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아는' 남자의 때늦은 지식 강의

[프레시안 books]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지식의 미래>

십오 년 가까이 인터넷과 디지털 콘텐츠를 둘러싼 다양한 사업과 서비스에 대한 컨설팅을 하면서, 때로는 진득하니 책 한 권 전체를, 때로는 후다닥 책의 주요 부분을, 혹은 그야말로 귀동냥으로 접한 서적이 어림잡아 이삼백 권을 훌쩍 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수많은 책들 중에 진정으로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었던 책은 단 두 권밖에 되질 않는다. 하나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백욱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교수의 <링크(Linked)>(강병남‧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펴냄)다.

전자 <디지털이다>는 막 태동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오해들(사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할 수 있었나 싶을 만큼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것들이지만)을 조금이나마 벗어 던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후자 <링크>는 디지털과 네트워크로 가능한 변화의 방향에 대한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지인들에게 권하곤 했다.

▲ <지식의 미래>(데이비드 와인버거 지음, 이진원 옮김, 리더스북 펴냄). ⓒ리더스북
물론 <디지털이다>는 책이 발간된 지 십오 년이 지나버린 지금 시점에서는 굉장히 진부하고 식상한 내용이 되어버린 터라 이제는 어느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을 물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링크>는 유무선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전세계적인 연결성(Global Connectivity)의 제고라는 시대적 흐름의 근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로서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 동안 그럴 수 있는 고전에 근접해 있는 멋진 책이다.

서평을 위해 책의 표지를 보며 <지식의 미래>(데이비드 와인버거 지음, 이진원 옮김, 리더스북 펴냄)는 어디에 속할 것인가를 잠깐 짐작해보며, 부디 후자에 속한 책이기를 기대하며 표지를 넘겼지만 활자들이 던져주는 것은 전자인 <디지털이다>에 가까운, 즉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그 가치를 잃어갈 현상적인 예시들이었다.

더구나 네그로폰테처럼 재치 넘치는 문체나 흥미로운 스토리 구조에 따라 배치되지도 않은 지루한 예시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하나하나의 예시들은 흥미로운 것들이고, 누군가에게 읊어준다면 상대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예시들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어떤 메시지에 따라 적절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배치된 것이 아니라, 적당한 소제목에 따라 분류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인 와인버거가 자신의 블로그 혹은 기타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올려둔 주옥같은 예시들을 모아 책을 만들자는 기획을 너무 안이하게 진행한 탓이 아닌가 싶다.

▲ <링크>(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인터넷을 둘러싼 지식의 생성과 소비 패턴이 과거 종이 매체 시절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데이터-정보-지식-지혜(Data-Information-Knowledge-Wisdom)의 4계층의 차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의도를 꺼낸 책의 서두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었다는 것이다.

책의 어디에도 데이터와 정보가 지식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지혜라는 아주 가치중립적이지 못하며 주관적이고 모호하기까지 한 영역으로 발전하는 것에 대한 속 시원한 언급은 없다. 오히려 저자의 주장과 예시들 대부분은 데이터도, 정보도, 지혜도 아닌 지식이란 영역을 맴맴 돌고 있다. 이러다보니 책의 300페이지에 나오는 예시가 100페이지쯤의 위치로 옮겨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인상마저 준다. 더구나 과거에 게재된 예시들을 중심으로 구성하다 보니, 지금의 연결성과 지식의 축적/소비 과정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변화에 대해서는 적절한 예시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누군가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나 관점을 가지고 이 책에 담긴 주옥같은 예시들을 재배치하고, 모바일에 의한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시들을 보강한다면, <링크>와 같은 고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디지털이다>와 같은 쉽게 읽히지만 사고를 진전시킬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미래>가 제 값을 발휘할 수 있는 독자층은 분명히 있다.

첫 번째, 인터넷을 둘러싼 여러 변화들의 중심에 서서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가져온 변화들의 양상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친절하게 모아둔 수많은 예시들을 통해, 본질은 차치하고라도 현상적으로나마 유무선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적 활동의 변화의 다양한 면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초특급 엘리트로 살아온 저자의 현학적인 예시들이 아주 쉽지만은 않다는 것은 유의해야 할 점이다. 다양한 분야의 꽤나 차원 높은 지적 활동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높은 관심이 없다면 자칫 지면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꽤 많은 수의 예시들이 지루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책의 원제목 'Too big to know'처럼 이 책의 예시들 중 절반이라도 흥미로우려면 독자 역시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디지털이다>(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지음, 백욱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커뮤니케이션북스
두 번째, 인터넷을 둘러싼 여러 변화들의 중심에 서서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행동에 옮기기 위한 의사결정을 위해 본질적인 이해가 어려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이들이다. 이해도가 낮은 설득 대상이 관심을 가질 만한 예시들을 자신의 설득 논리를 보강하는데 사용한다면 훨씬 더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현대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트렌드인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한 비가시적 연결성 강화라는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 수준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디지털 시대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생각하는 이들, 혹은 40대 이하의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중 어떤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이 될 가이드북을 찾는 분들이라면 이 책은 권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몸으로 습득해 있는 사실들을 재삼재사 다분히 재미없는 예시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미래>에서 미래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 ‘지식의 미래를 예견하다’라는 소제목이 약간의 기대를 갖게 하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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