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아줌마인 내가 햄만 보면 질리는 이유는…"

[당신은 얼마짜리 노동자입니까? ③] 120만 원 받는 마트 노동자

100대 기업 안에 드는 대형마트…노동조건, 임금은 바닥

홈플러스. 주말이면 사람들 수만 명이 장을 보러 대형마트로 향한다. 마트란 공간은 어느새 단순히 장을 볼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기분을 내며 시간을 보내는 나들이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도시민들의 종합 생활공간으로 변모하는 이 공간 곳곳에, 실제로 마트를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으로 사는 노동자들이 있다. 국내 100대 대기업이라 불리고, 유통업계 매출 2위 기업인 그곳에 한 달에 100만 원도 안 되는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마트 노동자들이다. 이 글은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해 쓴 것이다.

▲ 물건을 진열하는 마트 노동자들. ⓒ강미경

40대, 여성, 아들 하나 딸 하나를 기르고 있는 엄마. 마트 노동자.
나는 나이 마흔에 결혼 이후 처음으로 일자리를 얻었다.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다닌다. 남편이 벌어 오는 돈도 있지만, 애들 학원비에 부족한 생활비라도 벌어보고자 일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나이 마흔에 변변찮은 경력도 없는 아줌마가 구할 수 있는 일이란 보험판매, 정수기, 도서 판매, 학습지 교사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앞세운 동화책을 파는 일을 했다. 한 일주일은 퇴근도 잊을 정도로 일이 재밌었다. 그림 그리는 일도 있고, 아이들과 캐릭터 그림으로 만들기도 함께하고…. 그런데 딱 일주일 뒤에 회사에서는 주변에 아이를 둔 엄마들이 있는지, 미취학 아동 자녀가 있는 지인 명단을 내라고 했다. ‘아, 그래서 이 일은 아니구나’ 하고 바로 그만두었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하며 물건 파는 건 체질이 아니었다.
다시 일자리를 구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동네 마트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햄을 납품하는 마트 협력업체였다. ○○햄이라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일이 참 재밌었다. 28살까지 직장 생활하다가 결혼하고 그만뒀는데, 13년 만에 다시 일을 하니 참 좋았다. 애들 학교 보내고 10시에 출근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8시에 퇴근했다.
한 달 일하고 월급도 나오니 신이 났다. 물론 일은 쉽지 않았다. 퇴근시간이 8시로 정해졌다고 해서 일이 그 시간에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밥도 직접 해먹었다. 마트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아줌마들이다 보니, 직원들 먹는 김치도 200포기, 300포기씩 담아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지칠 줄을 몰랐다. 새로운 경험이었고, 직장 동료들이랑 함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직장을 그만뒀다. 나름 오랫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노하우도 생기면서 애정을 갖고 일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상사와의 마찰로 더는 이 회사에 정을 둘 수 없었다. 협력업체 직원은 힘들다. 협력업체의 눈치도 봐야하고, 원래 일하는 마트의 눈치도 이중으로 봐야 한다.
매출이 안 나오면 매출을 채우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물건 좀 사보라고 권유를 해야 하고 그렇게도 안 되면 지갑을 털어 사기도 했다. 얼마나 많이 샀냐하면,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지 않은 우리 가족이 10년 동안 먹은 햄이 수백만 원어치였다. 지금은 햄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름 최선의 노력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본인의 책임도 다 하지 않으면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상사와의 마찰은 더 이상 일을 계속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오래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 이곳 홈플러스에 들어왔다.

▲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 ⓒ강미경

홈플러스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 그 큰 건물에 수백 명의 40~50대 아줌마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 또래의 아줌마들은 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술 없고, 학벌도 높지 않은 40~50대 아줌마들이 갈 곳은 뻔했다. 정작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홈플러스에서도 시작은 협력업체였다. 처음엔 김치, 그 다음엔 라면. 그런데 이 회사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출이 줄어 사람을 자른다고 했다.

마침 본사에서 직영 직원을 뽑기에 아르바이트로 들어왔다. 처음 홈플러스에 들어갈 땐 인사 담당 직원이 3개월만 일하면 비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장담했다(아르바이트로 들어온 뒤 비정규직을 거쳐 무기계약직이 된다. <편집자>).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 6개월이 지나도 약속했던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꼭 우리를 채용해주겠다고 약속했던 인사 담당 직원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만둬버렸다.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그래도 여기 와서 남한테 욕 안 먹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이 대형마트 직영 직원이라는 타이틀이 뭐가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렇게 뒤통수를 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기약 없는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옆 동네 새롭게 오픈하는 매장으로, 발령도 아닌 사직서를 내고 다시 비정규직으로 새로 취직하게 되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일은 힘들었다. 보름 뒤 오픈을 앞두고는 수십 명이 매달려 있던 전체 매장 오픈 준비를 단 6명에게 맡겼다. 매장 오픈에 투입한 정규직 직원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은 밖에서 전단지 뿌리기, 카트 조립하기 등의 간단한 일만 하였다. 뭔가 비상식적인 업무 분담이라고 느끼면서도 당연히 그렇게 일해야 하는 줄 알고 이를 악물고 나에게 맡겨진 일만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오전조, 오후조가 따로 있었지만, 그때는 연장수당이고 뭐고 없이 죽어라 일을 하기도 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연장근무만 하루 6시간씩 했다. 파김치가 되어 밤 11시쯤 퇴근해도 차비 한 푼도 안 나왔다. 매장을 옮기며 더 멀어진 집으로 귀가하기 위해 1만~2만 원 정도의 택시비를 거의 매일 자비로 부담하며 일했다.
애들 학원비, 공과금, 차비, 식비 빼면 남지 않는 월급
처음 ○○햄에서 일할 때(2001년) 아침 10시에 출근해 8시까지 일했다. 그리고 첫 달 받은 월급이 68만 원이었다. 첫 월급을 받고서는 참 좋았다. 그런데, 이 ○○햄에서만 10년을 일했는데, 그만둘 때 월급이 100만 원도 안됐다. 그래도 여기는 애들 학자금이라도 주고, 보너스도 있었다. 근데 여기 그만두고 홈플러스에서 김치를 팔았는데, 딱 120만 원 줬다. 하루에 9시간씩 근무했는데, 상여금 뭐 이런 거 하나도 없고 무조건 딱 120만 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월급은 단 1만 원도 오르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보험료 떼고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받는다. 오전, 오후조 2교대 근무 중 오후조는 11시, 12시에 퇴근하면서 교통비를 더 받는다. 그래서 오전조가 많은 달은 월급을 100만 원도 못 받는 달도 있다. 가스비,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 공과금 다 해서 약 40만 원, 통신비 10만 원, 보험료 20만 원. 그리고 오후조 스케줄이 많은 달, 퇴근시간에 이미 차가 끊겨 택시를 타면 차비만 해도 한 달 20만~30만 원이 나온다. 뭐 한 것도 없이 100만 원이 나간다. 그 세월 동안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들 둘이 취직을 해서 그나마 지금은 나은 생활이지만, 120만 원으로 살아가자니 빡빡하기만 하다. 문화생활이나, 자기계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꿈도 못 꾼다.

▲ '매주 목요일은 정시 퇴근하는 날'이라고 적힌 현수막 앞에 엎드려 있는 마트 노동자가 보인다. 목요일을 빼고는 정시에 퇴근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강미경

그래서 생활비를 좀 아껴보고자 오후조 근무를 끝내고도 택시를 타지 않고 집까지 긴 거리를 걸어가곤 한다. 12시가 넘은 시각에 밤거리를 걸어야 하는 그때가 제일 우울하다.

어느덧 나이를 꽤 먹은 지금은 아프지 않은 것이 돈을 버는 거라고 군것질도 줄였고, 사고 싶은 게 생겨도 미루고만 있다. 그럼에도 살림은 여전히 빠듯하기만 해 저축할 수가 없다.
혹여나 임금이 오른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저축이다. 두 아이들도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돈을 벌고 살고 있지만, 나중에 시집 장가 갈 때 뭐라도 해주려면 돈을 모아놔야 하는데…. 저축 한 푼도 못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임금이 오르면 두 번째로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을 가는 것이다. 한 명의 천주교 신자로서(물론 대형마트 직원은 주말에 쉬는 게 하늘에 별 따기라 성당을 못 간 지 오래다.) 예전부터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 정말 가고 싶었다. 독일도 가보고 싶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곳이다.
홈플러스에서 일한다고 하면 누구는 큰 마트에서 일하니 좋겠다, 돈도 많이 받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아니다. 상상 이상의 고된 일을 하고, 많은 손님들도 대하는 힘든 직업이지만, 대가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동료 직원들도 그간에 못 받은 걸 한꺼번에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앞으로라도 우리가 일하는 만큼, 우리가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만큼 돈을 받고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바람뿐이다.
<프레시안>은 "당신은 얼마짜리 노동자입니까?"라는 주제로 릴레이 인터뷰를 싣습니다. 이 인터뷰는 '임금'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의 낮은 최저임금이 가져온 현실을 들춰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인터뷰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생활임금 쟁취/서울연석회의'의 참여 단체가 차례로 맡을 예정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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