, 무책임과 무능력으로 일관된 국가 관료 구조,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 장치-규제를 하나씩 해체하는 경제 만능주의 등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문화와 시스템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근본적 원인 찾기의 반복이 좀 답답합니다. 관성화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로, 반생명적 문화로, 국가의 구조적 문제로 귀결되고 나면 좀 허망합니다. 현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가운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세한 울림은 잦아들고, 기계적인 마무리 가운데 패배감과 무기력만 커집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도블록 조그만 틈 사이 피어난 풀꽃을 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쩌면 거대한 모순 속 조그만 틈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기계적인 분석이나 대응은 거대한 시스템과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사람 마음을 울리지 못합니다. 아픈 사람들과 함께 우는 마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하고 끈질기게 하는 진정성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광주 시민 상주 모임
지난 달 9일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수완·첨단에서 마을 촛불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몇몇이 모였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디어도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날 세월호가 남긴 숙제를 하는데 만만치 않은 과정이 필요하고 더 중요하게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전통을 되살린 '3년 시민 상주 모임'을 제안했습니다.
첫 회의에서 '상주(喪主)'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과 가부장적인 전통 등의 이유로 취지를 살린 다른 언어를 찾아봤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민 상주'만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는 명확한 단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개개인의 책임과 결단을 이 '시민 상주'라는 단어가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일주일 후 시민 상주 22명이 참여한 첫 모임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의견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200여 명이 '시민 상주'로 참여해 가족들이 원하는 일과 가족들에게 필요한 일을 함께해가자는 원칙하에, 대표도 변변한 조직 체계도 없이 시민들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 그 안에서 꼼꼼하게 대안 찾기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진실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 많은 생명이 왜 죽었는지 정확하게 밝히는 일은 먼저 간 사람과 남은 사람의 억울함을 푸는 고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사소한 문제부터 거대한 구조의 문제까지 꼼꼼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우선입니다.
국회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를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암울합니다. 어쩌면 현재의 국회, 특히나 사건의 당사자가 속해 있는 국회가 진실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 모릅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4.16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 또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민 상주 모임은 7월까지 1000만인 서명과 특별법 제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재판도 중요합니다. 지난달 10일 광주법원에서 첫 재판이 열렸고, 매주 한 차례 정도 진행되는 재판마다 80여 명의 가족이 참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에 참여한 세월호 참사 관련자 15명 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선원 딱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남 탓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가족들 심정은 어떨까요? 억장이 무너집니다.
시민 상주 모임에서는 재판에 참여하는 가족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광주정신'을 살린 주먹밥과 음료 등을 준비해 귀가 버스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법원 근처에서 피켓을 들고 '진실 규명'을 외쳤습니다. 법원과 법원 사이 '진실마중 사람 띠 잇기'에 200~300명의 시민이 참여하면서 세월호 참사 가족은 물론, 시민 스스로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법원까지 가는 길을 '진실마중길'로, 아예 이름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생길 정도입니다.
마을 촛불과 새로운 마을을 세워가기
세월호 참사로 달라진 현상은 촛불이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도 4월 29일 처음 촛불모임을 가진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촛불모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광주 전체적으로 보면, 촛불모임이 현재 16개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민 상주 모임에서는 매주 1회 씩 마을에서 촛불모임과 서명운동을 진행하자고 제안했고, 새로운 시민 상주가 늘어나는만큼 마을 촛불도 늘어날 것으로 희망하고 있습니다.
마을 촛불의 주축은 대부분 엄마들입니다. 열 달 동안 아이를 뱃속에 안고 있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아이들 이야기만 나와도 눈물이 난다는 사람들이 상주 모임과 마을 촛불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렇듯 촛불이 삶 터인 마을에서 켜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근대 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관계망은 하나씩 망가져 우정과 보살핌의 관계는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신 이윤의 관계망이 빈자리를 채우며 '경제적 인간'이 하나 둘 완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10대는 돈 많은 사람을 동경하며 큰 돈을 준다면 교도소에 10년쯤 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해댑니다. 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마을을 회복하는 것은 이윤 동기를 갖지 않는 관계, 즉 우정과 호혜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돈이 매개가 되지 않고도 상부상조하며 삶을 풍요롭게 꾸려갈 수 있는 관계망, 그것은 '마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을'이 붕괴하다 보니, 돈 없이는 못살게 됐습니다. 반대로, '마을'을 회복한다면 적은 돈으로도 삶을 충분히 영위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곡마을은 평균 2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해 촛불모임을 합니다. 한 번은 한 고등학교 교사회가 주축이 돼 마을 추모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주민·교사·신부·수녀까지 300여 명이 모여 추모와 결의를 다지는 자리가 됐습니다.
마을 촛불은 '삶을 가꾸는 일곡 마을회의'가 진행하고 있는데, 마을에 있는 여러 모임과 생활협동조합 회의 모임입니다. 지난해부터 주민 인권학교도 하고, 마을 주민 총회격의 원탁 토론도 하면서 마을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토론합니다. 올해는 특별히 어린이와 청소년이 행복한 마을을 만들자고 결정했습니다. 일곡 마을회의는 촛불 모임과 더불어 주민 이야기 마당을 펼쳐 마을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논밭을 밀어버리고 그 위에 인공적으로 지어진 아파트·주택 단지라는 전형적인 도시 위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고 숨을 불어 넣어 우정과 호혜로 연결된 사람의 '마을 세우기'를 하는 중입니다. 촛불 모임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을의 방향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생명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만들기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 재난, 다시 말해 인재(人災)입니다. 한국 사회가 이 방향으로 진행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재난이라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의 죽음, 더 나이 어린 생명의 죽음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젊은이가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삶의 질을 떠나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삶을 계획한다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일 테니까요.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숙제는 '생명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 곳곳의 안전을 다시 점검하고 개인의 대처 능력을 키우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이것은 서로의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력해도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통제권을 벗어나 있는 수십 개의 핵발전소입니다. 그 중 하나만 사고가 나도 한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맙니다. 독일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가 우리에게 보여 준 교훈입니다. 탈핵, 핵을 벗어나는 일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계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며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10대와 20대들의 선택
저는 대안학교와 청소년 공간에서 10대와 20대를 꾸준히 만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떠나보낸 후, 광주에서도 많은 10대가 촛불모임과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10대는 국가와 기성 사회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에 더해 존재의 거처인 생명에 대한 불안까지도 안고 살아야 하는 지경이 됐습니다.
지금 20대는 고(高) 실업과 불안 사회를 탈출하기 위해 스펙 쌓기와 공무원 시험 등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뻔합니다. 탈출구를 찾은 몇 사람 또한 존재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니까요. 개인의 탈출구 찾기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탈출 전략이 필요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대를 바라보는 부모와 교사의 따뜻한 시선이 유지된다는 전제로 말이죠.
세월호 참사를 겪은 10대는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까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개인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더욱 극단적인 경쟁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미래보다 현재, 즉 오늘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는 사람도 나타겠지요. 미래에 대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무기력과 패배감에 힘들어하는 사람 역시 늘어날 테고, 전망 또한 그리 밝지 않습니다.
10대와 20대에게는 비빌 언덕이 필요합니다. 삶을 의지하고 세상의 문법을 벗어나 탈출을 감행하는 용기, 뗏목을 타고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늘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중요한 상황이 되었죠. 가장 주목할 버팀목은 대안학교와 마을, 청소년-청년 공간입니다. 또 경쟁 사회를 탈출해 살고 있는 어른도 큰 힘이 됩니다. 대안적 공간과 대안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만들고 있는 관계망이 중요한 지지대인 셈입니다.
맺으며
저는 최근 한 달여를 보내며 광주를 다시 느낍니다. 광주 사람들 속에 흐르는 피를 다시금 느낄 수 있습니다. 시민 상주들은 경기도 안산의 세월호 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1980년 5월의 아픔이 떠오르고, 그래서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윤에서 생명으로' 사회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3년은 짧은 세월일지 모르지만, 300여 명의 희생이 남긴 숙제를 성실하게 해나갈 수 있는 씨앗만큼은 잘 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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