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설립한 최초의 국제기구, '웃음거리' 안 되려면…

[기고]덴마크의 공금유용 스캔들, 한국에선 해외토픽?

2012년 가을, 한국정부 최초의 국제기구 설립이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글로벌녹색성장기구(Global Green Growth Institute, 이하 GGGI)가 설립되었다. GGGI가 설립된 계기는 전임 이명박 정권이 추진했던 녹색성장의 일환으로 녹색성장 패러다임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전파하겠다는 것으로, 한국정부의 주도하에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아랍에미리트 등의 국가들이 회원국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덴마크는 GGGI의 국제기구화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국가였다. 그런데 'GGGI 스캔들’이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지난해 10월 덴마크에서 터지게 된다.

스캔들의 주인공은 전 덴마크 총리이자 현직 야당 총재 그리고 GGGI 의장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이었고, 그가 해외출장에서 규정에 어긋나는 항공기 일등석과 고급 호텔 등을 이용하면서 미화 15만 달러 상당의 공금을 사용했다는 점이 스캔들의 핵심이다. 이후 GGGI에 관련된 덴마크 정부관료들이 국회청문회에 소환되었고, 11월에는 GGGI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개발협력부의 수장인 크리스찬 프리 바크 장관마저 사퇴하기에 이른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논의에서 중요한 보고서인 소위 <스턴 리뷰>로 일약 스타학자 반열에 오른 영국 정치경제대학(LSE) 교수 니콜라스 스턴경이 GGGI의 임원으로 있는 동안 자신이 재직하는 LSE에 GGGI로부터 2년간 수백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앞으로도 이번 스캔들은 덴마크 정국을 들썩일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동안 녹색성장에 관한 비판적인 논문과 칼럼을 몇 차례 써왔었고, GGGI의 설립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했었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GGGI가 한갓 정권 말기 치적(治績)으로 전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관망하기보다는 명실상부한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국제기구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스캔들이 한국사회에 갖는 의의와 GGGI가 가야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 하워드 뱀지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사무총장(왼쪽부터),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이종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2013년 12워 4일 인천시 연수구 G-타워에서 열린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송도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양해각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속도전의 유전자, 그 속도를 줄여야

국내 언론이 이번 스캔들을 비중 있게 보도하지 못한 이유는 그간 안녕하지 못했던 국내 여러 사건들을 고려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을 간과한 또 다른 이유는 이번 스캔들이 한국과 무관한 외국 정치인 개인의 문제 혹은 해외토픽 수준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작용한 거 같다. 그러나 이번 스캔들의 뿌리는 이명박 정권 아니 한국사회로까지 광범위하게 연결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국가 관료들의 항공기 일등석 이용은 국익을 위한 외교활동이라는 명분으로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 낭비라는 측면에서도 관대해야 될까? 덴마크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이번 스캔들에 민감하게 반응한 기저에는"국민이 납세한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세고 있다”는 문제인식이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2012년 가을, 당시 GGGI의 국제기구 전환을 위한 국회비준을 앞두고 감사원에서는 GGGI의 예산낭비를 발표하면서 비준이 지연될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감사원의 지적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국익이란 명분하에 정권 말기의 치적 쌓기를 위한 속도전의 논리가 팽배하면서 언론과 지식인들까지 정부의 속도전에 힘을 실어주었다. 가령, 당시 한 신문사설은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제사회 주도권"(서울경제신문 2012년 11월 11일)을 쥐기 위하여 신속히 비준이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중도적 보수에 가까운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물론 의혹이 있으면 털고 가야 하지만 GGGI 국제기구화 지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중앙일보 2012년 9월 17일)는 식으로 여론을 압박하면서 감사원이 지적한 사항들에 대한 면밀한 수정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일단은 만들어 보자는 주장을 하였다.

이러한 여론 속에서 결국 2012년 11월 22일 국회에서는 총 130표 중에서 118표의 찬성표가 나오면서 비준이 통과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찬성 118표 중 46표는 그간 녹색성장을 강력하게 비판해온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찍은 표였다. 즉, 박정희 정권에서나 통했던 다른 합리적 절차들보다 설익은 결과물을 우선시하는 '속도전의 유전자'는 정부, 여당에만 국한되지 않고, 언론, 지식인, 야당을 아우르는 한국사회의 집단의식 속에 여전히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북유럽 수준의 세금에 대한 의식이 갖춰졌더라도 감사원의 지적을 무시하고, 모래 위의 성,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일단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국제기구의 설립이 가능했을까? 만약에 북유럽에서 통용되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면 GGGI의 재정운용방식은 보다 투명해졌을 것이고, GGGI 의장의 공금유용 스캔들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사회가 스캔들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덴마크 스캔들은 한국정부와 한국사회가 깊숙이 연관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선 국제기구로서의 가능성

지금까지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유력한 방법에는 최근 폐막한 소치올림픽처럼 국제경기에서 매달을 따거나 그러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국가간 경쟁에 바탕하고, 그 효과는 4년을 간격으로 일회적이다는 단점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부터 강조된 '국격'을 높이는 방법은 지금까지의 국가간 경쟁구도를 벗어나 국가 간의 공존을 바탕으로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포용적 리더십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는 한국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기적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통하여 중진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독특한 입지는 기후변화 문제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제1세계와 제3세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외교를 하기에 적합하다. 지금으로 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GGGI를 잘만 고친다면 기후변화의 최전선에서 선 국제기구로 변모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예컨대, 필자가 체류하는 독일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정부와 대학은 지리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지역학 등을 전공한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에서의 지역연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학위를 마치고, 소위 지역전문가가 된 이들은 독일정부 산하의 개발지원기구나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컨설턴트로 고용되어 활동할 수 있다. 주변 동료들의 취업을 보면서 어떻게 박사논문 연구를 통하여 특정 지역에 대한 지식과 각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방향을 습득하여 실제 사업에 적용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어떻게 국제기구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나가야하는 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작은 초가집을 짓더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그 집은 곧 폐가가 된다는 건축가들의 통찰처럼 국제기구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연구인력과 이들을 지원할 역량을 갖춘 실무인력을 고용하고, 그들이 움직이어야만 비로소 국제기구라는 집이 살아 숨쉬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얼마 전 <주간경향>이 입수한 GGGI 내부문건에 따르면 GGGI에 고용된 대부분의 인력들은 지난 정권과의 연줄을 통하여 들어온 경우가 많으며, 연구역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GGGI 내부에서조차 이러한 인력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국제기구를 만들려는 목적이 단순히 국내 정치인이 코펜하겐과 같은 도시에서 해외 유명 인사들과 인증사진을 찍고, 국내언론에 퍼뜨리는 것이라면 GGGI는 당장 해체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앞으로 국제환경정치에서 한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통한 리더십을 쌓고자 한다면 단견에 사로잡힌 속도의 정치를 지양하고, GGGI에 장기적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할 역량을 갖춘 연구인력을 대폭 수혈하고, 그들이 조직의 미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데 정부는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만 변한다면 비록 환영받지 못한 출생이었지만 필자는 적극적으로 GGGI의 성장을 응원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모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부 GGGI 내부문건을 통해서 조직내부의 동요를 확인했지만, 제대로 된 변모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서 GGGI의 문제점들이 공론화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절실하다.

창피함을 일깨워 줄 언론의 역할

그 나라 언론은 그 국민 수준에 걸맞게 존재하는 것일까? 이번 스캔들의 보도를 주도한 덴마크 신문인 인포메이션(Information)은 한국의 경향신문, 한겨레와 유사한 진보적 성향의 신문으로 시장점유율이 크진 않더라도 덴마크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론지다. 필자가 처음 GGGI 스캔들을 알게 된 계기도 인포메이션 기자가 취재를 위한 이메일을 보내오면서 알게 되었다. 이후 필자는 인포메이션에 한국에서의 녹색성장과 GGGI에 대한 시각과 입장들을 소개하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말을 보내면서 한동안 스캔들을 잊고 지내왔었는데 그동안에도 인포메이션은 한국의 GGGI 내부 인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하고, 최근 보도한 스턴 경의 프로젝트 수주와 관련하여 LSE와 GGGI 간에 교신한 내용을 두 기관에서 공개하라며 정보자유법으로 소송을 내는 등의 적극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인포메이션 2월 12일). 이러한 인포메이션의 활동을 보면서 필자가 인포메이션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 다시 생각난다. "한국인으로서 창피하다."

지금도 여전히 창피함은 남아있다. 안녕하지 못한 국내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GGGI 스캔들 보도에 대한 국내 언론의 불성실함은 문제적이다. 매해 GGGI에 국민의 세금 100억여 원이 들어간다. 결코 적지 않은 세금을 퍼붓는 상황에 눈을 감는다면, 국민이 안녕할 날도 오긴 어려울 것이다. 필자 개인뿐만 아니라 국민모두가 이번 스캔들에 대해서 창피함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정권의 치적이 아닌 진정 국제기구로서 GGGI가 변모할 단초가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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