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공동체 화폐 '레츠'1회 우리에게 돈이란 무엇인가2회 얼굴있는 지역화폐 한밭 레츠3회 작은 것이 아름답다 성미산 레츠4회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춘천녹색화폐5회 도시를 지탱하는 힘 호주 브리즈번, 시드니 레츠▶6회 마을을 지탱하는 힘 호주 말레니 레츠말레니는 호주 동부 해안의 대도시 브리즈번에서 북서 방향으로 100k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2011년말 기준 인구는 2천489명. 우리고장으로 치면 청성면(2천514명)이나 군서면(2천343명) 정도 되는 규모다. (2013년 1월 말 기준). 하지만 면 단위 크기의 이 작은 마을은 호주에서도 지역화폐 '레츠'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인 600여명이 레츠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을 정도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레츠 회원이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작은 지역사회일수록 레츠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레니는 잘 보여준다. 1987년 시작된 말레니 레츠.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레츠이며 동시에 가장 활발한 레츠를 만나보자.취재지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연합기획취재단: 옥천신문, 용인시민신문, 남해시대신문, 태안신문, 해남신문, 사회투자지원재단>
말레니의 상징 '크리스탈 워터스'
말레니 레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말레니'라는 지역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레니는 20세기 중반까지 호주의 평범한 소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예전부터 목재로 유명했던 말레니는 개발붐을 타고 일어난 벌목으로 주요 산업 동력을 잃어버렸다. 주민들이 새롭게 찾은 소득원은 벌목으로 평지가 된 땅에서 소를 키워 우유나 치즈를 만드는 낙농업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1970년대에 들어서서는 활기를 잃어버렸다. 어느 순간 말레니는 죽어가는 동네가 됐고 사람들도 하나, 둘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변화는 이때 시작됐다. 토착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났지만 반대로 브리즈번 등 대도시에서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말레니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도시의 복잡하고 메마른 삶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었다. 마을 곳곳이 꽃과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말레니는 이들 젊은이들에게 천국같이 느껴졌다. 대안적 삶을 꿈꾸며 모여든 이들을 마을 주민들은 '히피'라고 불렀다.
일군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야채가게가 생겼고 은행이 문을 열었다. 면 소재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마을에 유기농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고 유기농 면제품 판매장과 목공예품 판매점, 옷가게가 만들어졌다. 서점도 세 개나 생겼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1988년에 문을 연 '크리스탈 워터스'라는 생태 공동체 마을의 탄생이었다. 이 마을은 말레니 시가지에서 차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맥스 린데거라는 사람이 디자인한 크리스탈 워터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생태 공동체 마을 중 하나다. 세계 최초의 퍼머컬쳐(자급자족형 생태주의 농업) 공동체 마을, 유엔 주거환경상 수상(1995년), 유엔이 선정한 최고 주거환경 실현 월드 베스트 40(1998년) 등에 선정되며 유명세를 떨쳤다. 크리스탈 워터스의 전체 규모는 240에이커(97만1천269㎡)인데 이 가운데 20%만 사람들이 사용하고 나머지 80%는 자연 그대로 관리한다. 실제로 크리스탈 워터스에 가보면 캥거루와 왈라비 같은 야생동물이 마을 곳곳을 제 집 삼아 뛰어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20% 중 6%는 다시 공동체와 방문객을 위한 공용부지로 활용하고 나머지 14%만 개별거주자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독특한 문화 덕에 말레니는 대안적인 삶, 좀더 색다른 방식의 인생을 원하는 사람들이 쉽게 찾아 오고 지역 사회에 녹아드는 개성을 지니게 됐다. 말레니 레츠의 활발함은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싹텄다고 할 수 있다. 레츠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는 커피숍 '더 업프론트 카페'에서 만난 안줍씨는 말레니 레츠의 특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말레니 레츠는 대도시 레츠들과 달리 훨씬 더 민주적이고 유연하다'고.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말레니 레츠는 회장이나 사무국장 같은 직책없이 '저절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레츠를 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은 필요 없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번야가 상징하는 것, 지역화폐 뿌리는 지역
말레니 레츠가 시작된 것은 1987년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안줍씨의 여동생이 캐나다를 다녀온 뒤 마을회의에서 지역화폐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말레니에는 자유와 예술을 찾아 모여든 이들이 많았고 수시로 크고 작은 공연이 열렸다. 문제는 돈이 없어 공연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줍씨의 동생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 공연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가 가진 많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곧바로 말레니 레츠가 만들어졌다.
말레니 레츠의 거래 단위는 '번야'다. 번야는 이 마을에 있는 나무 이름이다. 옛날 호주 원주민들은 이 나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서 열매를 맺을 시기에 맞춰서 결혼식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년에 한번 말레니 사람들은 원주민들이 전통 혼례를 올렸던 번야 나무를 찾아가 기념식을 한다. 시드니 레츠가 지역 명물인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름은 딴 '오페라'로 레츠를 거래하듯 말레니 레츠도 지역을 상징할 수 있는 '번야'를 거래 단위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레츠가 철저하게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안줍씨는 "보통 1번야를 1호주달러라고 생각하고 거래하는 데 거래 당사자간 합의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오히려 말레니에서는 더 싸게 팔고 더 후하게 값을 치르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후하게 번야를 나눠주면 자기가 더 부자가 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인구 2천500명의 작은 마을 말레니에서 레츠로 거래할 수 있는 품목과 서비스는 얼마나 될까?
안줍씨는 "정확하게 세워보지는 않았는데 한 달에 한번씩 회원들에게 발송되는 뉴스레터는 에이포 용지로 18페이지 정도 된다"며 "마사지와 정원 가꾸기 등이 가장 인기가 많고 전체적인 거래 규모는 몇 백가지 정도 된다"고 말했다. 시드니, 브리즈번과 달리 말레니에서는 레츠가 실질적인 경제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이 주민들의 판단이다.
1991년부터 회원으로 활동한 카멜씨의 경우 레츠가 '커다란 경제적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카멜씨는 당시 개인사업으로 보트대여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용료의 절반은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절반은 번야로 받았다. 아이를 넷 키우는 미혼모가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보트를 태워주고 싶었지만 일반 상점에서는 값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카멜씨에게 번야로 사용료를 치렀고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카멜씨는 "병원에 가야 하는 데 돈이 없는 사람, 다리를 다쳤는데 병원까지 이동하기가 힘든 사람,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장을 볼 수 없는 사람 등 여러 가지 여러움에 처한 사람들이 레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말레니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일단 '레츠'로 거래를 튼 뒤 자신이 붙으면 진짜 사업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레츠가 단순히 도움을 주고받는 착한 관계가 아니라 여러 가지 실용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호주 남부에 있는 태즈매니아라는 섬에서는 지방정부가 레츠로 세금을 받기도 하는 등 그 활용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더 업프론트 카페'에서는 직원들의 급여 일부분을 번야로 지급하기도 한다. 기자들의 취재가 이뤄지는 바로 옆 공터에서는 한 주민이 이발을 하고 있었는데, 이 역시 번야로 이뤄졌다. 말레니에서는 레츠가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관계에 대한 기쁨과 심적 안정감
레츠의 특징은 작은 지역사회일수록 더 강력하게 발휘될 수 있다. 현금 없이도 자신의 노동력과 재능, 이웃과 함께 하려는 많은 노력들이 물질 이상의 가치를 가질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밑바탕에 '지역'과 '이웃'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태즈매니아의 예처럼 레츠로 세금을 갚거나 많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레츠가 또 하나의 대안화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나 본 많은 회원들은 레츠의 진짜 가치를 '관계에 대한 기쁨'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의 해결은 그 실용성에도 불구하고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카멜씨는 "레츠 회원이 되면 번야로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에 대한 기쁨과 심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라며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도와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정말로 큰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줍씨는 "레츠를 활발히 활용하면 경제적으로 빚을 질 일이 거의 없어지기 때문에 경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며 "또 레츠로 도움을 얻는 것은 뭔가를 새로 사는 게 아니라 고쳐서 쓰거나 이웃과 나눠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말레니 레츠가 우리고장에 던지는 시사점은 작은 지역일수록 레츠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지난호(1224호 2014년 2월21일 '과소비 하세요. 빚을 내도 괜찮아요')에서 살펴본 브리즈번이나 시드니 같은 대도시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말레니 레츠가 회원 수나 거래 건수가 많다는 점은 유의미하다. 거기에 레츠의 시작과 끝이 있을 지도 모른다. 안줍씨는 "작은 지역사회일수록 서로 더 알고 거리도 가까우니까 레츠가 활성화 되기 쉽다"고 말했다. 지역을 살리는 순환경제, 옥천 레츠는 불가능한 일일까.
옥천신문=프레시안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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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신문=프레시안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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