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첫째, 이 책이 가진 관점이 일반적으로 '진보' 혹은 '좌파' 라고 뭉뚱그려지고 있는 관점과 어떻게 다른가를 볼 것이고 둘째,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려 한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의 관점
| ▲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한형식·이광수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왜 이들 이론이 인도 저항사를 적기에 부적절한가를 말한다면, 이 책이 어떤 입장에서 쓰였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먼저 발전경제학과 서발턴 이론에 대해서 잠깐 들여다보겠다.
저항운동과 거리를 두는 아마티아 센 유의 발전경제학
발전 경제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성장이 최우선이 아닌 품격 있는 발전'이라는 발전경제학의 모델을 제시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 학자인 아마티아 센이다. 그는 인도 께랄라 주를 사례연구로 삼았다.
께랄라 주의 소득수준은 가난한 나라인 인도의 전국 평균치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가난에 가장 민감한 지표인 영아사망률은 가장 낮으며 평균수명도 다른 주보다 훨씬 높다.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는가가 문맹률의 기준인 나라인 인도는 인구 절반이 문맹이지만, 께랄라는 문맹률이 거의 없다. 께랄라의 발전 성과는 인도의 공산주의자 E.M.S. 남부디리파드가 대중들과 함께 구현한 것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께랄라 근대화의 아키텍터'인 남부디리파드가 주도한 께랄라의 이러한 성과들을, 아마티아 센은 '지지가 이끌어 내는 효과'라고 일컬었지만 남부디리파드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마티아 센이 께랄라 경제 정책에 관여해서 께랄라가 발전했고 그래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오해하시고 계신 분들은 그에 대한 과다한 오해 내지 기대를 버리셨으면 한다.
아마티아 센은 반세계화 집회에 대해 "시위대가 심각한 세계적 불평등에 관심을 갖는 한 그들의 요구를 '경찰력으로' 진압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는 양심적인 학자이다. 그러나 아마티아 센은 저항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그 또한 '서구의 눈'이다. 그는 남부디리파드와 대중운동이 이룬 성과는 분석하면서도 남부디리파드의 이름과 대중운동은 철저하게 서술에서 제외시켰다.
| ▲ <자유로서의 발전>(아마티아 센 지음, 김원기 옮김, 유종일 감수,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
우리는 남부디리파드 등의 '인도 저항 운동이 거둔 성과'는 모르고 아마티아 센 유의 '발전경제학'을 논하고 있다. 그러니까 문제는 아마티아 센이 아니라 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 기존의 아마티아 센 등의 발전경제학은 의도적으로 저항운동을 배제해 왔기에 인도 저항 운동사를 서술하는데 있어서 아마티아 센 유의 발전경제학은 서술의 방법으로 채택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이 책은 아마티아 센 유의 발전 경제학에 대해서는 중점을 두지 않았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케랄라 모델 창안자' E.M.S. 남부디리파드")
변질된 서발턴 이론
서발턴 이론의 출발은 인도 마오이스트라 불리는 낙살라이트(Naxalite)들의 인도 낙살바리 운동의 실패 이후 시작되었다.
1967년 서벵갈의 북부, 네팔 산악 지역과 인접한 낙살바리라는 곳에서 지주들의 수탈을 못 이긴 농민들이 "토지를 경작자에게로"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1967년 낙살바리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무장 반군은 서벵갈주에 점차 퍼졌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정부의 경찰에 의해 잔혹하게 짓밟혔다.(129~130쪽)
이 낙살바리 운동을 지도했던 공산주의 무장반군은 현재 인도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CPIM(Communist party of India-Marxist, 인도공산당 맑스주의당)이나 CPI(Communist party of India, 인도공산당)이 아니었다. 이들 낙살라이트들은 CPIM이나 CPI의 선거를 통한 공산주의 이행 주장을 혁명에 대한 배신행위로 보았고 이들 또한 '적'으로 선언하였다. 낙살라이트는 제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장봉기였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에서도 낙살라이트가 공산당을 포함한 제도권 정당과는 다름을 밝혔다.
"이 봉기에 참여한 최하층 농민들은 카스트상으로 대부분 달리뜨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집단이 지정 부족이었어요. 낙살 반군 봉기는 고통받는 당사자들이 공산당이나 회의당이라는 정치 질서, 정치적 제도 바깥에서 자기들 스스로 새로운 방식으로 해방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가집니다."(166쪽)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아시아의 진보적 사상가들(2)-인도 최하층민 사로 잡은 차루 마줌다르" )
서발턴 이론을 처음 제시한 라나지트 구하는 낙살라이트 봉기가 있던 서벵갈 출신의 지식인으로 CPI에 소속되어 있었다. 라나지트 구하는 인도공산당이 낙살라이트 봉기에서 참가했던 하층민을 기반으로 하지도 않았고, 하층민들이 잔인하게 진압을 당했을 때 중재도 하지 못했던 무능함을 절감한 뒤 CPI를 탈퇴한다. 나아가서 기존 제도권 공산당들의 이론을 벗어나서 인도 하층민들의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고자 했다.
라나지트 구하는 그람시에게서 "계급, 카스트, 연령, 젠더, 직위 등 모든 측면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층"란 의미의 서발턴 개념을 가져왔다. 그람시가 서발턴을 논했을 때는 카스트, 연령, 지역 등의 문제를 계급으로 풍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 끌어온 것이었다. 라나지트 구하는 인도 제도권 공산당의 이론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왜곡됐는지 드러내기 위해서 서발턴 개념을 끌어들였다.
| ▲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우르와쉬 부딸리아 지음, 이광수 옮김, 산지니 펴냄). ⓒ산지니 |
초기의 서발턴 이론을 바탕으로 나온 뛰어난 성과들이 있다. 우르와쉬 부딸리아가 쓰고 이광수가 번역한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 인도-파키스탄 분단으로부터 듣는 여러 목소리>(산지니 펴냄)는 분단 당시 여성과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그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여성 등의 사회적 약자는 어떤 진영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계급, 카스트, 연령, 젠더, 직위에 의해 언제나 새로이 생성되는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사히드 아민의 1995년 작 <이벤트, 메타포, 기억 : 차우리 차우라 1922년~1992년(Event, Metaphor, Memory Chauri Chaura, 1922-1992)>(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펴냄)은 간디가 시민 비복종운동의 중단을 선언하게 됐던 계기인 차우리 차우라 마을 폭력 사건을 다룬다. 이 책은 서발턴들이 간디의 말대로 '독립을 하기에는 부족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서발턴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내었다. 또한 간디와 국민회의가 인도 토착 지배계급 입장에서 어떻게 이들 선량한 서발턴들을 이용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이 책은 라나지트 구하에게 헌정한 책이기도 하다.
| ▲ <역사 없는 사람들>(라나지트 구하 지음, 이광수 옮김, 삼천리 펴냄). ⓒ삼천리 |
그러나 라나지트 구하의 이런 의도와는 다르게 서발턴 이론은 변질되었다. 서발턴들의 저항 운동은 언제부터인가 서발턴 이론에서 사라졌지만, 서발턴 이론은 학계에서는 광범위하게 환영 받게 되었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 낙살바리 운동의 실패는 서발턴 이론이 세상에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러나 인도 국토의 절반 가량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 낙살라이트들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인도의 처참한 현실과 현재의 서발턴 이론은 관계가 없다. 스피박이 '해체'를, 호미 바바가 '문화'를 들고 서발턴 이론의 장에 들어온 후, 서발턴 이론은 이제 계급 외 문제가 중요하다면서 계급을 논하는 것 자체를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다. 역사를 서발턴의 목소리로 재구성해서 새로운 실천의 장을 만들고자 했던 서발턴 이론은 이제 '지식인들만의 담론 리그'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단적인 예가 수미뜨 사르까르(Sumit Sarkar)의 서발턴 그룹 탈퇴다. 서발턴 이론의 집단적인 연구가 1982년에 이론지 <서발턴 연구(Subaltern Studies)>로 공식화될 때 인도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수미뜨 사르까르는 1983년에 진보, 보수의 입장을 다 떠나서 인도 근대사의 필독서가 된 <모던 인디아(Modern India)>를 세상에 내놓았다. 수미뜨 사르까르는 서발턴 연구에 동참하면서 계속 굵직굵직한 연구물들을 지속적으로 내놓았지만 결국 서벌턴 연구가 변질되었음을 공표하며 여기서 탈퇴했다. (Sumit Sarkar, 'The Decline of the Subaltern in Subaltern Studies',
테리 이글턴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거대서사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거대서사라고 비판했다.(<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테리 이글턴 지음, 김준환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참조). 라나지트 구하에게서 보이듯 서발턴 이론에 근거한 모든 결과물들이 테리 이글턴이 비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니다. 그러니 서발턴 이론 전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서발턴 이론의 주류는 서발턴의 삶과 저항에 대한 연구보다는 서발턴이 무엇인가라는 담론을 만드는데 몇 십 년째 세월을 보내고 있다. 스피박은 인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마하스웨따 데비(Mahasweta Devi)와 함께 고향 서벵갈주의 서벌턴들을 둘러본 후 "그들은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에서 그들이 저항하고 있음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스피박에게서 '자신의 이론을 확인했으니 만족했나 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런 서발턴 이론으로는 어떻게 인도의 저항운동사를 쓸 수 있겠는가?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의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첫 결과물로 인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에서 인도의 저항운동에 대한 책을 먼저 내는 것은 인도가 세계에 현존하는 거의 모든 저항운동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실천의 사례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12쪽)"라고 밝혔다.
| ▲ <인도는 울퉁불퉁하다>(정호영 지음, 한스컨텐츠 펴냄). ⓒ한스컨텐츠 |
뭔가 우리와 공통점이 있어야 배울 것이 있지 않겠는가? 공통점을 짚기 전 오해를 하나 풀자.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에서 사회주의란 단어는 자주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남아시아에서 '사회주의'란 용어는 심할 정도로 남용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계급의식은 매우 희박하다. 그래서 공산당 반군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에 나타나는 현상이다.(255쪽)
공화국을 거부하면서 네팔왕권을 끝까지 지지하던 네팔 국민회의도 자신들이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정당인 BJP도 한 때 자신들의 강령을 '간디 사회주의'로 할 것을 고민했다. 인도의 수많은 정당들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이념과 전혀 상관없이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넣었다. 사회주의는 카스트 문제 해결을 뜻하는 사회개혁이란 단어와 별 차이가 없다. 공산당의 정책 또한 맑스 레닌을 인용하고 있더라도 실제 내용은 케인스주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즉 인도에서 맑스와 레닌을 인용하고 사회주의를 주장하더라도,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낙살라이트를 제외하고는 한국 내에서도 제안이 가능한 주장들이다.
이제 공통점을 짚어보자. 첫째, 인도의 경제 발전 과정은 한국과는 차이가 있으나 국가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는 6개의 장, 즉 1장 '독립 이후의 인도 현대사', 2장 '공산당 운동과 노동운동', 3장 '반카스트운동', 4장 '농민운동', 5장 '여성운동,환경운동,부족민 운동', 6장 '향후 대안 모델을 께랄라에서 찾아보다'로 나뉘어 있다. 1장 '독립 이후의 인도 현대사'는 인도 현대사를 '독립 이후 네루 시기의 사회주의 정책에서 1990년대 개혁개방정책 이후 사회주의 포기, 그리고 세계화'로 보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관점을 취하지 않고, '국가자본주의의 전개와 세계화'로 보고 있다.
"네루는 이것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불렀지만 사적 소유를 온전히 인정했고 계획경제의 운용이 민간 대기업들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정확하게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루의 개발 전략의 기본은 '수출 비관주의'에 입각한 수입대체산업화 및 국산화 전략이었습니다. 이런 전략은 인도 경제에서 대기업들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이로 인해 산업 자본가(industrial capitalist class), 부농(rich farmers), 공공부문종사자(professionals in the public sector)로 이루어진 세 그룹의 지배 연합(dominant coalition)이 인도지배 집단의 자리를 공고히 합니다."(21쪽)
한국 또한 박정희 정권 시기에 국가자본주의 정책하에서 계획 경제를 했고 '재벌'의 성장을 도왔다. 차이라면 박정권 또한 인도처럼 중공업 위주의 계획경제로 시작하려 했지만, 경공업 수출에서 경쟁력을 발견하고는 중공업 위주의 계획 경제를 뒤로 미루었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김보현 지음, 갈무리 펴냄)을 참조하라.)
| ▲ <처음 읽는 인도사>(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
대중서적으로는 정호영의 <인도는 울퉁불퉁하다>(한스컨텐츠 펴냄),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처음 읽는 인도사>(휴머니스트 펴냄)가 이를 언급하기는 했으나, 인도의 사상이 국가 자본주의임을 전제로 하고 본격적으로 쓴 대중서적으로는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가 처음이다.
둘째, 한국과 인도의 공통점은 양국 모두 세계화의 과정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양국은 서로의 세계화 과정과 그 대응에서 서로 간에 배울 점이 있다. 현재 한국에선 세계화의 병폐를 고민하면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논의들이 대세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이런 모델들이 독립 직후부터 다양하게 60여 년간 지방자치제도와 맞물려서 대부분 실험됐고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심지어 아마티아 센을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만들어준 께랄라까지도 세계화로 인한 위기를 겪었다. (이 책의 6장은 이를 다룬다.)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대안경제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를 세계 최초로 만든 무하마드 유누스가 빈민들이 투자한 그라민 은행이 이동통신사까지 할 수 있다는 롤 모델을 제시했듯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대기업이나 공적 부문의 영역까지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김원기 옮김, 유종일 감수, 갈라파고스 펴냄)에서 그라민 은행 사례를 모범으로 내세우고 향후 발전경제가 나아갈 길로 제시했다. 조셉 스티글리츠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홍민경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에서 방글라데시 NGO들이 부와 일자리를 창출한 사례 등이 있으니 '세계화'를 수정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NGO 활동가와 박애자본가들은 이들 세계적인 석학들이 권하는 '사회적 기업/협동조합'을 시도했고 참담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인도의 NGO 활동가와 박애자본가들은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모델을 따라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투기자본가이자 박애 자본가'인 조지 소로스를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빈민들을 죽음으로 내몰다가 자신들도 파산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남아시아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실상 - 품위 있는 발전은 가능했던가?") 한국은 이미 여러 번 방한했던 무하마드 유누스를 초대해서 그의 '거짓말'을 계속 감탄을 하면서 듣고 있지만 이미 인도는 쓰라린 경험을 했기에 유누스에 대한 환상은 없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인도에게서 배울 수 있는 점이다. 인도의 발전에 대한 시도들과 그 실패들은 저발전국가 인도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화가 된 지구상 한국이나 인도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 ADB(아시아개발은행)는 께랄라 정부와 함께 각종 사영화 프로그램을 강화시켰다. 민주적 분파와 급진 좌파들이 저항의 움직임을 보였지만, 정부와 ADB 프로그램의 공모성을 폭로하고 대안적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그린비 제공 |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의 각론에서 일부 오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워낙 광범위한 범위들을 다루고 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일 수도 있고 필자와 입장이 다르면 오류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을 읽는 독자는 책의 한 쪽, 한 구절에 연연하기 보다는 우선 인도 저항 운동사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읽어보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필자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급진적 민주주의자의 주장은 사회민주주의보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주장과 유사하다. 개인의 자유와 국가로 대표되는 권위적 통제장치의 대립을 강조하고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급진민주주의의 가치가 자유민주주의의 주장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주장과 다른 점보다는 유사한 점이 더 많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지적한 바다. (…)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윤리적 문제이거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격의 문제로 환원시켜 버린다. 이런 주장은 결국 기껏해야 미국의 민주당이나 유럽의 제3의 길 노선 정도를 대안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또 이런 논자들은 구호 단체나 NGO들의 활동을 과대평가한다. 그 활동이 가지는 한계와 문제점들이 많이 폭로된 지금도 그들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면 아무 대안도 없기 때문에 이나마라도 받아들이라고 우리를 윽박지른다. 이것은 지난 20년간 한국 진보운동을 질식시켰던 비판적 지지론의 논리와도 같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은 다른 더 급진적인 대안이 수많은 이들에 의해 얼마나 정열적으로 실험되고 있는지 알려고는 했는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지금도 이어지는 민중들의 자생적인 저항. 대안 운동에 조금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심지어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은폐하는 지배 집단의 논리와 한편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라. 당신들이 보려하지 않더라도 우리 민중들이 직접 다른 나라의 민중들과 연대하며 서로의 경험에서 배울 것이다. 현학적 말투와 개량적 속내로 우리를 가르치려 하지 마라."(11~12쪽)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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