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란성 쌍둥이는 암 발병도 동시에 겪을까?

[프레시안 books] 리처드 C. 프랜시스의 <쉽게 쓴 후성유전학>

유전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다윈을 떠올리게 된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적의 형질을 가진 종만이 살아남아 현재의 다양한 생물군을 이루게 되었다는 학설을 담고 있다.

이런 다윈의 학설을 배울 때 우리는 또 다른 한 명의 진화생물학자를 만나게 되는 데 그가 바로 용불용설(用不用說)로 유명한 라마르크이다. 기린의 목 이야기로 자주 설명되는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은, 한 개체가 당대를 살면서 획득한 형질이 다음 세대로 유전 가능하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창조의 정확한 기원에 대한 과학적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다수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다윈의 진화론보다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된다. 왜냐면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의하면, 내가 가지고 태어난 DNA에 의해 모든 형질이 이미 결정지어졌으며 내가 추후로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그 DNA는 바꿀 수가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따르면 나는 내 짧은 목이 불편함을 인지하여 계속 그것을 늘이기 위한 노력을 시도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또한 유전적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쉽게 쓴 후성유전학>(리처드 C.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기, 시공사 펴냄). ⓒ시공사
리처드 C. 프랜시스의 <쉽게 쓴 후성유전학>(김명남 옮김, 시공사 펴냄)이라는 책은 우리로 하여금 라마르크의 매혹적인 용불용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는 매력적인 도서가 아닌가 한다.

후성유전학 이전에는 유전학이라는 용어만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여러 가지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이의 개념화를 위해 후성유전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상황에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만 조절되어 한 개인의 특정 형질이 변화될 수 있으며, 이러한 유전자의 발현 변화가 다음 세대로도 유전이 가능하다는 학설을 근간으로 하는 학문 분야이다. 이 책에서는 풍부한 과학적 예시와 함께 쉬운 원리 설명을 통하여 일반 독자들에게 최근 생물학계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후성유전학 분야의 다양한 내용들을 만나볼 수 있다.

<쉽게 쓴 후성유전학>을 읽으면서 언뜻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모든 세포 생리활동의 근간이 되는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염기서열에 변화가 없는데도 어떻게 생물의 형질이 바뀔 수 있을까? 우선 현대 생물과학은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과학자들은 이 책에 소개되는 바와 마찬가지로 아주 오랜 시간, 그리고 아주 끈질긴 호기심과 연구를 통하여 그 신비로운 비밀을 하나하나 캐나가고 있는 중이며, 그 연구 과정에서 얻게 된 소중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아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애초에 단 하나의 수정란으로 시작한 인간의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되어 있는데 왜 어떤 세포는 신경 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는 근육 세포가 되는 걸까? 유전 정보가 100%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성인이 되었을 때 암 발병은 100% 동일할까? 우리의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성은 오롯이 우리가 가진 DNA에 의한 정보에만 따른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난 가정에서의 양육 방식도 일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알츠하이머, 자폐증, 정신분열증 등의 병들은 모두 우리가 가진 유전자에만 근거하여 발생하는 질병들일까?

이 책에서는 위 질문들에 대한 부분적 답들을 과학적으로 잘 설계된 실험들의 결과를 바탕으로 일부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의 예시를 책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잘 핥아주는 어미 쥐의 자식이 성체가 되었을 때 못 핥아주는 어미의 자식보다 뇌의 특정 부분, 특히 해마에서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가 더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81쪽)

이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는 스트레스 저항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발현이 후성유전학적 조절의 결과임이 밝혀졌다. 이를 우리의 양육방식에 빗대어 볼 때 우리의 어린 자녀를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줄 때 그 아이가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 각종 스트레스에 더욱 의연하게 대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책에서 다루는 또 다른 여러 흥미로운 연구 결과 중의 하나는 의사들이 임산부에게 처방하는 엽산에 관한 내용이다.

"의사들이 처음에 산모에게 엽산을 처방한 까닭은 척추갈림증과 같은 신경관 기형을 예방할 목적이었다. 산모가 임신 초기에 엽산을 섭취하면, 정말로 그런 효과가 있다. 엽산은 신경계 발달에 중요한 유전자들을 후성유전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런 효과를 내는데, 의사들은 나중에 엽산이 태아 발생 과정에서 다른 후성유전적 효과들도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략) 식품가공업체들이 시리얼에서 밀가루까지 갖가지 곡물 제품에 엽산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보통은 과일과 채소가 엽산의 주공급원이다). 이것은 후성유전학적 영양학의 첫 응용 사례일 것이다."(104쪽)

이 내용은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음식들 또한 다양한 후성유전학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알려진 후성유전학적 조절은 어떻게 이루어지기에 DNA 염기 서열의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질이 바뀌게 되는 것일까? 일단 생물의 형질은 DNA 염기 서열의 정보가 바뀌지 않아도 이미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발현 강도에 따라 충분히 다른 형질을 나타내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면, 훨씬 쉽게 후성유전학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막 꽃피기 시작한 학문이라 후성유전학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 3가지의 원리가 기능한다고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DNA의 메틸화에 의한 유전자 발현 조절이다. DNA는 그대로 있지만 그 DNA에 결합된 메틸기의 수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조절된다고 한다(위에서 언급한 엽산이 메틸기 제공자이다).

두 번째, DNA는 실과 같이 생겨서 그 긴 분자를 세포의 핵 속에 잘 정리해두기 위해서는 실패와 같은 분자인 히스톤 단백질이 필요하게 된다. 이 히스톤 단백질에 여러 화학적 변형이 가해지는데, 어떤 경우에는 DNA가 히스톤에 너무 단단하게 감겨 그에 저장되어 있는 유전정보의 발현이 용이하지 않게 되거나 혹은 너무 느슨하게 감겨서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 경우 역시 DNA 염기 서열 자체에는 전혀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다.

세 번째는 DNA를 주형으로 하여 전사되는 RNA 분자 중 특정한 RNA(small RNA 등)가 DNA에 결합하여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특정 유전자에 따라 아마도 이러한 기전들이 단독 혹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후성유전학적 현상을 초래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반 독자는 <쉽게 쓴 후성유전학>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제목처럼 마냥 그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후성유전학은 이제 막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기 시작한 초동 학문 분야이며, 이 한 권의 책으로 후성유전학을 마스터하기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그래서 열정적인 도전과 신선한 과학적 결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흥미로운 차세대 생물학의 한 주요 분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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