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전북 군산 타타대우상용차. 컨베이어 벨트 주변을 오가는 편철용(33) 씨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로 편 씨는 7년간의 근로 계약에 종지부를 찍는 '사직서'를 쓴다. 다음 주에는 아내와 장모, 어린 두 딸과 함께 일본 후쿠오카로 축하 여행을 떠난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사직서. 편 씨는 지난 2007년 3월 사내하청 업체 소속 3개월짜리 계약직으로 타타대우상용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랬던 그는 노사 협의에 따라 오는 2일부터 정규직 신분으로 새롭게 회사에 출근한다. 편 씨와 함께 비정규직 동료 50명도 이번에 함께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연봉은 2000만 원 가까이 올라요. 애가 둘인데 정규직이 되면 회사의 학자금 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정규직 전환을 가능하게 한) 노조 집행부에 정말 의지가 많이 돼요. 열심히 일해서 얼른 집도 사야죠."
외환위기 후 경영 호전되자 비정규직 대거 투입…"뼈아픈 기억"
타타대우상용차 노사가 매년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03년. 막 법정관리에서 탈출한 대우그룹 일부가 인도 기업인 타타그룹에 매각된 때다.
매각 전년도부터 경영 상황이 호전되자 회사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거 신규 채용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였다가 몇 년이 지나 사람이 새로 필요해지자 '분할 통치'가 가능한 비정규직을 택한 셈이다.
차덕현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타타상용차지회장은 당시 상황을 뼈아프게 기억한다. "그때부터 비정규직을 받지 않았어야 하는 거지요, 사실…. 그걸 노조가 못 막은 거는 잘못됐던 겁니다."
노조는 호전된 경영 상황을 근거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차 지회장은 "당시 회사는 정규직 전환을 정례화한다는 생각은 안 했던 거 같다"며 "수익도 난 상황이니 노조 요구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던 거 같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2003년, 노사는 비정규직 25명을 처음으로 정규직 전환한다.
"그러고 나서 매년 30~50명씩 전환을 했어요. 3~4년 그렇게 하고 나니 회사로서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요. 하던 걸 안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니까요. 2008년 경제위기 때, 그리고 지난해에도 회사는 경영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전환을 유보하자고 제안했었습니다. 노조는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전환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고요."
전환 릴레이는 이렇듯 노조의 강력한 의지로 단 한 해도 쉼 없이 계속됐다. 이제는 관리직을 제외한 1334명 노동자 가운데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149명만 남아 있다. 차 지회장은 앞으로 2년 후쯤에는 '비정규직 제로(0) 공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08년 1사1노조 전환 후 조직력·교섭력 배가
흔치 않은 일이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불법파견·위장도급 논란에 시름하면서도 사내하청 사용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간접 고용이 갈수록 확산하는 한국 노동시장의 풍토에서는 좀처럼 찾기도, 기대하기도 어려운 성과다.
아울러 주목할 점은 이같은 노사 협의를 만들어낸 노조가 이른바 '비정규직 노조' 또는 '사내하청 노조'가 아니란 점이다.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아우르는 '1사 1노조'다. 지난 2008년 만장일치로 노조 규약을 바꾸며 사내하청 노동자 321명을 모두 노조에 가입시킨 후 노조의 조직력과 교섭력은 이전보다 훨씬 탄탄해졌다.
"1사 1노조로 바뀌었을 땐 의구심도 많았어요. 1~2년 지나고 나서 와해되지 않을까. 그런데 첫해, 그다음 해에도 정규직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게 매년 계속되니 (1사 1노조 체제가) 유지가 된 거예요. 비정규직들도 '나도 조금 있으면 정규직이 된다', '조금만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노조 집행부를 믿는 거고요." (편철용 조합원)
"남은 동생들도 빨리 전환됐으면 좋겠어요"
정규직 전환 7년 차를 맞은 김용석(39) 지회 쟁의차장은 전환 이후 변화 중 하나로 회사에 대한 '애착심'을 꼽았다. 과거에는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과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외계인' 같았지만, 전환 이후에는 회사를 다니는 마음가짐이 저절로 바뀌었다고 했다.
"비정규직이었을 때는 은행에 가서 타타대우상용차를 다닌다고 말을 못 했어요. '어느 회사를 다니십니까' 그러면 사내하청 업체 이름을 말해야 하는 거지요. 친구들 만나도 다니는 회사 이름을 자신 있게 말 못했고요.
그러다 1사 1노조가 되면서 일단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노조 대의원들이 현장에 와서 뭔가를 얘기하려다가도 '비정규직들은 나가 있어'라고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 게 하나하나 상처지요. 그런데 정규직이 되니 안 시켜도 공장 주변 쓰레기를 줍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앞서 정규직이 된 조합원들의 눈에는 비정규직으로 남아 있는 동료와 후배들이 보였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 매년 정규직 전환자가 선발되고 그 결과가 발표되는 때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현장은 뒤숭숭해진다.
"친한 동생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전환 발탁에서 떨어졌어요. 문자가 왔는데 안쓰럽더라고요. 내가 정규직이 되고 나니 정말 좋고, 그러니 동생들도 빨리 이렇게 좋아져서 같이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완전 다르거든요."
"왜 했느냐고요? 그게 당연한 거고 정의로운 거니까요"
많은 이들이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지적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몸을 사리는 정규직 노조들.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기존 직접 고용 노동자들의 '밥그릇'이 줄어들 거란 우려로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까지 차단하는 노조들을 적지 않게 보아온 결과다.
차덕현 지회장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많은 개선을 이룰 수 있다"며 "물론 노조 집행부나 간부는 조합원의 동의 없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조합원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건 간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김 쟁의차장 또한 "생각이 올곧은 분들이 집행부에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현대자동차의 경우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내려도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안 움직였다. 집행부가 안 움직이니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시킬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차 지회장은 그러면서도 모든 공을 자신과 노조 간부에게로 돌리는 것을 경계했다. 외려 '1사 1노조를 선택하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 누군가는 못 받을 상여금에 반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집행부가 1사 1노조 및 정규직 전환을 안 했더라도 조합원들이 먼저 질문했을 겁니다. 오늘도 교육 간담회 때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10명 정규직 전환하면 1인당 2500만 원의 직간접적 인건비가 상승합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450명을 정규직 전환하면서 얼마큼 돈이 드는지 누가 계산했던 게 아니에요. 주판알을 튀기면서 판단한 게 아니라 그냥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형 동생이니까. 그리고 그게 정의로운 거고 당연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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