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요미' 미학이 일본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나?

[프레시안 books] 요모타 이누히코의 <가와이이 제국 일본>

[공략에 앞서]
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내려, 구름다리 같은 터널을 지나다 보면 용산 철도기지의 옛 터가 보인다. 단군 이래 최대의 개발 프로젝트가 무너지고 난 뒤, 서울 한복판에 허허벌판이 남았다. 혹 그 너른 벌판에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이만한 데가 없다. 터널 끝, 수많은 첨단 기기와 호객 행위가 반겨주던 터미널 상가는 폐업 이후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전자상가로 가는 계단을 제외하면 모든 곳이 막혀 있다. 지옥을 지나는 단테의 심정으로 폐허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앞에 선다. 용산 나진상가 지하.


왕년에 한국 오타쿠의 메카였던 용산 게임 상가의 모습은 요즘 색다르다. 게임기의 세대가 갈리면 매장에 진열된 게임의 면면도 칼같이 바뀌던 시절이 지나고, 지금 용산의 게임 매장에는 한 세대, 두 세대 전의 가정용 게임기와 소프트웨어, 심지어 80년대를 수놓았던 패미컴, 메가드라이브(슈퍼 겜보이)를 들여놓은 곳도 늘어나고 있다. 첨단 게임의 경연장이었던 땅속에 다채로운 지층면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레트로(retro)' 게임 시장이다.


추억의 게임기들이 마치 팩맨처럼 당대의 게임이 차지했던 영역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퇴행을 향해 나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거리낌을 접어둘 수 있다면, 현란하고 불안한 당대를 차단하고 완결된 세계관 속에서 손쉽게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바로 거기에 있다.

[Stage 1]

▲ <가와이이 제국 일본>(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장영권 옮김, 펜타그램 펴냄). ⓒ펜타그램
"여기서 일본을 벗어나 동아시아의 역사적 문맥 속에서 이 현상을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한국인이 "박근혜 아버지는 귀여워!"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북한 사람들이 "김정은은 귀여워!" 하고 쑤군댈 수 있겠는가?"(<가와이이 제국 일본> 8쪽)

오타쿠였던(그렇다, 탈덕했다) 나는 늘 내가 파고 있는 분야가 오타쿠의 나무에서 어디쯤에 붙은 가지인지 궁금했다. 90년대 초반의 오타쿠계를 풍미한 '애니세대'에서부터 출발하여 여러 분야를 전전하다 보니 어느덧 오타쿠 문화론뿐 아니라 일반적인 일본 문화론도 접하게 되었다.

론(論)으로 정리된 일본 문화(혹은 오타쿠 문화)를 읽고 있을 때는 늘 디테일이 즐거웠다. 루팡 3세니 마쓰다 유사쿠 등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시시덕거리며 내부자들의 은밀한 즐거움을 누렸지만, 이 재미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란 무척 힘들다. 이런 즐거움은 읽는 순간뿐이다. 소소한 감흥을 전달하고자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증발해 버린다. 들이파는 것이 천성인 오타쿠이기 때문일까. 개론을 읽는 즐거움을, 나는 전하기가 어렵다고 미리 변명해 둔다.

[Stage 2]
"그렇다면 이제 작은 것, 어딘지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 어린 것을 '가와이이'라고 부르고, 이를 21세기 일본의 미학으로 본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겠다. 게다가 그 미학은, 미학의 틀을 훌쩍 뛰어넘어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이데올로기로 드넓게 퍼져 있다."(29쪽)


문화인류학자 아오키 다모쓰(青木保)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 문화론은 네 단계를 거쳐 왔다. 패배를 곱씹으며 자국의 전근대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대(1945~1954), 고도 경제성장으로 인해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고 독자성을 찾고자 했던 시대(1955~1963),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일본식 경영이 서구의 롤 모델로까지 찬미 받던 시대(1964~1983), 그리고 지금은 냉전 체제 붕괴 이후의 국제화나 무역 마찰로 각국의 채근에 시달리며 자국의 특수성에서 보편성을 추구하는 시기로 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일본 문화론은 서구와 자국을 비교하며 투박한 칼날을 붕붕 휘두르던 초기로부터, 점차 그 부피를 줄이며 정교해져 왔다. 영화학자에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 대해 비평 활동을 펼치는 학자, 요모타 이누히코의 <가와이이 제국 일본>(장영권 옮김, 펜타그램 펴냄)은 이러한 일본 문화론의 현재를 살펴보기에 알맞다.


[Stage 3]
"'가와유이'가 구어체에서 '가와이이'로 변천하는 근대에 접어들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출현한다. 구어체 소설의 기초를 닦은 이로 평가되는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의 <평범(平凡)>에는 "아버지는 바보라고 말하지만,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순진한 점이 나는 사랑스럽다(可愛ゆい)"라는 대목이 나온다."(46쪽)

'가와이이(귀엽다)'. umai, manga, karaoke 등과 더불어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록되었다는 kawaii의 의미는 일본 문화에 다소나마 관심이 있다면 들어본 적이 있는 단어이겠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가와이이'라는 개념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기에 이 책은 '가와이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유지하며 논의를 펼쳐간다. '가와이이' 자체를 직접 정의하기보다, '가와이이'를 에워싸고 있는 각종 현상이나 어원들에 접근함으로써 그 윤곽을 입체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이 방식은 왠지 눈에 익다.

'박람강기(博覧強記:사물을 널리 알고 올바로 기억함)의 궁극'이라며, 저자가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문학사상사 펴냄)에게 보냈던 찬사(?)는 어쩌면 전후 일본 문화론의 전가의 보도가 아니었나 싶다. 이어령이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 일본어 '사이쿠(細工)'에서 출발하여 '고자이쿠(小細工:자질구레한 세공)', '부사이쿠(不細工:만듦새가 서투르고 모양이 없음)' 등을 차례차례 끌어들이며 자신의 문화론을 전개하기 이전, 정신분석가 도이 다케오(土居健郎)는 1971년 저서 <'아마에'의 구조(甘えの構造)>에서, '수동적 애정 희구'라는 '아마에(응석)'의 심리를 일본의 언어생활 속에서 찾기 위해 연관이 있어 보이는 갖가지 일본어 표현(달다, 관대하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다, 마음이 토라져 있다, 토라져서 자포자기하다, 비꼬이다, 원망하다, 호의를 기대하다, 비위를 맞추다 등)을 동원하기도 했다.

먼저 자국의 현대영화와 근대문학에서 '가와이이'의 다양한 용례를 찾아내며 앞선 연구자들의 방식을 계승하고 있는 <가와이이 제국 일본>은, 이어서 고대, 중세, 근세의 문학을 훑으며 '가와이이'의 어원으로 보이는 '가오하유시(かほはゆし:얼굴이 전에 비해 훨씬 또렷하게 돋보이는 모습)'를 찾아내고 그 변천사를 좇는다. 이 과정에서는 심지어 17세기에 간행된 일본어-포르투갈어 사전이 동원되기도 한다.

또한 지난 세기의 일본 문화론이 주로 서구권의 제1세계와의 비교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서구뿐 아니라 아시아 근린 국가나 세르보-크로아티아어, 현대 히브리어까지 넘나들며 '가와이이'에 해당하는 어휘들이 지닌 의미의 폭을 비교하는 모습은 확실히 진일보한 광경 같다. 영어에서는 숫제 고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며 'cute', 'pretty'의 어원을 탐구하여 이들이 '가와이이'와 전혀 다른 어학적 발전 과정을 거쳤음을 증명한다. 최소한 내 편견이 21세기의 일본 문화론에 기대하는 워밍업으로서는 납득할 만하다.

▲ 유야마 쿠니히코 감독의 <극장판 포켓몬스터 베스트위시 : 신의 속도 게노세크트, 뮤츠의 각성>(2013). ⓒ(주)포켓몬코리아

[Stage 4]
"이데올로기로서 노스탤지어가 '가와이이'에 호소할 때, 무언가가 주어짐과 동시에 무언가는 억압되고 부정된다는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138쪽)


"미디어에서 '가와이이'를 내세워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감이요, 소비주의요, 생리적 연령에 대한 정신의 승리다. (중략) 그러면 거기에서 은폐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소비의 쾌락과 대립하는 자리에 있는 것, 간단히 말해서 노동, 역사, 그리고 잡지 제작사와 독자가 만들어낸 공동체의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다."(168쪽)


워밍업이 끝나면 '가와이이'에 관한 대학생 대상의 설문 조사 결과가 이어진다. 설문의 결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가와이이'는 복잡한 양의성(兩意性)을 지닌 개념으로, 젊은이들은 이 단어에 선망과 혐오의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린다. 남성의 경우 '멋지다'의 반대말로 인식될 수도 있고, 여성에게는 '귀엽다'의 반대말이 될 수도 있다. '흉측하다'의 반대말이 되는 한편, '영리하다'의 반대말이 될 수도 있다. 모순적인 개념들이 동시에 뒤얽힌 이 애매함이야말로 '가와이이'를 현대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신화'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와이이'와 상반되는, 혹은 유사한 개념들을 도출한 저자는 비로소 이들을 활용해 자국의 대중문화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가와이이'와 '우쓰쿠시이(아름답다)'를 놓고는 일본 영화사의 신화적 여배우들을 비교하면서 각자가 가진 안도감과 긴장감을 대립시키는가 하면, 그로테스크를 '가와이이'의 인접 개념으로 두고 '가와이이'라는 얇은 관념의 필터를 벗겼을 때에 친숙한 대상이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작은 것', '어린 것', '그리움', '아이스러움'이라는 관념을 통해서는 미니어처 문화, 노스탤지어, 기념품이 지닌 탈시간성과 몰역사성을 지적하고, 이들이 형성하는 소비사회가 미디어를 통해 수용자에게 어떤 식으로 '가와이이'의 올가미를 거는지 연령대별 여성 잡지를 비교하여 분석해 낸다. '가와이이' 속에 인문학 혹은 사회학이라는 그물을 던졌을 때 걸려들 만한 물고기들이 이 대목에서 대거 등장한다.

[Stage 5]
"만화잡지 <주간 소년>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테니스의 왕자>의 페스티시(모방 작품) 정도는 어떤 건지 대강 짐작이 간다. 그렇지만 '루피 받음'이라든가, '조로 받음'과 같이 적힌 세부 항목은 도무지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185쪽)


이어서 다루는 문제는 '가와이이'와 젠더이다. 아마 오타쿠 독자로서는 연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대목이 아닐까 하는데, 50대의 이성애자 남성이 남성의 '가와이이' 성지 아키하바라, 여성의 '가와이이' 성지 이케부쿠로, 게이의 '가와이이' 성지 신주쿠 니초메를 탐방하며 양상의 차이를 분석한다. 메이드 카페, 아니메이토, K-BOOKS 등의 익숙한(?) 풍경과 함께, '게이 에로틱 아티스트' 다가메 겐고로의 이름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여성이 만들어 낸 '가와이이'의 표상(미소년)이 게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해 짧게나마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Stage 6]
"이 대목에서 떠올려봐야 할 것은, 키티를 유년기의 한정된 장난감 이상의 존재로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가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독자성이다. 마찬가지 경우로, <마루코는 아홉 살>과 <도라에몽>이 구미에서 과연 받아들여질지 미심쩍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절대적으로 환영받는 현상을 지적할 수 있겠다."(209쪽)

90년대에 불어 닥친 글로벌라이제이션(국제화)의 바람이 일본 사회의 내․외부를 뒤흔들며 일본의 대중문화는 다양한 변주를 겪는다. 이러한 변주의 밑바탕에 깔린 '가와이이' 문화는 '문화적 무취성'을 바탕으로 '포켓몬스터'와 '헬로 키티'를 선봉 삼아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으로 진단한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저자의 태도가 다소 유보적으로 느껴지는데, '문화적 무취성'의 효과를 맹신하지 않는 점은 인상적이다(저자는 문화적 무취성의 대표적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적인 미학을 갖춘 작가로 나카가미 겐지를 들고 있는데, 이와 똑같은 견해를 얼마 전 <기획회의> 354호에 실린 평론가 겸 작가 오쓰카 에이지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경을 넘은 대중문화가 수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비슷한 견해를 보여준다).

▲ 유명 캐릭터 상품 '헬로 키티'. ⓒsanrio(출처 http://www.sanrio.com/)

1980, 90년대의 일본 대중문화가 해외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화적 무취성' 자체가 오히려 '일본적인 것'으로 수렴되었던 정황을 감안해야 할 듯한데, 저자는 불충분하나마 수용국의 문화적 토양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울러 '가와이이' 콘텐츠의 첨병으로 <포켓몬스터>를 언급한 부분은 일견 납득이 가지만, 그 이전까지 해외에서 일본 서브컬처의 이미지를 구축했던 기반이 과연 '가와이이'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 연구자의 업적 외에도, 이 책을 집필하기 전까지 저자가 기피해 왔다던 '현학적인 오타쿠의 요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가와이이'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규명하는 데에 굳이 큰 힘을 기울이지 않은 자세는 담백하다.


[Stage 7]
"만약 벽에 그려진 것이 나치의 갈고리 십자 문양이나 유대인을 업신여기는 내용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가득한 풍자화였다고 한다면, 얼마간은 마음이 편했을 터다. 그런데 내 눈앞에 있었던 것은 유년기에 즐겨 먹던 캐러멜의 포장지 그림과 다를 바 없는 천사의 미소였고, 도쿄의 거리를 걷다보면 어디서나 마주치는 귀여운(가와이이) 고양이 그림이었다."(219쪽)


옛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 벽화. 가해자 측이 제작하여 피해자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윤활유 역할을 했을 이 그림이 지닌 도덕적 도착이야말로 저자가 '가와이이'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탐구심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앞서 '가와이이'를 논하며 저자가 여러 차례 드리운 불길함의 그림자는 여기에 이르러 '나치의 도상학'으로 실체화된다. '악의 평범성'의 '가와이이' 버전이라 할 만하다(지난 세기를 수놓은 다수의 일본 문화론처럼 서구에서의 체험이 자국 문화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가와이이 제국 일본>의 가장 큰 미덕은 다채로운 분석의 기법이나 저자의 지적 성취에 앞서, 이 출발점에 있지 않을까. 외국에 대해 자국의 고유성을 인정받기 위한 문화론이 아니라 공동체의 내적 성찰을 제안하는 문화론. 그러나 일찍이 80년대의 일본 사회가 자국 문화의 긍정적 특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드리야르의 기호소비론을 오독하며 소비사회를 예찬했듯이, 요모타 이누히코의 '가와이이' 문화론은 세계 시장에서 일본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거둔 성공에 대해 문화 내셔널리즘적인 해설사 노릇을 해야 했다.

"<가와이이 제국 일본>이 간행된 직후부터 일본의 텔레비전을 비롯한 미디어는 그전보다도 더 '가와이이' 현상을 연방 다루며 긍정적인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들은 나의 책을 어떤 권위의 근거라도 되는 양 인용했고, '가와이이'야말로 일본이 나아갈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책은 고등학교 일본어 교과서에도 실렸으며, 매년 여러 대학에서 입시 문제의 예문으로 출제되었다."(8쪽)

저자는 한국어판의 서문에서 당시의 안타까웠던 심정을 토로하며 한국 독자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뒤, 미국 유학을 거쳐 호주에서 20여 년간 교수를 지냈던 사회학자 스기모토 요시오(杉本良夫)는 저서 <일본인을 그만두는 방법(日本人をやめる方法)>에서 오랜 세월 되풀이되는 일본 문화론에 대한 언설 자체가 일본인의 의식을 사로잡고 특정한 일본인론․문화론으로 세뇌시킬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는데, 이는 여전히 유효한 지적인 듯하다.

이 책이나 저자의 의도를 시장에서 '가와이이'가 거둔 성공에 놓고 보려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동일본 대진재 이후로 출간된 이 한국어판을 희망이나 과시의 메시지, 혹은 세계 문화 시장 석권을 위한 지침서로 읽으려는 시도는…, 음.


[공략을 마치며…]
나는 개론의 즐거움을 전하는 데에 서툴다고 미리 이야기했다. 이하는 '가와이이'를 논하기 위한 판을 깔아준 이 책에, (전직) 오타쿠의 한 사람으로서 응답하고 싶었던 심상과 물음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서평의 본문이 되기에는 너무 주관적인 감상이 될 것 같아 망설인 이야기들일지 모른다(혹시 세가 새턴의 슈팅 게임 <레이디언트 실버건>을 아는 사람이라면 Stage 1의 내레이션을 떠올리기 바란다).

글의 서두에서 뜬금없이 용산 전자 상가 이야기를 꺼냈다. '레트로 게임기'라 불리는 80년대, 좋았던 옛 시절의 게임기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레트로 게임기는 '그리움'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TV 화면과 만나면 옛날의 그 조악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재생하는 순간, 하나의 '미니어처'를 생성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화면과 음악이 지배하는 공간의 안락함을 찾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아키라>(1988). ⓒTokyo Movie Shinsha
일본의 서브컬처가 만들어 낸 산물이 '가와이이'뿐만이 아닐 텐데 어째서 이슈가 되는 것은 '가와이이'인가? 막대한 자원을 퍼부어서 만화,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었던 버블 시기를 지나고도, 90년대의 서구에서 (지브리 등을 제외한) 일본 서브컬처의 이미지는 '갓코이이'였다.

슈에이샤에서 발행한 <망가 오모!> 창간호(2003년 겨울)의 기사에서는 프랑스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킨 선구적 작품으로 <유에프오 로보 그렌다이저>, <캡틴 하록>, <캡틴 퓨처> 등을 꼽았다. "근사한 캐릭터 디자인, 섬세한 심리 묘사"는, 유럽의 만화 편집자와 팬들이 말하는 일본 만화의 첫 번째 매력이었다.

<아키라>를 위시한 사이버펑크, <수병위인풍첩>처럼 '갓코이이'한 하드코어 액션물은 21세기 초까지도 서구에서 발매된 일본 애니메이션 DVD에서 매체 발매원의 로고와 함께 인트로를 장식하곤 했다. '오타쿠 비즈니스 세계 진출'이라는 특집기사가 실린 <뉴스위크> 일본판(2003.6.18)의 표지는 <북두의 권>의 프리퀄 <창천의 권>이 장식하고 있다(주인공이 일본 제국의 전성기에 상하이에 '진출'해 활약했던 권법가라는 사실은 잠시 잊자). 기사에서 소개하는 베를린의 일본 만화 전문점은 <드래곤볼>, <마크로스>, <무한의 주인>, <키카이더> 등을 매대에 좌악 깔아놓았다.


요모타는 <가와이이 일본 제국>에서 <포켓몬스터>의 실적(미국 전역 3000여 개의 개봉관에서 애니메이션 상영, 5000억 엔의 관련 상품 영업 이익 등)을 언급한 이후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전체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만을 이야기한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서구 오타쿠 사회의 흐름을 내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일본의 미디어가 오타쿠 비즈니스의 해외 진출을 이야기하는 방식, 혹은 내가 짧게 서구 오타쿠 문화를 체험하고 받은 인상을 감안할 때, '가와이이'만으로 오타쿠 비즈니스의 진출을 설명하는 데에는 다소 위화감을 느낀다. '가와이이'가 정말 2000년대 초반 이후 서구의 오타쿠 시장을 석권했다면, '갓코이이'에서 전환하는 어떤 과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비판 이전에, 개론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

소박한 의문 하나 더. <아키라>를 위시하여 큰 서사를 바탕으로 '갓코이이'를 펼치던 극장판은 다 어디 가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언어의 정원>만 남았는가?

▲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2013). ⓒ코믹스웨이브필름즈

상대적으로 기술의 발전에 연출이 좌우되던 가정용 게임이 용량의 제한에서 풀려나기 시작한 32비트 게임기의 시대에서도 일본은 <메탈기어 솔리드>, <철권>, <버추어 파이터> 등의 작품들로 '갓코이이'한 연출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게임기의 비트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는 오늘날, '갓코이이'의 일본 게임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 세기까지 '가와이이'와 함께 일본 서브컬처의 한 축을 이뤘던(그리고 일부는 아직도 살아 있는) '갓코이이'가 담론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 현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가와이이'가 자원의 투입을 줄임으로써 성립하는 미학은 아닐까? 동일본 대진재를 겪은 이후, '가와이이' 이외의 미학을 추구할 만한 사회적 자원이 일본에 남아 있지 않다면? 저자가 책에서 경고하는 '가와이이'의 부정적 영향이 계속 축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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