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와 비슷한 소재, 또 다른 괴물을 삼킨 아이!

[프레시안 books] 조이스 캐롤 오츠의 <대디 러브>

극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온전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을까? 상상할 수 있는 최대로 고통스러운 일(이를 테면 자식을 잃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도록 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소설은 안전한 대리경험으로 소비되고 뭉친 휴지와 함께 버려지면 그만일까? 내가 오래 갖고 있던 의문이었다.

▲ <대디 러브>(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포레 펴냄). ⓒ포레
소설이 고통을 다루거나 피학성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고통은 차마 말할 수 없지 않느냐는 (말하는 순간 걸러지고 길들어져 버리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이스 캐럴 오츠가 <대디 러브>(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포레 펴냄)의 도입부에서 고통을 이야기하는 어떤 방법을 보여주었다.

<대디 러브>의 첫 장(章)은 쇼핑몰에서 하루를 보내고 피곤한 상태로 밖으로 나온 엄마 다이너가 아들에게 "내 손 잡아"라고 말하는 순간에서 시작해서, 쇼핑몰 주차장에서 유괴범에게 습격을 당해 아이의 손을 놓치기까지 5분을 담는다. 아마도 외상 후에 재구성되었을 기억은 의식을 핸드헬드 촬영으로 찍는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며 머뭇머뭇 그 운명의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 장이 끝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다음 장 역시 "내 손 잡아"로 되돌아가 반복한다. 이야기는 시간에 사로잡힌 것처럼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고통스럽게, 다시 뼈를 깎으며, 세부사항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전반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이렇게 마지못해 발을 떼듯, 흐릿한 의식 속에서 이성의 갈피를 찾듯 (다이너는 실제로 유괴범에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다) 더듬거리는 서사가 고장 난 축음기처럼 운명의 5분을 세 차례 힘겹게 반복하고 난 뒤에야 우리는 그 사건 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다이너의 의식 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엉키며 미묘한 불협화음을 낸다. 다이너는 아이에게 차가 주차된 자리를 찾는 주차장 게임을 하자고 제안하지만 아이가 쉽게 차를 찾지 못하고 초조해 하자 곧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후회한다.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보이는 일을 두고 다이너는 "어리석은 불확실성", "면도날 같은 갑작스러운 자기 혐오감"(12쪽)마저 느끼고 흔들리는 속마음을 아이에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쓴다. 다이너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릴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다이너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사랑해야 할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한다. 다이너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에 비슷한 의문이 있을 것이다.

고통스럽게 사건을 모두 재구성하고 난 뒤에, 아이를 잃어버린 다이너와 위트 부부, 체트 캐시라는 유괴범, 로비라고 불리다가 체트 캐시에게 납치된 뒤 기드온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아이의 6년 동안 이야기가 이어진다. 당연하지만 다이너와 위트의 삶은 조각나고 다이너의 "어리석은 불확실성", "면도날 같은 갑작스러운 자기 혐오감"은 더욱 증폭된다. 위트는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던 개인으로서의 존재감"(290쪽)을 잃는다. 다이너와 위트의 기억, 의식, 일상, 관계 등이 전부 균열을 일으키고 무너지는 가운데 두 사람이 그래도 마지막 인간다움까지는 저버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 <좀비>(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포레 펴냄). ⓒ포레
다이너와 위트의 삶은 그 사건이 일으킨 육체적 정신적 상처에 붙들린 것처럼 더 나아가지 못하는 반면 체트 캐시의 시선을 따라가는 서사는 거침이 없고 명료하고 확신에 차 있다. 체트 캐시는 사람들 눈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설교와 호감이 가는 겉모습으로 신도들에게 사랑받는 순회 설교자로 비치지만 사실은 어린 남자아이를 납치해 성적, 정신적 노예로 삼는 '대디 러브'이기도 하다. <좀비(Zombie)>(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포레 펴냄)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자 '나'(퀜틴 P)를 연상시키는 인물이지만, 퀜틴 P도 불안감과 초조함은 드러냈던 반면 체트 캐시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체트 캐시는 조금의 균열도 혼란도 없이 완벽하게 조율된 이중적 삶을 이끌어 가려 한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나 두려움 같은 것은 모르는 악의 화신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불안정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불완전성, 삶의 불안정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흔들리는 자각이 놀랍게도 인간의 조건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이스 캐럴 오츠가 그저 감정을 격앙시키고 속을 뒤집어 놓기 위해 공포와 잔혹함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소재가 거의 비슷한 장준환 감독의 영화 <화이>가 인간의 본성과 악을 하드고어하게 다룬 다음 인간의 내적 힘을 믿는다는 듯 상당히 안전하게 마무리한 것과 대비해서 보게 되어, 불안함이 더욱 뚜렷하게 잔상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 <블론드>(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송기철·강성희 펴냄, 올 펴냄). ⓒ올
오츠의 작품 활동 초창기인 1969년 출간되었고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품 <그들(them)>(오츠가 40권 넘는 자기 소설 가운데 <블론드(Blonde)>(송기철·강성희 펴냄, 올 펴냄)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기도 하다)에는, 오츠가 가르쳤던 학생을 바탕으로 창조한 인물 '모린'이 '오츠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가 나온다. 모린은 선생님이 문학이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한다고 가르친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모린은 편지에서 문학이라는 것은 선생님 같은 안정적인 중산층 세계 안에서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냐는 날선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그 질문이 오츠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설을 쓰며 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소설이 일으킨 파장이 책장 안에서 해소·봉합되지 않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겉보기에 매끈하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세계가 안에는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가라앉지 않는 진동을 품고 있음을 보여주고 결말에서 거짓된 평정을 제시하기를 거부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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