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을 닮은 방>(세미콜론 펴냄, 2008년), <공간의 요정>(세미콜론 펴냄, 2011), <카페 림보>(워크룸프레스 펴냄, 2012년) 등을 통해 그림 서사(Graphic Narrative)의 지평을 넓혀 온 김한민이 이번에는 <책섬>(워크룸프레스 펴냄)으로 돌아왔다.
이렇듯 비워낸 개념으로서의 "책"은 뒤이어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책의 모양을 하고 그에 삶과 사람을 담은 섬"이 되어, 손으로 다듬어 깎아 만드는 물체이자 한 걸음 한 걸음 발에 닿는 대지의 결을 느끼며 거니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오브제로서의 "책"을 만들어나가는 등장인물들의 여정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유기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하며, 형식과 내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하나의 서사적 몸체로 구현하는 것이다.
한편, 프레임이나 선으로 나뉘는 대신 이미지 사이를 표류하며 여백 속으로 녹아드는 텍스트는 때로 페이지 전체를 뒤덮는 손 글씨가 되어 그림의 영역을 침범하며, 작가의 목소리는 "너가 읽은 문장들은 너의 것일까? 너가 쓴 문장들이 너의 것일까?"라는 자문을 거쳐 자신과 독자와의 경계마저 허물어뜨린다.
주인공들 또한 그 이력부터가 흥미롭기 그지없다. 책을 사랑하지만 읽지는 못하는 소년, 종이를 자르고 풀로 붙여 책을 만드는 대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섬을 파내고 쌓아 올려 책 모양의 구조물을 짓는 "저자." 이렇듯 장르와 매체, 허구와 재현, 그리고 해체와 재구성 사이를 넘나드는 메타적 구조는 "경계 허물기"라는 <책섬>의 핵심 주제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전자기기 화면의 프레임을 통해 잠깐씩 엿보이는 무정형의 시공을 떠돌며 아래로, 안으로, 다음 링크로 확장을 거듭하는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에, 책 짓는 장인의 이야기를 내세우는 것은 일견 시대착오인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작가 자신의 대체 자아 역이라 할 주인공인 "저자"는 "책이 쇠락하는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한탄하며 작은 섬으로의 귀양을 자처한다. 그러나 은퇴 후 자신의 기술이 잊히고 말 것을 염려한 그는 결국 독자를 찾아 나선다.
이렇게 해서 등장하는 것이 책 병에 걸린 소년이다. 방문, 장롱, 심지어 벽에 달린 전구 스위치까지 "펼쳐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책으로 보고 마는 바람에 일반 사물은 물론 자신마저도 책과 구분을 못할 정도로 병적인 책 애호가이지만, 시력이 나빠 정작 책 안에 담긴 글은 읽지 못한 채 책을 펼치고 덮을 때의 촉감이나 인쇄된 글자의 홈을 따라 전해지는 부피감만으로도 환희를 느끼는 별종이다. 그의 소원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일어나는 바람을 만들어내는 문장들을 눈으로 보고, 그 이음새를 손으로 만져보는 것.
소년에게서 이상적인 독자를 본 저자는 그를 자신의 섬으로 데려간다. 이제 둘은 바위를 고르고 흙을 파내며 책 모양을 갖추어 나가는 섬 위에서, 그들 자신이 책이 된다.
왜 읽지 못하는 독자여야 했을까?
"좋은 책은 미개척 황무지에서 탄생하는 법."
눈 먼 소년은 아직 그 누구의 펜도 스쳐가지 않은 하얀 종이이자,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성으로 가득한 텍스트이다. 텍스트란 아직 이해와 해석의 숨결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의 현전만으로도 의미를 지닌다.
의미란 글자와 문장에 내재한 것이라기보다는 장인으로서의 작가와 독자가 책을 누리고 살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낱장 낱장을 잇고 채우는 작가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책을 손에 쥐고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시선이 머문 순간마다,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가 책이라는 "물건"을 통해 서로 만나는 상호작용이야말로 책의 의미, 즉 "만드는 이유"라 하겠다. 그 만남은 또다시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럼으로써 저자와 소년은 오브제와 텍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책으로, 섬으로 승화된다.
한편, <책섬>의 독자 또한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한 묶음의 종이에 불과했던 <책섬>이라는 물체를 한 권의 책, 즉 내용을 담은 형식으로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책과 그 서사를 구성하는 요소 요소간의 반전과 융합은 글과 그림의 혼용이라는 작가의 형식적 선택, 그리고 나아가 이를 체현하는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책섬>은 글과 그림이 한 데 어우러진 책, 즉 그림 서사(graphic narrative)인 만큼, 이미지와 텍스트의 전략적 활용은 작품 구조의 핵심 토대를 이룬다.
미국의 유명 만화 작가 윌 아이즈너는 만화의 정수를 "순차성(sequential)"에서 찾았으며, 현대 만화 연구의 기초를 닦은 스콧 맥클라우드는 여기에 "병치"(juxtaposition)"의 개념을 더해 만화를 "독자로부터 예술적 반응을 이끌어 내거나/내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의도적인 순서대로 병치한 회화적 또는 여타 형식의 이미지들"이라 설명했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긴 문장 그 어디에서도 "글"이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인데, 맥클라우드가 제시한 정의의 마지막 부분, "여타 형식의 이미지들"을 곱씹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글"을 이루는 글자는 사실 지시하는 대상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임의적인 기호, 즉 인위적으로 덧씌운 의미를 짊어진 일종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표음문자가 그러할진대, 표의문자에 이르러서는 글과 그림 간의 경계가 더더욱 불분명해진다. 책이 곧 섬이고, 책을 만들어나가는 행위가 곧 그 내용이 되는 혼성적 텍스트에 이보다 더 걸맞은 형식은 없을 것이다.
한편 아이즈너와 맥클라우드의 정의는 보다 포괄적으로 통용되는 매체 용어인 만화(comics)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책섬>은 전통적인 만화작법마저도 파괴하는 경계초월적 접근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림 서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장면과 장면 간을 나누는 동시에 이어주는 서사적 장치로서의 프레임도, 인물들의 대사를 둘러싸 영상적 미장센과의 분리를 가능케 하는 선도 없다. <책섬>의 각 페이지는 글과 그림이 구별 없이 한 데 섞여 뛰노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경제적이고도 정교하게 배치된 문장 하나하나는 시에서의 행과 연 구성처럼 회화적 효과를 내며, 축약적인 스타일의 그림은 압축적인 시적 언어를 닮아 간다. 적절한 양적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무한히 서로에 근접해 가는 <책섬> 속의 그림과 글은 "왜 시는 문자와 이미지로 엮여 있을까"라는 저자의 물음에 대한 답 그 자체이다.
여백이 풍부한 책장들은 무한회귀적인 사색의 공간으로 독자를 이끌지만, 이 이야기에도 역시 끝은 있다. "문제"라는 암초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또 "작가" 자신과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며, 저자와 소년은 겨우 책으로 만든 섬, 섬으로 만든 책인 책섬을 완성한다. 그리고 "잠시 쉬자"던 저자는 그 위에 소년을 혼자 실어 떠나보낸다.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 끊임없이 어딘가로 표류하며 섬만 하던 크기의 책은 점점 작아져 소년이 뭍에 닿을 즈음에는 발로 겨우 딛고 설 정도가 된다. 왜 이렇게 작아졌을까? "지음"으로써 책과 하나 되고, 또 가없는 상상의 공간으로서의 책을 직접 살아내는 과정, 즉 소년만의 "읽기"가 이제는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이 아닐까.
<책섬>은 백사장을 눈앞에 둔 소년을 내려다보는 시점에 이어, 그의 발자국만을 표지 위에 얹은 채 오롯이 홀로 남아 있는 책의 클로즈업 샷으로 끝난다. 만들고, 살고, 읽었지만, 가지고 갈 수는 없다.
"책은 만든 사람 게 아니니까."
책이란 형태 없는 말과 생각의 집합체를 넘어서는 현실이자 독자와 작가가 나누는 교감의 공간이다. 또 우리가 보고, 누리고, 숨 쉬는 삶의 공간을 구성하는 소중한 물건이기도 하다. 디지털 콘텐츠의 바다를 표류하며 꿋꿋이 발 디딜 자리를 지키는 장인의 이야기인 <책섬>은 책이 그 물질적 존재감만으로도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실체임을 상기시켜 주는 반가운 목소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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