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희망버스 참가자를 유성기업 아산공장 정문에서 맞이한 것은 45개 중대 3600명의 경찰이었습니다. 도로와 유성기업 정문 안에 들어서 있는 공권력을 보며 2011년 5월 18일에 있었던 유성기업 직장 폐쇄와 용역 깡패를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용역 깡패와 4000여 명이 투입된 공권력의 폭력에 53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쓰러지고 전원 연행되었던 2011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뼛속까지 스며들어 아픈 마음의 병이 되어버렸습니다.
지난달 15일 유성기업 정문. 아직 어려 보이는 의경을 비롯한 경찰은 자기감정을 못 이기고 상관의 지시조차 무시하며 폭언과 폭력을 남발했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 출입을 위해 공장 안에 들어갔던 조합원들은 경찰력에 감금되었습니다. 정당한 노조 출입까지 통제당한 그 순간, 노동자들은 분노했습니다. 연행하겠다며 손가락을 꺾고, 통증을 호소하는 노동자의 팔을 꺾으며 허리를 짓밟던 수십 명의 경찰에 진정 짓밟힌 것은 바로 노동자의 인권이었습니다. 변호사가 나서서 소속과 이름을 밝히라고 했지만, 끝까지 묵살하던 그의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고, 그는 얼굴 좀 보자는 노동자의 손가락을 가려진 병력 사이로 또다시 꺾었습니다. 그를 보면서, 그도 국민의 세금으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인데 왜 이렇게 우리와 다른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방패에 찍히고 소화기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아무런 저항 없이 처벌을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없을 것입니다. 유성 투쟁이 그렇습니다. 용역 깡패의 살인적 폭력과 노조 파괴 시나리오 등 유성노조 탄압은 정권과 자본의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었습니다.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만 구속되고 자본에는 면죄부가 주어졌으며, 또다시 해고와 징계 등 잔혹한 현장 탄압이 가해졌습니다.
우리도 감정이 있는 노동자입니다.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자본과 정권, 공권력에 대항하다 보면 그 감정이 폭발하기도 합니다. 모든 책임과 처벌이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대한민국 법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투쟁을 외칩니다. 유성 자본의 불법 행위를 처벌해달라고, 그 당시 책임자라 자처하는 양 공장장을 퇴진시키라고 외칩니다.
충북 옥천 광고탑에 올라 더욱 더 멀리 외치고 싶었던 노동자에게 희망버스가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한 대라도 좋다, 두 대면 어떠냐, 같이 외치고 함께 달려보자! 지난달 15일, 희망버스를 타고 온 수많은 승객이 함께 희망을 모아 투쟁의 함성을 내질렀습니다. 작은 소망을 큰 희망으로 만들어준 모든 분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투쟁의 목소리가 희망버스를 타고 확산하였지만, 변화된 것은 없습니다. 아직도 사측의 불법 행위는 처벌받지 않았고, 노동현장 탄압은 지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희망버스가 한 사업장의 현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희망버스를 타고 유성기업 노동자의 현실과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의 문제가 확산한다면, 기업의 편에 서서 면죄부를 주는 현 정권에 맞설 힘,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 힘도 함께 커지고 전파되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자본과 정권을 강하게 압박하는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노조 파괴는 노동자 민중을 향한 불법 탄압이며, 민주노조를 말살하겠다는 자본과 정권의 노동자 학살 정책이나 다름없습니다. 법치주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저질러지는 불법을 이제는 막아야 합니다. 노조 파괴로 인한 죽음과 고통, 부서진 인생은 노동자 가족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를 절망에 빠뜨리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상식도, 정의도, 민주주의도, 소통도 통하지 않는 현실이 빚어낸 대표 사례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는 사회에 내가 살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만드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5월 10일 다시 출발한다는 2차 희망버스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유성기업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유성 노동자들은 끝까지 투쟁할 것이며, 유성 자본과 정권에 맞설 것입니다. 지금도 검찰은 유성 자본엔 불기소 처분을 내리고, 노동자는 기소해서 법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게 하고 있습니다. 면죄부를 받은 유성 자본은 해결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을뿐더러 탄압과 징계를 강행하고, 조합원과 가족의 삶을 빼앗고 있습니다.
저는 그 긴 3년여의 생활 대부분을 수배와 300일에 이르는 고공농성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각오던 우리 동료들을 지키는 일이라면, 이 사회의 상식과 양심을 지키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싸우다 쓰러질망정 더 이상 누명을 쓰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유성 희망버스에 담긴 희망의 메시지가 전국 각지에서 여기 유성 노조로 날아오길 바라며, 다시 희망버스 승객분들을 다시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뵙는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 힘차게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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