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땅값을 근심하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프레시안 books]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

도시는 시민의 것이다.

도시는 시민의 것, 좀 더 정확히 말해 도시를 생산한 노동자의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는 그 곳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손(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공간 또는 건조환경)의 생산에는 국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건설자본이나 금융자본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국가 예산은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된 것이고, 각종 자본도 궁극적으로 과거 노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 공간은 공공 공간일 뿐 아니라 시민 모두가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향유할 수 있는 공유재이다.
도시 공간이 공유재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최근 공유재의 관리와 권리를 둘러싼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공유재에 관한 논의는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의 우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 목축인들이 공유지에 소를 무리하게 많이 집어넣으면 결국 공유지가 오염되고 황폐해지면서 더 이상 소를 키울 수 없게 된다.-편집자)'을 통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에서 하딘 자신뿐 아니라 이에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공유지에 방목한 소의 사적 소유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라는 수상연설에서 소를 기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해서 공유 규칙을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해당사자들이 만나 공유 규칙을 마련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공유지의 규모가 도시 공간(도시 재개발)이나 지구 공간(기후 온난화)으로 확장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 <반란의 도시>(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펴냄). ⓒ에이도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Negri)는 최근 '다중'의 혁명과 정치적 조직화를 다룬 <공통체>(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책 펴냄)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의 모순과 금융위기를 서술한 후 그 동안 재산(소유) 관리의 일반적 방식이었던 '공화국'에 대신하여 다중이 군주되는 '공통체'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국가의 존재 여부에 대한 주장의 일관성이 미흡할 뿐 아니라, 공통체가 실현될 구체적 장(메트로폴리스, 즉 대도시)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데이비드 하비의 가장 최근 저서, <반란의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펴냄, 이하 '반란의 도시')는 공유재로서 도시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권리를 강조하는 한편, 자본주의 도시화 과정에서 도시 공유재에 대한 권리가 어떻게 상실되었는가를 분석하고, 나아가 상실된 공유재로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어떻게 '도시혁명'을 이끌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제안하고 있다.

하비는 지리학자이지만 사회이론 및 인문학 전반에 걸쳐 세계적인 진보적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8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사이만 해도 <반란의 도시> 외에도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이강국 옮김, 창비 펴냄), <세계시민주의와 자유의 지리학(Cosmopolitanism and the Geographies of Freedom)>을 출간했다. 이들 가운데 <반란의 도시>는 자본주의 도시공간의 형성에 관한 이론적 논의와 더불어 이에 내재된 모순의 극복을 위한 도시혁명의 실천적 함의를 매우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자본주의 도시화의 한계
도시는 인간 삶의 터전이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면서, 자신의 삶도 만들어 왔다. 경제지리적으로 논점을 좁혀보면, 도시는 본래 잉여생산물이 사회공간적으로 집적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도시는 잉여물을 생산한 계급과 이 잉여물을 전유하고자 하는 비생산 계급 간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도시의 역사는 언제 어디서나 계급투쟁의 역사였다. 자본주의 하에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치밀하게 계획되고, 더욱 구조적으로 실행된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확대 재생산과정, 즉 잉여가치(이윤)의 영속적 추구를 전제로 하며, 이를 위해 잉여물의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를 요구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도시 공간의 생산에 필요한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잉여생산물을 흡수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의 확대재생산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즉 "자본주의는 과잉자본을 생산하고 흡수하기 위해 이윤을 확보할 영역을 끊임없이 발견해야 한다."(29~30쪽)

하비에 의하면, 자본주의 도시화가 바로 이 역할을 수행한다. 1848년 공황 이후 프랑스 제2제정기 오스망의 파리 개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뉴욕 대도시권의 교외화,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의 지구화를 배경으로 세계 도처(중국의 많은 도시들, 그리고 두바이, 상파울루, 마드리드 등)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도시화 과정은 과잉자본의 생산과 흡수를 위한 전략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 <자본이라는 수수께끼>(데이비드 하비 지음, 이강국 옮김, 창비 펴냄). ⓒ창비
이러한 도시화 과정에서 붐을 일으킨 부동산 시장은 도시 경제 나아가 국가 경제 성장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지구적 금융시장과 연계되어 세계경제를 추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도시화 붐의 역사적 사례들은 결국 정치경제적 위기를 초래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이에 이은 세계 금융위기는 우리가 직접 겪은 경험이다.

하비는 자본주의 도시화 과정에 내재된 이러한 위기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고 주장한다. 2009년 제시된 '세계은행개발보고서'는 경제 지리와 도시 개발에 관한 최초로 진지한 고찰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도시개발과 거시경제 간 관계에 대한 통찰은 매우 부족하다. 반면 고전적 마르크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도시화가 이론의 핵심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도시화는 자본축적이 전개되는 장일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내재된 과정이다. 하비는 이를 도시 토지 및 부동산 시장에서 작동하는 의제자본과 신용체계, 그리고 이를 통한 독점지대의 전유로 설명한다. 이에 대한 하비의 체계적 설명은 그의 역작, <자본의 한계>(최병두 옮김, 한울 펴냄)에서 상술되지만, 그의 최근 저서 <신자유주의>(최병두 옮김, 한울 펴냄) 및 <자본이라는 수수께끼>와 더불어 이 책 <반란의 도시>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서술되어 있다.

하비는 또한 과잉자본의 생산과 흡수 전략으로서 자본주의 도시화 과정은 심각한 파국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 과정은 자본축적의 주기적 위기뿐 아니라 도시 공간의 '창조적 파괴'를 동반한다. 자본주의적 "도시 형성 과정의 핵심에는 배제와 약탈이 본질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도시 재개발을 통한 자본 흡수의 다른 측면이다."(49쪽) 이러한 창조적 파괴는 도시 대중들로부터 일체의 도시권을 박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시에 대한 권리

▲<공통체>(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책 펴냄). ⓒ사월의책
하비에 의하면, 자본주의 도시화 과정에서 초래된 위기를 극복하고 대안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도시가 공유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트와 네그리와 비슷하게 하비도 오늘날 집단적 노동이 생산해 낸 방대한 공유재가 곧 대도시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공유재를 사용할 권리는 공유재를 생산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이 사실은 당연히 도시를 만들어낸 집단적 노동자가 도시권을 요구할 근거가 된다"고 강조한다(146쪽).

도시권의 개념을 통해 하비가 문제로 삼고자 하는 점은 공유재 그 자체라기보다 도시 공유재를 생산한 사람과 이를 전유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도시 공간 형성은 도시 공유재(…)를 영속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인 동시에 사적 이익집단이 도시 공유재를 끊임없이 전유하고 파괴하는 과정"이다(148쪽). 특히 지난 몇 십년간 기승을 부린 신자유주의적 도시 전략은 잉여 관리를 민영화하여, 자본과 소수 상층계급에게 극히 편향적으로 집중되도록 했다.

도시권은 이러한 자본주의 도시화 과정에서 집단적으로 생산된 공유물 또는 잉여물의 민주적 관리를 의미한다. 도시권은 신자유주의적 도시 전략으로 사적 이익집단의 손아귀에 들어간 도시 공유재를 되찾기 위한 애타는 호소인 동시에 불가피한 요구이다. 그러나 도시권 개념은 아직 체계적인 의미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자칫 공허한 기표에 불과할 수 있다. 또한 자본과 상층계급이 일반 시민보다 더 강하게 도시권을 요구할 수도 있다.

사실 하비가 제시한 도시권의 개념은 앙리 르페브르(Lefebvre)가 자본론 1권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여 집필한 <도시에 대한 권리(Le Droit à la Ville>에서 시작되며, 그의 역작 <공간의 생산>(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에서 일반적 개념으로 체계화된 것이다. 그러나 도시권 개념을 채우기 위하여 반드시 르페브르나 하비에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도시권 사상은 거리에서, 지역사회에서 형성된 것"이며, "억압당해 절망하는 사람들의 도와달라는 절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13쪽).

▲ <공간의 생산><앙리 르페브르 지음, 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따라서 우선 일상생활 속에서 도시란 시민들의 집단적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다. 즉 "공유재는 사회적 이익을 위해 생산되고 보호되고 이용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인식은 자본가 권력에 저항하고 반자본주의 이행의 정치를 다시 생각하는데 필요한 기본 뼈대이다."(158쪽) 하비는 이러한 도시권의 요구를 통해 잉여의 생산과 분배를 사회화하고 누구에게나 개방된 새로운 공동의 부를 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민들은 자신의 바람에 따라 도시를 재창조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즉 도시권은 도시에 산재한 자원에 접근할 권리를 넘어선다. 즉 도시권은 단순히 도시 자원의 '분배적 정의' 실현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권은 도시를 시민들이 바라는 바대로 바꾸고 재창조할 권리이다. 도시권은 자신이 창출한 도시로부터 소외된 시민들이 자신의 열정에 따라 도시를 재창출하고자 하는 '생산적 정의'의 실현을 함의한다.

반자본주의 운동으로서 도시혁명

도시의 잉여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그리고 도시를 어떻게 재창조할 것인가? 이 문제는 도시의 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집단적 권력에 좌우된다. 따라서 도시권은 개인적 권리가 아니라 집단적 권리이다. 또한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우리가 만들어내 도시 공유물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재창조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권력에 대한 주장이다.

이러한 권력은 어떻게 획득되고, 조직(제도화)될 수 있는가? 오스트롬은 '복합적 경제시스템의 다중심적 거버넌스'를 제시한다. 그러나 하비에 의하면, 이 제안은 분권적 자치를 외치는 다른 급진적 제안과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머레이 북친(Bookchin)이 다양한 규모에서 공유재를 창출하고 이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자치체 연합주의 역시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지만, 자치체간 불균등발전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하비가 제안하는 방법은 국가를 향해 공공 목적에 부합하는 공공재를 공급하라고 주장하는 한편,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공유재의 질을 확대하고 높이는 방향으로 공공재를 전유하고 이용하는 것이다(159쪽). 이러한 주장에서 하비는 공유재의 공급과 관리를 위한 위계적 조직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주의적 주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비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하비가 주장하는 것은 '도시혁명'이다.

▲ <신자유주의>(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한울 펴냄). ⓒ한울
하비는 도시화가 자본 축적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반자본주의 투쟁은 당연히 도시 공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비는 도시사회운동을 노동계급운동과 분리된 것 또는 그 파생물로 인식하는 전통 '좌파의 전망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도시 공간은 정치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일 뿐 아니라 잉여가치의 생산과 흡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반자본주의 운동을 위하여 도시혁명은 불가피하다.

도시혁명의 불가피성은 첫째, 계급적 착취의 역학은 일터에만 한정되지 않고 도시 공간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며, 둘째, 도시 공간 자체가 생산된 것으로 도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소유하고 관리할 권리를 가지며, 셋째, 도시는 공장을 거점으로 한 노동운동에 대한 폭넓은 지지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논의에서 하비는 노동계급 운동에 우선성을 두는 것처럼 보이거나 또는 도시운동과 노동운동을 완전히 통합시키지 못한 한계를 보인다.

또한 하비가 이 책에서 보인 한계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어떻게 도시를 조직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특히 그를 딜레마에 빠지도록 한 것은 지역불균등발전, 즉 자치체 간 부의 불균등 분배 문제이다. 이로 인해는 하비는 다소 모순된 주장, 즉 "자치체 간 부의 재분배 규칙은 민주적 합의를 거칠 때 또는 위계적 거버넌스 구조 속에서 시민이 민주주의 주체로 나서서 다양한 수준에서 결정권"을 행사할 때 확립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상위 정치체 내부에서 시민권과 권리의 세계는 계급과 투쟁의 세계와 꼭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하비의 기본 관심은 도시혁명, 특히 도시권 운동이며, (자본주의적) 국가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즉 그에 의하면, "도시권은 이미 존재하는 권리가 아니라 도시를 사회주의적 정치체로 재건설하고 재창조하는 권리로 해석해야 한다. 한마디로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을 근절하고 파멸적 환경 악화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도시를 건설할 권리"이다(234~235쪽).

이러한 도시권에 근거하여 하비는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옹호한다. 미국 국가는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에 대응하여 "국가만이 공공 공간을 관리하고 자유롭게 처분할 배타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272쪽), 도시의 공공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 국가의 것인가, 시민의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다. 도시는 시민의 것이다. 누가 이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도시의 공유적 잉여를 사적으로 전유하는 자본과 상층계급에게 반란하라! 그리고 도시의 공공 공간을 점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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