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하나 둘 캡사이신"…"양심도 없는 사회"

[현장] 3.15 유성 희망버스…"해결 안 되면 더 강한 버스로 돌아오겠다"

고속도로 주행을 마친 후, 도로 중간중간 서 있었던 광고탑이 기억에 남은 일이 있었던가. 네온사인 하나, 예쁜 연예인 얼굴 하나 없는 투박한 광고탑들은 스쳐 지나가라고 세워진 건축물이 아니었던가. 고속도로 운전자들에게 광고탑은 그저 ‘찰나’다. 있는 것이 당연하고 없어져도 사라진 줄 모를 그저 그런 순간들이다.

그런 ‘찰나’에 기대어 산다. 주어진 시간은 채 몇 초 되지 않으므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빨갛고 파랗고 노란 깃발 12개를 세우고 커다란 현수막들도 세로로 내걸었다. 그리고 내년이면 쉰 살이 되는 한 남자가 상체를 바끔히 내놓고 지나는 이들의 찰나에 호소한다. 혹한과 돌풍을 견디며 땅을 밟지 않은지 다섯 달이다.
15일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충북 옥천군 옥천나들목 광고탑으로 모인 3500명은, 이 믿기지 않는 풍경 앞에 담담히 서 있는 아내 한영희(48) 씨를 만났다. 목소리가 떨렸고 간혹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만, 말을 걸어오는 이들에겐 한결같이 친절했다.

“유성기업, 얼마나 대단한 빽을 가졌기에 불법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지, 법도 양심도 없는 사회에서 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 15일 전국에서 출발함 97대 희망버스가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옆 광고탑 위 이정훈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을 찾았다.

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있는데, 처벌은 못 한다?

이정훈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고공 농성을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13일. 이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노동조합 일로 바쁜 남편이지만 결혼기념일은 안 잊었겠거니 했던 한 씨의 바람은 전날 밤 남편의 말 한마디로 무너졌다.

“(고공 농성을 한다기에) 한 달이면 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잘만 되면 한 달 전에도 내려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것이 다섯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노조 일한다고 툭하면 결근, 조퇴해 동료들 받는 월급의 절반만 가져오던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운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남편의 동료가 옳고, 유시영 사장이 잘못했단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은 이미 재작년 9월 국회 ‘용역폭력 청문회’에서 다 드러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창조컨설팅이 제작·판매한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세상에 공개됐고, 만도·상신브레이크·KEC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회사 유성에서도 이 시나리오가 가동됐단 게 드러났다.

진실이 확인된 후엔 정의를 세우는 일만 남는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을 부당히 개입해 파괴하(려 하)면 ‘불법’이다. 불법을 저지르면 ‘처벌’받는다는 것은 상식이자 정의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믿었던 이 간단한 공식은 올해 초 검찰의 유시영 사장 등에 대한 무더기 불기소 처리와 함께 무참히 깨졌다.

불기소 이유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내세웠지만, 앞서 시나리오를 제작·판매한 창조컨설팅은 노조 파괴 혐의로 폐업됐고 심종두 대표이사 등은 자격이 취소된 상황이다. 그러다면 유성기업 대표이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종두가 몰래 공장에 들어와 그 모든 일을 벌어기라도 했단 말일까.

용역·깡패를 동원한 신속하고도 공격적인 직장 폐쇄(2011년 5월 18일)와 복수노조 설립, 징계·해고, 손해 배상․가압류 소송 등 이 모든 일련의 사건이 유시영 사장의 손을 거치지 않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까. 유성기업은 그런 회산가. 유성 지회 조합원들이 검찰의 ‘증거 불충분’을 처벌 ‘의지 불충분’으로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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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가 온다니 설레서 잠도 못 잤습니다"

150일이 넘는 고공 농성으로 이 지회장은 사람이 고팠다. 광고탑 위의 그가 찰나를 넘어서는 소통을 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완성차 대기업체가 아니어서인지, 오랜 싸움에도 유성 기업의 속사정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지회장의 입사 동기 도성대(51) 씨는 “어제 저녁에 전화로 내일 집회 때 발언을 하라고 했더니 1시간 하고 싶다고 했다”며 “말이 많아서 해고된 양반인데, 한동안 말할 기회가 없었으니 실컷 하게 해줘야 겠습니다”고 말했다.

광고탑 위 이 지회장은 쩌렁쩌렁한 마이크와 스피커가 설치된 걸 알면서도 목청을 한껏 높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위에서 한분 한분 도착하는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농성장 주변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서도 쉼 없이 손을 흔들던 그다. 전국에서 97대의 버스가 줄줄이 도착했으니 그 역시도 장관이었을 테다.

“진짜 고맙습니다. 희망버스 결정될 때부터 저의 마음은 흔들리고 설레서 잠도 못 잤습니다. 진짜 반갑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세 가지 목표로 올라왔습니다. 특검을 실시해 유성 사건을 낱낱이 재수사하고 유시영 사장 등 가담자 구속하고 사장과 1,2 공장장은 퇴진해야 합니다. 죽든가 살든가 이 자리에서 판단하겠습니다.”

이 지회장은 발언을 마친 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내 사랑 민주노조’를 불렀다. 지상과 광고탑 위가 한참 떨어져 있어서인지, 이 지회장은 반주보다 반 박자씩 노래를 늦게 불러 참가자들의 웃음을 불렀다.

희망버스는 옥천 나들목에 한 시간 여 머문 후 아산 공장을 향해 떠났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참가자들은 집회 사회를 본 도 씨가 이끄는 대로 이 지회장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힘들면 내려와도 된다 이정훈! 우리가 같이 싸운다!”

▲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15일 이 지회장이 농성 중인 광고탑을 방문해 분홍색 희망천들를 설치했다. ⓒ프레시안(최형락) </div><div><b><br></b></div><div><b><img xtype=

조합원 출입마저 가로막아 1시간여 충돌…캡사이신 난사

버스는 두 시간여를 더 달려 오후 2시 40분께 아산 공장에 도착했다. 이미 공장 출입문은 경찰 3300여 명으로 봉쇄돼 있었다. 공장 안에 있던 아산 조합원들은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공장 밖에 있던 영동 조합원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들어가려는 이들과 나오려는 이들 모두 화가 났다. 파란색 영동 지회 깃발과 아산 지회 깃발 사이에 인간 벽을 세운 경찰들은 양쪽에서 거친 항의를 들었다. 수가 더 많은 공장 밖 조합원들이 경찰을 밀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며 ‘내가 내 회사에도 못 들어가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을 냈다.

거친 몸싸움은 한 시간가량 계속됐다. 온몸을 던져 공장 안으로 들어오려는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을 보던 아산 조합원 ㄱ 씨는 “이런 통제와 충돌은 2011년 5월 18일 직장폐쇄 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보세요. 지금 경찰이 회사 직원들 지시대로 사측 용역처럼 움직이고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사다리에 올라 마이크를 들고 현장을 총지휘하던 경찰이 외쳤다. “33기, 33기, 지금 앞으로 밀고, 그래. 34기 오른쪽에 붙고. 지금! 자 밀어. 하나둘. 하나둘. 하나둘. 하나둘. 캡사이신 앞으로.” 캡사이신을 맞고도 조합원들이 공장 밖으로 나가질 않자 충돌 상황을 옥상 위에서 연사 촬영하고 있던 취재진도 아닌 경찰 유니폼을 입은 것도 아닌 한 젊은 남자가 말했다. “새끼들 좀 나가라.”

"유성 만의 문제 아니야…문제 해결 안 되면 다시 온다"

곧 이어진 결의대회에서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홍 지회장은 “무대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굴다리 위에서 (2011년 직장 폐쇄 때) 노조를 한다는 이유로 방패에 맞아 두개골이 깨졌고 용역들은 컨테이너 위에서 소화기를 뿌리고 집어던졌다”며 지나간 일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그는 “노조 파괴와 그로 인한 우울증, 자살 등의 문제는 단지 유성 기업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며 ”노조 파괴를 시행했던 이명박 전 정권과 이를 처벌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대투쟁이 벌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충돌 과정에서 안경을 잃은 홍 지회장은 제대로 볼 수 없었겠지만, 무대 바로 앞에는 청도와 밀양에서 온 고령의 주민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밀양에서 온 김 모 할머니는 “지난번 밀양에도 희망버스가 왔잖아. 그러니까 나도 와야지”라고 말했다. 유성기업과 유사한 노조 파괴를 경험한 KEC, 현대위아 노동자들도 자리를 채웠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문화제에서 희망버스 참가단 3000여 명은 록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이 지회장이 좋아하는 노래 ‘내 사랑 민주노조’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직장 폐쇄 후 유성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였던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청한 희망버스 기획단은 다음날인 16일 아침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밝혔다.

“특검 실시와 성실 교섭 등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크고 강한 희망버스로 돌아오겠다.”

▲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맞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피켓에 '2011 임투 승리'를 쓴다. 2011년 직장 폐쇄 이후 임금 교섭 또한 여전히 체결되지 않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홍 지회장이 지난해 150일 이상 고공농성했던 굴다리 위. 경영진을 구속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참가자들이 희망버스 기획단이 준비한 저녁을 먹고 있다. 굴다리 뒤에 설치된 무대에서 밝은 빛이 뻗어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경찰이 출입을 통제한 공장 앞에 '올빼미' 그림을 그리는 문화 예술가들. 유성기업은 직장폐쇄 전 '심야노동'을 줄이기 위한 주간연속 2교대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심야 노동 철폐'라는 요구는 3년이 지난 '노조 파괴 대표이사 구속'으로 바뀌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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