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희 "박근혜 극장정치, 결과는 허무할 것"

[남재희 인터뷰] "홀로 무공천, 그게 왜 새정치인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으로 '1여(與)2야(野)' 구도가 '1대1' 구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통합 신당의 지방선거 전망은 어둡다. 두 세력의 통합 지렛대였던 기초선거 무(無)공천 결정 탓이다. '약속 정치'를 전면에 내세워 지방선거 승부를 걸 요량이지만, 여야 합의를 통한 공천제 폐지가 아닌 야권만 무공천하는 것이 과연 '약속 정치'냐는 반문이 나온다.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두 세력의 통합 명분이 됐던 무공천 결정에 대해 "통합의 명분 자체를 잘못 잡았다"고 꼬집었다. 현실적으로 독자 세력화가 애당초 불가능했던 안철수 의원이 "구차한 명분을 억지로 고리 삼아 통합한 것"이란 지적이다. 아울러 새누리당은 공천을 하는 마당에 야권만 무공천 하는 것이 "경주를 하는데 스스로 혼자 다리를 묶고 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정당의 존립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고 일침을 놨다.

두 야권 지도자의 이번 결정에 대해선 "정치 철학 부재가 낳은 결과"라고 했다. 특히 안 의원의 정치에 대한 철학 부재가 1년 전엔 국회의원 정수 축소란 '정치 역행'으로 나타나더니, 이번엔 엉뚱한 '무공천 결정'으로 튀어나왔다고 꼬집었다.

남 전 장관은 신당 창당 과정에서 양 세력이 갈등을 빚었던 정강정책에서의 '우(右)클릭' 논란에 대해선 우경화된 우리 정치 지형에서의 '적응'인지, 아니면 '순응' 혹은 '굴종'의 결과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의 지축(地軸)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변화된 지축에 순응에 노선을 수정하는 것이 과연 정당의 역할에 부합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밀려가는 꼴이 아니라, 밀어가는 자세"를 강조했다. "적응은 있어야겠지만 순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서울 서교동 프레시안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박인규 이사장의 진행으로 열렸다. 다음은 남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편집자>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독자 노선을 걷는 듯 보이던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과 통합에 합의하면서 결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1대1 구도로 재편됐다. 예상치 못한 통합 선언이었는데, 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나?

남재희 : (안철수 세력의) 독자 신당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봤다. 안철수 씨가 개인 인기는 있는데, 조직화할 인적 자원이 없지 않나. 야권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민주당 사람들이고, 이계안이나 김효석 같은 인물도 결국 민주당에서 빼온 인사 아닌가. 처음부터 독자 노선이 불가능했지만,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결국 적당할 때 민주당에 올라탈 것이라고 봤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민주당이 '하이재킹(hijacking·항공기 등 운행 중인 운송수단에 대한 납치행위)' 당한 것이다. 독자 노선 간을 보다가 민주당에 올라 탔고, 그게 김한길 대표와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현재로선 성공했다. 126석의 민주당이 고작 2석인 세력과 50대50으로 지분을 나눈 것 아닌가. 안철수 개인의 인기가 작용한 것이다.

"안철수의 중도화 노선, '적응' 아닌 정치적 '순응'에 가까워"

프레시안 : 통합 과정에서 잡음도 많았다. 정강정책에서의 6.15, 10.4선언 삭제 논란 등 '우(右)클릭' 조짐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도 거셌다.

남재희 : 현실을 대하는 안철수의 기본 철학이 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일단 안철수와 민주당의 결합으로 신당의 노선이 이제까지보다는 중도화할 것 같다. 한 때 안철수 쪽에 있었던 최장집 교수가 현재의 안철수 세력을 '제3 중도세력'이라고 규정했고, 책사라던 윤여준도 "우리가 언제 야당이라고 했느냐"며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나. 타협적인 야당, 온건 야당의 흐름이다.

그 흐름이 정강정책에서의 6.15, 10.4선언 제외 파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두 선언이 남북 화해의 상징적인 합의 조치니, 그걸 삭제해버리면 일종의 '탈색'이 된다고 본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색을 빼버리겠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니까 이를 철회하고 박정희의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까지 모두 계승한다고 해 놨다. 다 넣어서 무색무취하게 만든 셈이다.

우리 정치사를 되돌아볼 때, 윤보선·김영삼·김대중 씨 등 강경 노선 흐름이 있는가 하면, 유진산·이철승·이민우 씨 등 타협적인 온건 노선의 흐름도 있었다. 그리고 당권을 번갈아 맡아왔다. 이번의 합당에도 그러한 흐름들이 섞여 있는 것이기에 민주당 안에서 이의가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 노선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앞으로 점차 심각한 일이 될 것 같다.

결국 정치적 판단이나 결단의 문제다. 현실을 직시해 노선을 수정하는 것이 적응일 것이고, 현실적 편의만을 따르는 것은 순응, 혹은 굴종일 것이다. 문제는 조만간 적응이냐 순응이냐는 차원에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이런 중도화 흐름이 현실에 대한 '적응'이 아닌 '순응'이라고 보나?

남재희 : 그렇다. 국가를 이끄는 비전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여러 차례 얘기해왔지만 우리 정치의 지축(地軸)이 아주 많이 우측으로 이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세력이 강한 나라에서 정권 자체가, 보수 거대 언론이, 극우단체가 계속 종북몰이를 해대니 지축까지 옮아간 셈이다.

그럼 야당이 그 변화된 지축에 순응해 노선을 수정해야 하나? 최근 민주당 측 어느 청년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고 정국을 논의한 과정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 때 나는 정당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 어려운 일이지만, 난국을 타개해 나가는 것이 정치인의 할 바가 아니냐고. 마침 미국 고위 외교관이 예전에 <투 무브 어 네이션(To move a nation)>이라는 책을 낸 것이 떠올라 그 책 제목처럼 '나라를 움직인다'는 기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밀려가는 꼴이 아니라 밀어가는 자세 말이다. 적응은 있어야겠지만 순응이 있어서는 안 된다.

6.15, 10.4 선언 삭제 주장은 종북몰이를 해서 지축이 움직이니, 그것에 비위를 맞추자는 것과 다름없다. 김대중, 노무현의 이 두 선언은 남북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진일보 아닌가. 그걸 왜 없애나. 더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런 철학이 없는 통일 방식은 흡수 통일 밖에 없다. 그게 박근혜 대통령과 뭐가 다른가?

프레시안 : 중도 통합론 등 타협적인 리더십이 종국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보나?

남재희 :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커지느냐 가라앉느냐에 달렸다. 정권에 대한 민심의 이반이 커지면 커질수록 중도 통합론은 의미가 없어진다. 대신 강경파가 득세를 한다. 반대로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운영을 잘해서 민심의 이반이 심하지 않는다면, 중도 통합론 역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박근혜 정부가 남은 4년간 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통치 방식이 박정희 정권의 재판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에 관해선 성공했다. 재벌 집중적 구조이긴 했지만 어쨌든 재벌을 독려하지 않았나. 그렇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 우리가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서 '박정희 2.0'으론 성과가 나올 수 없다. 그 통치 방식은 남고 업적은 없다면 국민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철학 부재 심각…'무공천' 통합 명분 안 돼"

프레시안 : 이번 통합으로 안 의원이 비판해온 양당 독과점 구도는 결과적으로 계속되게 됐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이 이런 양당 기득권 구조에 대한 환멸에서 기인한 것인데,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이 역시 수그러들 것이라고 보나?

ⓒ프레시안(최형락)
남재희 :
양당이 싫은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풍(安風)이 불었던 것인데, 이 바람이 태풍일지, 아니면 곧 사그라지는 계절풍이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재로 보면 결정적으로 안철수에게 본인의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그 철학의 빈곤으로 일시적인 바람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몇 가지 모습들이 그 철학의 빈곤을 보여준다. 지난 대선 때는 국회의원 100명을 줄이고 사실상 중앙당을 없애겠다고 했다. 말 그대로 정치의 역행이다. 국민들의 정당 혐오 분위기를 타서 완전히 헛짚은 것이다.

이번엔 통합 명분으로 내놓은 게 기껏해야 기초선거 무공천이다. 물론 기초선거 공천 문제는 상당히 양가적인 면이 있는 주제다. 진보정당들은 공천제 폐지를 반대하는데,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공천을 폐지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기초의원이 지역 국회의원에게 예속화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국회의원 행사 때 구의원들이 신발 정리나 해주고 있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지 않나. 일장일단이 있는 문제다.

만약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자체가 폐지돼 여야 모두 정당 공천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공천을 하겠다는데, 신당만 안 한다는 것 아닌가. 초장부터 박살나는 것이다. 그게 왜 새 정치인가?

결국 안철수와 김한길이 기초선거 무공천이라는 잘못된 이슈를 명분으로 통합한 것이다. 연대의 명분 자체를 잘못 잡았다. 안철수 입장에선 어차피 독자 창당이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공천이라는 구차한 명분을 억지로 고리로 삼아 통합한 것이다. 야권 대통합이면 충분히 연대의 명분이 되지 않나. 쪼개지면 망한다는 명분으로 충분한데, 왜 무공천을 고리로 잡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기초선거 무공천, 경주에서 다리 묶고 뛰는 것…자해정치 다름없어"

프레시안 : 무공천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보나?

남재희 :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루라도 빨리 철회해야 한다. 기초선거 참패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두 공동대표가 사표 내면 끝인가? 정당의 존립 근간이 무너지는데, 그럼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백전노장 박지원이나 손학규, 정동영 등 선거 많이 치러본 사람들은 다 철회를 주장하는데, 얼렁뚱땅 국회의원 선거 한 번 치러본 사람이 뭘 안다고 그렇게 하나.

다시 양당이 합의해야 한다. 지금 국면은 경주를 하는데 스스로 혼자 다리 묶고 뛰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망신살이 있어도 하루빨리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안철수, 김한길 모두 오판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유권자들이 기초의원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있나. 서울을 예로 들자면 자기 사는 동네의 구청장이나 구의원에 관심이 없다. 기호 1번, 혹은 2번이라서 찍는 것이다. 망하는 길인 것을 뻔히 알면서 왜 스스로 그 길을 가는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자해 정치다. 김한길 대표가 책임지고 돌려놔야 된다. 가서는 안 될 길을 가자고 판단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결격 사유다.

프레시안 : 당 안팎에서도 무공천 결정을 철회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신당 지도부는 요지부동인 상황이다. '약속 정치'로 밀고나가겠다는 전략인데, 안 의원이 정치 자체를 상당히 도덕주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재희 : 인기만 있지 철학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요즘 드라마 <정도전>이 화제가 되는데, 정도전은 명확한 비전과 정치 노선, 미래에 대한 설계가 있었다. 원(元)-명(明) 교체기에 망해가는 원나라에 더 이상 빌붙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고, 불교국가에서 성리학을 새로운 국가의 근간으로 두자고 했다. 농민들에 대한 수탈이 심각할 때, 공전제(公田制)와 그것을 기초로 한 균전제(均田制)의 실현이라는 토지개혁을 실시해 조선조라는 새 시대를 연다. 그렇게 조선조 오백여 년의 역사가 시작됐다. 얼마나 혁명적이고 대담한 변화인가. 그게 말하자면 통치 철학이고 국가의 대업 철학인 셈이다.

정도전이 보여준 그렇게 큰 시대적인 전환은 아니더라도, 안철수에게 가장 기본적인 정치 철학이나 테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박근혜 극장정치, 당장 지지율 올라도 끝은 허무해"

프레시안 : 야권의 복잡한 상황에 비하면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선거를 치밀하게 주도하고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에 있어선 야권보다 '프로'라는 인상을 준다.

남재희 : 그것이 소위 '박근혜 스타일' 아닌가. 최근 <한겨레> 신문에서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극장 정치'라고 표현했던데, 옳은 분석이라고 본다. 일본 고이즈미의 쇼 정치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점점 수위가 강해지고만 있는데, 예컨대 '통일 대박' 발언이나 규제를 '암 덩어리', '쳐부술 원수'라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통치자가 쓰지 않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일종의 극장 정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통치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막말인데, 대중들에겐 화끈하게 어필한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그런 표현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표현은 아니다. 예컨대 '통일 대박'이란 말은 좋은데, 내용이 전혀 없다. 통일까지 가는 방정식은 전혀 없고 '통일 대박'이란 슬로건만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규제 역시 역사적으로 축적된 이유와 배경이 있는 것인데, 그걸 단순하게 '쳐부술 원수'로 표현했다. 그러나 암 덩어리인 규제, 쳐부수어야 할 규제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표현을 써서 국민들은 시원해 하고 인기는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허무할 수밖에 없다.

규제 문제를 잘못 풀다보면 노동자 인권이 희생될 수 있고, 환경 파괴를 용인하면서 기업만 살려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극장정치의 본질이 그런 것이다. 당장은 후련해도 끝나고 나면 공허하고 허무하다. 통일이 남재준 국정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운다고 2015년에 달성이 되나? 2015년이면 내년이다. 그럼 북진 통일, 곧 전쟁 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코 과학적인 통일 담론이 아니다. '통일 대박'을 이야기하려면, 통치자로서 그 방법론을 제시해줘야 하는 것이다.


"로드맵 없는 '통일대박론', 국내 정치용 극장정치"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이 최근 북핵 해법도 여러 차례 언급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남재희 : 박 대통령의 '북핵 밥상론'이 다시 화제다. 통일 대박론도, 북핵 밥상론도 그 자체론 나쁘지 않다. 다만 시간표와 로드맵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북한과 신뢰를 구축해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종국엔 통일까지 이르는 로드맵이 전혀 없이 구호만 있는 것이다. (※ 북핵 밥상론 : 북핵 문제에 관한 포괄적 해법을 일컫는다. 박 대통령이 2005년 3월 한나라당 대표 때 미국을 방문해 "서양에선 음식을 먹을 때 수프, 메인요리, 후식 등이 단계적으로 나오지만 한국은 밥상에 밥, 국, 찌개, 반찬 등을 한꺼번에 다 올려놓고 먹는다"며 "북핵 문제도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계적인 접근 방법도 좋지만 한국으로서는 한 상에 해법을 모두 올려놓고 포괄적으로 타결하는 방법이 더 익숙하다"고 비유해 붙여졌다. 편집자)

협상엔 절차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신뢰 구축의 단계다. 내가 늘 사용하는 비유인데, 권총 가진 강도한테 "권총 버리면 돈 줄게"라고 말한다고 강도가 권총을 버리지 않는다. 충분한 설득을 통한 신뢰가 형성돼야 권총을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북 간의 신뢰 구축 과정이 없으면 즉각적인 핵 폐기는 불가능하다. 북한 입장에선 피땀 흘리고 굶어가며 모은 돈을 핵에 쏟아 부었는데, 그거 없애면 돈을 준다고 한들 그 말을 쉽게 믿겠나? 과정을 생략한다면 불가능한 얘기다.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미적(anti-American)이고 약간 정신나갔다(crazy)"고 표현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미국에 북에 대한 압력을 좀 줄여달라고 많이 설득하지 않았나. 게이츠가 볼 때는 '크레이지(crazy)'한 것이지만, 우리 입장에서 볼 땐 북한을 덜 압박해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방정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도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공식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을 더 봉쇄해서 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무현의 해법은 북을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핵부터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키신저 같았어도 마찬가지인 해법을 냈을 것이다. 군사적 위협을 제거해 평화 체제를 만들자고 했을 것이다. 적당한 경제 원조를 하면서 평화 체제로 서서히 전환하고, 적당한 보상을 통해 핵을 제거하는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됐을 당시 우크라이나 등에도 핵 제거의 대가를 다 줬었다. 그런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없이, 2015년에 통일을 한다고? 그건 무책임한 발언이다. 그런 상태로 계속 가면 4년 뒤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통일이 대박이라니까 말은 지금 시원한데, 4년 임기가 끝나면 국민들이 허무해할 것이다. 결국 통일 대박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다 국내 소화용 극장 정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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