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가 산에 올라갔어요!”
인동동 주민센터를 볼 때마다 김수민 의원(녹색당, 구미시의원)은 속이 쓰리다. “처음 내려와서 지역 상황을 모르니 꼼짝없이 당했어요. 선거 때만 알았어도 문제 제기를 했을 텐데. 주민들도 설마 산 위에 지을 줄은 몰랐겠죠. 지난 4년 의정활동의 최대 오점이예요.”
지난해 6월 문을 연 구미시 인동동 주민센터는 특이한 위치 때문에 매스컴을 탔다. 대로에서 600미터나 들어간 거리에다 야산 중턱에 떡하니 올라앉아, 한 번 가려면 등산 아닌 등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인 남성도 5~6분을 올라가야 하니, 한여름에는 땀 깨나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2010년, 취업에 실패하고 10년 만에 낙향한 청년이 연고지도 아닌 지역구에서 시의원에 출마했다. 지역 정치권과 언론은 이 ‘듣보잡 청년’을 얕봤지만, 참신한 공약과 개성 넘치는 선거운동으로 승부수를 던졌고 반MB 시류까지 그의 당선을 도왔다.
4년 동안 그는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스타 시의원이 됐다. 주민들과 약속했던 지역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꼬박꼬박 적금까지 넣어, 세비 저축으로 재산을 32배나 불리는 진기록도 세웠다. (80만원에서 2000여만 원으로, 4년간 무려 32배!) 아파트 13층 높이 산 중턱 주민센터는 모르고 당했지만, 이제는 비상식적 입지 선정과 석연치 않은 부지 매입 과정을 언젠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 벼르는 강단 있는 정치인이 됐다.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김수민 의원을 구미시 구평동의 선거사무소에서 만났다.
공단 도시 구미를 ‘녹색 성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얘기할 땐 신난 어린아이처럼 말을 이어가다가도, ‘풀뿌리’가 반정치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반정치 전략은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때는 단호함이 느껴졌다. 정치인 김수민에게 ‘리얼소셜’은, 어느 동네에나 있는 벼랑 끝 사람들의 사연으로부터 세계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것을 ‘풀뿌리 정치’라고 불렀다.
정치발전소에서 ‘청년, 정치를 바꾸다’라는 주제로 강의를 요청했을 때, 김수민 의원은 “‘정치, 청년을 바꾸다’가 적합하겠다.”며 제목 수정을 요구했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 방송작가 지망생이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정치로 전향한 것인가.
다큐멘터리나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어 방송작가 아카데미에 갔다. 재학 중 선생님이 따로 부르더니 “작가 양성은 도제(徒弟) 시스템인데, 20대 후반으로 나이도 많고 명문대 출신에 여성도 아닌 남성을 제자로 받기는 다들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며 PD 시험을 쳐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당시 언론사 상황이 좋지 않았다. 라디오PD 채용이 거의 없었다. 겨우 한 번 지원했다 낙방한 후, 다시 기회가 없었다.
교육학과 출신이라 구미에서 교생실습을 했는데, 교사는 사회적 지위도 있고, 회사보다 수평적인 문화 같았다. 임용고시를 보려고 문제집을 샀는데, 촛불시위에 갔다가 물대포를 맞고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두 번 그러고 나니 회생불가능이었다. 역사교사 임용 정원도 줄어들던 상황이라, ‘운명이다’ 싶어 그만뒀다.
노무사 시험을 쳐볼까했는데, 하필 토익을 본단다. 학점 2.98에 토익 점수도 없고, 취직이 안 되는데 어딜 가나. 장사는 젬병이라 안 되겠고, 정치가 토익 점수 없이도 도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자리였다.
선거비용 보전되는 15%는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다음엔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관심사를 고스란히 공약으로 반영했다. 선거 기획이나 문구를 짜는 일도 구성작가나 기자 시험 준비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10년 정도 익힌 것을 다 써먹은 선거였다.
그 때 이명박 대통령이 인기가 없었다. 구미에서 야권이 기를 펼 수 있었다. 정부의 수도권 중심 정책에 불만이 많았고, 세종시 수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옮겨갈 텐데 공단도시 구미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다. 시의원 선거에서 ‘세종시 수정안’, ‘수도권 규제 완화’, ‘4대강’까지 반대하는 전국 이슈를 제기했다. 이명박 대통령 덕을 많이 봤다.
- 당시 만27세, 최연소 구미시의원이었다. ‘듣보잡’에 어린 것이 무슨 정치냐는 시선이 있었을 법도 한데.
유권자에겐 오히려 좋았다. 자신이 운영위원장인 학교 표는 다 자기 것인 줄 아는데, 착각이다. 이해관계에 얽힌 조직에서는 반드시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은 오히려 듣보잡을 원한다. 잘 몰라도 신원이 보장되는 사람이면 된다는 것이다.
지역정치권이나 언론은 좀 달랐다. 당선을 목표로 뛰고 있는데 “종주를 목표로 뛴다.”고 했다. 내가 무슨 지리산 종주하러 나왔나? 행사장에 갔더니 사회자가 “김수민 후보 와있는데, 이번에는 안 되겠지만 얼굴 알리러 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별의별 말을 다 들었다. 선거 때는 민주노총의 위장 후보라고 하더니, 당선되니까 ‘노동’은 이력 소개에서 싹 빼버리더라. 노동계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4년 전에는 사진이 앳되게 나와서 어리게 안 보이려 애썼다. 나이를 물으면 “스물아홉”이 아니라 “이제 서른”이라고 대답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리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터넷 해요? 김수민 검색 한 번 해 보세요. 언론에서 뭐라고 하는지.”라고만 대응하라고 선본원들에게 말했다. 이제 나이 콤플렉스는 없다. 오히려 시청이나 주변 분위기를 아는 사람은 나이로 트집 잡지 않는다. 김수민을 논란과 이슈의 인물로 만드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2010년 무소속으로 당선됐는데, 이번에 녹색당으로 출마했다. 대표적 공단 도시 구미와 녹색의 가치, 극명한 대비다. 왜 하필 녹색당이었나?
2011년 4대강 공사 중 취수장 송수관이 유실돼 구미 주택가와 산업단지에 물 공급이 끊기는 ‘단수 사태’가 벌어졌다. 2012년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해 인명 피해는 물론 생태계까지 파괴됐다. 녹색당이 왜 필요한지 보여주는 일들이었다.
구미야말로 직업병과 노동문제까지 아울러 녹색으로 가야한다. 노동조합이 파업 몇 번해서 월급 인상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건강 밑동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 아닌가.
녹색당은 풀뿌리 정치와도 연관이 깊고, 입당이 아니라 창당이기 때문에 지지자와 언론에도 명분이 있었다. “너 무소속으로 나왔는데 왜 들어가!”라고 해도 “제가 당을 만들었는데 안 들어가요?”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대구와 더불어 ‘보수의 심장’으로 불린다. 무소속보다 진보정당 의원으로 활동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녹색당’은 진보정당과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같다. 종북 세력의 배후다, 중도 정당이다, 노동당과 비슷한 곳이다 등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여성은 단번에 녹색당을 이해하는데, 남성들은 “비유 같은 거냐?”고 묻기도 한다. 아줌마들은 ‘친환경 먹거리’를 떠올리면서 “당신 당은 그날 처음 들은 사람도 지지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말하더라. 이번 선거에서 일부 주민은 ‘야권단일후보’도 내걸지 말라고 했다. 녹색당은 여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고 말이다.
제 지역구 ‘마’선거구는 공단과 배후 주거단지, 농촌이 함께 있는 도농복합지구다. 젊은 노동자가 많아서 주택도 거의 원룸이다. 구미는 과거 진보정당 지지자가 10%에 달했다. 녹색당이 중도까지 지지층을 넓혀나가면, 10~20년 후에는 지지율이 새누리당과 비슷해질 수 있지 않을까.
- TK에서 새누리당과 겨뤄서, 구미를 ‘녹색 성지’로? 야심이 대단하다.
녹색당 대의원대회 뒷풀이에서 제가 당권도전을 선언했다. “수도권에 중앙당을 둬야한다는 정당법 조항에 위헌소송을 제기하고, 구미로 중앙당을 옮기겠다. 그러면 내가 당 대표랑 시의원을 겸직할 수 있다. 구미 불산 사태 현장에 천막당사를 치겠다.” 그랬다. 전국사무처 활동가들 얼굴이 굳어지더라. (웃음) 그래서 “원룸 싸다! 후불제도 있다!”고 했다.
- 정당법, 문제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논쟁이 한창일 때, 찬반 의사를 밝히기보다 오히려 ‘지역당’을 주장했다.
우리나라 정당법이 경직돼 있다. 지역당도 안 되고 연합정당도 불가능하다. 그것만 풀어주면 전국에 정당 30개는 만들 수 있다. 구미뿐 아니라 곳곳에 지역당 움직임이 있다. 진주 기반 지역정당 시민단체 ‘진주같이’에 강의를 가보니, 오히려 제가 벤치마킹을 해야 할 정도였다.
정당 등록 요건을 폐지하고 이중당적 금지도 풀면 굳이 ‘지역당’이라 표현할 필요도 없어진다. 당장 그렇게까지 힘들다면, 요건이 완화된 지역정당 특례제도를 둬서 틈새라도 열어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주민을 조직 해봐도 정당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 시민단체도 한계가 있고, 특정 이슈로 뭉쳐도 서명운동 끝나면 다 흩어진다. 일상적으로 시민들이 조직화되려면, 정당이 필요하다. 지역당은 이념적 색깔보다 지역 현안 위주의 풀뿌리정당이 될 것이다.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도 줄어들 수 있다.
전문용어만 모를 뿐, 시민들은 이미 다양한 정당 형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한번은 “녹색당이 중앙에 등록되어있습니까?”라고 주민 한 분이 묻더라. 전국 뉴스에서는 본 적 없는데 이 지역에는 녹색당 의원이 활동하니, 지역정당으로 인식한 것이다. “녹색당은 민주진보당 안에 가입되어 있나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연합전선정당 같은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를 개혁하려면, 재벌규제 완화가 아니라 이런 정당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
- 지역으로 갈등 범위가 축소되면, 지역이기주의로 흐르거나 갈등이 훨씬 첨예하게 부딪힐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갈등이 없어서 문제다. 동 주민센터가 산으로 간 것에 문제를 제기한 주민모임이 있다. 그런데 정치 구도에는 안 나타났다. 나머지 주민들도 투표 말고는 수단이 없다. 이런 부분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내야 한다.
다른 중앙당 당적을 가진 사람도 지역당을 해볼 수 있다. 새누리당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 중에도 저와 같이 지역당을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갈등도 있겠지만 화합의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이 당 저 당, 어지러워서 잘 참여하겠냐고? 그건 시민들이 판단할 일이다.
- 선거만 되면 “풀뿌리, 풀뿌리”하는데, 기초의원이 느낀 ‘진짜 풀뿌리’는 뭔가.
풀뿌리를 한적한 곳이라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정치의 최전선이다. 새삼 느낀 게, 미국 시애틀의 사회주의자 여성 시의원이나 영국 녹색당 메니페스토를 살펴보면, 지역조직인데도 세계적 이슈나 중앙정치 얘기를 많이 한다. 사실 지역의 많은 부분이 중앙과 국제 환경에 의해 결정 나지 않나. 구분되는 게 아니다. 세계가 곧 지역이고, 지역이 곧 세계다.
풀뿌리가 곧 미시 정치는 아니다, 풀뿌리는 거시 정치와 미시 정치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풀뿌리에 대해 환상을 가지거나 도피처 삼는 태도는, 성공하더라도 중앙정치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 못하고 지역 의원만 배출하는 일본 공산당 같이 되기 십상이다.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지역에서 세계의 벼랑 끝을 봐야한다. 얼마 전 아버지가 영아를 살해 유기한 사건이 이 근처에서 일어났다. 어느 동네든 세계의 벼랑 끝과 같은 모습들이 있다. 거기서 세계의 문제를 보는 것이 풀뿌리 정치다.
정리: 최해선 정치발전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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