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과 훔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조슈아 넬먼 지음, 이정연 옮김, 시공아트 펴냄)의 저자는 그림을 훔치는 이들, 그러니까 미술품 도둑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미술품을 훔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이 미술품을 훔치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보니 체글레디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우선은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고, 또 연약하고 손상되기 쉬운 작품을 직접 보호해야겠다는 의무감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더 완벽한 자신의 컬렉션을 완성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콧대 높은 문화 기관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훔친 그림을 팔 아래 끼고 거리의 군중 사이를 활보하는 데에서 다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는 기이한 사람들도 있다.”(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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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돈과 미술의 뒷거래, 미술계 구성원이 은연중에 도둑과 담합해 구성한 미술품 도난의 세계를 왜 이렇게 서술했을까.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는 소설이 아니다. 저자가 8년 남짓 발품을 팔아 취재한 원고를 바탕으로 작성한 논픽션이다. 463페이지에 달하는 책 안에 담긴 등장인물과 미술품 도난 사건, 미술 업종 관계자들의 경험을 토막 내 20매짜리 기사로 만들어도 도합 100건은 넘게 나올 것 같다. 그만큼 방대한 팩트들이다.
캐나다의 기자이자 출판 편집인인 저자 조슈아 넬먼은 이 책에서 ‘나’로 등장한다. ‘미술품 도둑과 경찰, 아트 딜러들의 리얼 스토리’라는 한국어판 표지에 찍힌 부제를 슬쩍 넘긴 독자라면, FBI 미술 범죄팀의 수사관과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보안 팀장 그리고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미술품 도둑을 만나러 종횡무진 하는 ‘내’가 호기심 많은 탐정이거나 소설 속 주인공의 옆자리를 차지한 3인칭 화자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미술품 도둑과 사라진 그림들을 둘러싼 이 이야기는 앞서 말했듯 모두 팩트이며, 이 팩트를 통과하며 저자는 점점 더 미술품 도난과 미술 세계 자체의 불투명한 구조에 눈뜨게 된다. 그리고 좀도둑이 어떻게 미술도둑이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발목 잡히지 않고 훔친 미술품을 무사히 거래하여 유통시킬 수 있는지 하나씩 배워나가는 수련생을 자처한다. LA, 뉴욕, 런던 등을 취재차 방문하여 눈코 뜰 새 없이 취재원을 만나던 저자는 이집트 카이로를 찾아 문화재 약탈과 관련한 회담에 들르며 눈알만 빠져나간 거대한 파라오 죠세르의 조각상 앞에 멈춰서기도 한다.
“이 조각상에는 원래 수정으로 만든 아주 아름다운 두 눈이 박혀 있었어요. 지금 이런 수정 눈알이 그대로 남아있는 조각상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모조리 도난당했거든요.”(64쪽)
미술품 도난에 대해 ‘말’하는 건 책 속의 나가 아니라 저자가 만난 수십 명의 사람들이다. 카이로의 조각상이든, 네 번이나 도난당했던 덜위치 미술관의 렘브란트 그림 <야코프 데 헤인 3세의 초상>에 관한 이야기든 조슈아 넬먼은 정확한 사실을 들으려는 입장에 서있다. 미술품 약탈의 범죄 세계를 보여주는 현장은 그가 만난 인물의 코멘트, 그러니까 따옴표 속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술품 도둑의 세계라는 퍼즐을 구성해내는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인물들의 ‘말’로 구성된 짤막한 인물론이기도 하다.
책은 총 16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장의 챕터는 한 명의 인물이 주인공 격을 맡는다. 책의 힘은 도난 미술품 사건을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다른 입장에서 보고 있다는 데에서 온다. 강력반 수사를 하다 미술품 도난 사건을 맡아 이젠 온갖 갤러리의 흐름을 꿰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형사 도널드 히리식, 그림을 도둑맞고도 몇 달 간 신고를 할 수 없었던 갤러리 주인, 미술관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열중한 게티 센터의 보안팀장 밥 콤스, 좀도둑으로 활동하다가 도난 미술품 거래를 알선하는 중개인으로 크게 성공한 폴이라는 사나이.
될 수 있는 한 생생하게 각자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가려는 저자의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좀도둑 출신의 폴은 미디어에 나오는 걸작이 아니라 별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을 빼내는 게 여러모로 현명하다 말하는가 하면, FBI 직원에 따르면 도둑은 밖에서 침입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미국에서 도난당한 골동품과 미술품의 리스트를 보면 미술관 직원이나 개인 주택의 관리자 등 내부인의 소행이 가장 많다고 한다.
사건이 종결된 결론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이 사건들은 몇 가지 상태를 반복적으로 오간다. 이미 책 속에 등장하는 도난당한 미술품은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거나,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왔거나, 옥션을 통해 국경을 넘어 팔렸거나, 분실 및 도난 미술품의 데이터베이스 ‘아트 로스 레지스터(☞바로 보기)’에 등록되어 있다.
일례로 1990년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일어난 유명한 미술품 도난사건을 보자. 경찰복을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나 경비원을 제압한 후 12점의 회화를 그대로 가져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는데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아직 미술관은 도난당한 요하네스 베르메르(책에서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로 표기했다)의 그림 <콘서트> 자리에 다른 그림을 거는 대신 빈 액자를 걸어두고 있다.
팩트의 발굴에서 한발자국 나아가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가 흥미로울 수 있는 건 훔친 도둑이든 추적하는 경찰이든 미술 시장의 불투명함을 공통적으로 말한다는 점이다. “만일 미술품 거래 사업이 갑자기 투명해진다면, 이 시장 전체가 그대로 무너지고 말 거예요”(44쪽) “훔친 미술품은 반드시 ‘세탁’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어요.”(282쪽) “보안은 두 가지 요소들로 구성됩니다. 바로 기술과 인력이죠.”(294쪽)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보안팀장 콤스의 말을 미술품 도둑들도 똑같이 되풀이한다.
그리고 도둑과 경찰 양 측에서 말하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도둑이든 FBI 미술 범죄팀 매니저든 모두 미술품 거래의 비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로 데이터베이스, 즉 정보 시스템의 구축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도둑들에게 훔친 그림을 팔 유통망과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면, 경찰들에겐 도둑과 사라진 그림의 행방을 찾는 레이더망이 필수다.
돈과 예술을 둘러싼 도난 사건을 추적하는 꼼꼼함보다 흥미로운 쪽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미술에 별 열정이 없음에도 왜 미술품의 ‘도난’과 ‘추적’에 이토록 매달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에 나타나는 인물 중 대다수는 미술에 무관심한 채로, 미술품을 훔치거나 미술품을 훔친 도둑들을 추적해 왔다고 말한다. 왜 하필 미술품인지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은데, 군데군데 등장하는 ‘왜 미술품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원론적이다.
FBI 역사상 처음으로 미술품 수사를 전담한 로버트 위트먼은 훔친 그림을 계속 찾아다니는 일이 왜 중요하냐는 저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내가 찾은 렘브란트의 작품은 400년도 더 된 작품이에요. 400살이 넘은 사람을 본 적 있나요?” 그가 말했다. “문화재는 영구하고, 우리의 인생은 짧아요.”(325쪽)
사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을 일일이 열거하는 책의 전개를 100% 흥미롭게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가 속도감 있게 다음 페이지, 또 다음 페이지를 열어젖히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첫째,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만만치 않다는 점일 것이다. 우아함에서 폭력으로 미술범죄의 트렌드가 변화했다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부터 책에 담긴 정보를 재구성해 당대 한국 미술계의 재벌 미술관과 갤러리에 관련된 몇몇 사건들과 대비해 생각해보는 재미도 적잖다. 집요하게 미술품 도난 사건을 추적하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도난 미술품 거래 산업이 세상에서 규모가 네 번째로 큰 암거래 시장이라는 점(상위에는 마약과 돈세탁, 무기 거래가 있다.)에서부터 2005년 창설된 FBI 미술범죄팀의 수석 수사관 로버트 위트먼이 말하는 업무 수법도 듣게 된다.
“함정수사를 할 때 위트먼이 선호했던 가짜 신원은 부도덕한 미술품 딜러나 탐욕스러운 컬렉터로, 도난 미술품을 구입하기 위해 기꺼이 큰돈을 현금으로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돈을 보여주면, 도둑들은 미술 작품을 보여주었다. 물론 도난 직후에 이러한 거래가 일어나는 경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도난 미술품이 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는 데에는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311쪽)
<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 앞부분에는 미술품 도난의 세계가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처럼 멋진 사건의 주조자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이 몇 번 반복해 등장한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출현한 이 영화에서는 샴페인과 여자를 좋아하는 미술애호가로 모두가 꿈꾸는 굴지의 미술품 도둑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누가 미술품 도둑을 멋지고 근사한 일로 생각한다는 걸까? 저자는 도둑, 옥션, 골동품상과 미술품 거래 시장의 돌고 도는 ‘암거래’는 장난이 아니라 엄연한 범죄라는 선포를 넌지시 건넨다.
“예술과 관련된 비즈니스는 매우 비밀스럽게 이루어지죠. 아직까지도 악수 하나로 상호간에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 바로 이쪽 일입니다. 돈이 오고간 흔적을 추적하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증거로 남아 있는 문서가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예술품이 어떻게 구매되고, 팔리고, 이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348쪽)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찾아본다면, 책 속에 등장하는 현실의 도둑은 영화 주인공은커녕 듣기 민망할 정도로 손쉽게 미술품을 제 손아귀에 넣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 예로 로스앤젤레스 석유 재벌의 저택에서 벌어진, 10억이 넘는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초상화 도난 사건을 보자. 액자는 그대로였고 유화의 질감 대신 반질반질한 표면을 가진 사진 복제본이 액자 안에 들어있었다. 응접실에서 5개월 동안이나 걸려있던 가짜 사진, 범인은 이 집에서 일하던 집사였다. 작품을 너무도 사랑한다고 강조했던 주인이 5개월 동안 가짜 그림을 못 알아본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림이란 원래 헛것인 걸까.
도둑이 쉽게 그림을 훔쳤다 해도 이미 국경을 건넌 도둑을 잡는 일은 쉽지 않다. 도둑은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을 훔친 이 한 명만이 아니라 거대한 커넥션이기 때문이다. 미술품 약탈과 범죄, 세탁과 유통 과정을 거쳐 미술이 돈이 되는 커넥션을 뚫을 수 있는 자는 어쩌면 책에 등장하는 좀도둑 출신의 폴일지 모른다. 그는 자신이 미술도둑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면 천만 원 이하의 그림들만 훔칠 것이며, 훔친 그림들을 소규모 옥션 하우스를 통해 팔 것이며, 훔친 그림이 카탈로그에 담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암시장(暗市場)의 그림은 제대로 보이지 않아야 돈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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