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구제역이지만 사람이 전염되는 역병 나올 수도"

[구제역 재앙⑤·인터뷰]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동물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구제역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방역은 초반부터 구멍이 뚫렸고, 살처분 가축의 숫자만 180만 두를 넘어섰다. 국내 축산업은 붕괴 직전의 위기에 놓였다.

'재앙' 수준의 이번 구제역 사태를 두고, 공장식 사육 등 철저히 인간의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했던 국내의 축산 환경을 근본적으로 성찰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밀집 사육, 품종 개량, 항생제 남용 등 소·돼지란 '단백질 식품'을 찍어내기에 바빴던 사육 환경이 이번과 같은 구제역의 전국적인 확산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로 일부 친환경 축산 농가가 구제역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다는 주목을 받고 있지만, 유기농지 바로 옆에 농약을 치면 유기농 논 역시 망가지는 것처럼 아무리 친환경 사육을 해도 바로 옆 축사에 구제역이 발생하면 친환경 축사도 바로 살처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광우병·수의면역학 전문가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당시 정부의 수입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과) 역시 이번 구제역 사태를 "인간이 낳은 재앙"이라고 진단했다. 생산성만을 내세운 인간 중심의 사육 환경,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유전적 다양성 소실 등 인간이 초래한 자연생태계의 변화가 동물 전염병의 창궐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표면적으론 정부의 허술한 방역 대책이 이번 '구제역 재앙'의 원인이 됐지만, 우 교수는 "문제는 구제역 그 이후"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는 구제역이지만, 지금과 같은 생태계의 인위적 불균형이 계속된다면 앞으론 광우병·조류독감(AI)과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낳은 질병이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다.

구제역 사태를 시작으로 '질병의 사회문제화'에 대한 대비를 역설한 우희종 교수를 13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다음은 우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편집자>


"구제역 사태, 허술한 초동 방역이 낳은 인재"

프레시안 : 살처분 가축 수가 150만 두(13일 기준. 17일 188만 두)를 넘어섰다.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어떻게 보나.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우희종 :
일단 초동 방역에 실패했다. 지난해 11월 안동에서 최초 의심 신고가 나올 당시, 규정을 어기고 간이키트로만 검사해 음성 판정이 나오자 그냥 넘어갔다. 간이키트 검사는 급박한 상황에서 재빨리 구제역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참고자료일 뿐이다. 결국 최초 발생농가에 대한 오판으로 방역이 지연됐고, 그 사이 구제역이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구제역 사태는 '인재(人災)'였다.

여기에 정부가 살처분에만 의존했던 것 역시 구제역의 전국적인 창궐을 낳았다. 무엇보다 백신 접종 시기를 놓친 것은 분명히 정부에 책임이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나 확산 양태, 범위 등을 보면 결코 살처분으로 마무리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수의학 전문가들은 바로 파악이 가능했다. 그런데도 구제역이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나서야 백신 접종을 결정한 것은 분명 뒤늦은 감이 있었다. 질병 확산에 대한 다양한 방역 시나리오가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이다.

프레시안 : 구제역 발생 초기에 살처분과 백신을 병행했어야 한다고 보나?

우희종 :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구제역 발생 초기엔 백신을 쓰지않고 살처분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느 한 방법이 완전한 대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살처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굳이 백신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구제역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에선 신속하게 백신을 써야한다. 바이러스가 국지적 상황에 머물렀을 때에는 살처분이 유용하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황에선 효과적인 방역이 될 수 없다. 특히 한국이 미국처럼 땅덩이가 넓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백신에 대한 유연한 관점이 필요했다.

"정부, 방역 실패 책임 축산 농가·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하나"

프레시안 : 애초 정부는 백신 사용에 대한 여러 우려 지점을 제기했었다. 백신 접종 동물이 보균 동물(캐리어·carrier)이 돼 바이러스를 퍼트린다거나, 대만의 실패 사례가 거론됐었다.

우희종 : 캐리어 문제는 어느 백신에나 존재하는 문제점이다. 인간에게 쓰는 백신에도 그런 문제는 있다. 백신의 일반적인 문제를 마치 구제역 백신에만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백신 정책 실패를 변명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또 다른 가축 전염병인 오제스키병(Aujeszkys disease)의 경우 백신 접종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또 대만의 경우, 구제역을 막는데 실패한 것은 백신 사용 때문이 아니라 사후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대만은 살처분 가축에 대한 보상이 미비했고, 그래서 밀도축이 만연했다. 질병 발생 상황에 대한 여러 요인들을 삭제하고, 결과만 들며 백신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상황을 오도하는 것이다. 반대 사례가 영국과 일본이다. 그 두 나라 역시 백신을 사용했지만 초기에 잘 해결되지 않았나. 무엇보다 2001년 이후 경우에 따라 백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다.

초반에 정부가 백신 접종을 기피했던 것은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지위 유지 때문이었다.결국 경제 논리인데, 지금 상황만 봐도 연간 육류 수출액 20억 원 보다 살처분 비용 1조2000억 원이 훨씬 크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돼지고기를 수출해서 이득을 보는 곳이 어디겠나. 말단 생산자들이 아니라 대형 육류 기업들이다. 청정국 지위는 솔직히 말하면 기업가들의 논리일 뿐, 육류 수입국인 우리의 상황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사태 당시에도 느꼈지만, 정부가 자신의 실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의 사례만 들며 변명하는 행태는 좀 중단했으면 좋겠다. 성숙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하겠다는 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가장 어이없는 점은 정부가 이번 구제역 사태의 책임을 축산 농가와 이주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정부는 바이러스의 유전자형 검사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이번 구제역 사태의 책임을 베트남을 방문한 안동 축사 농가 탓으로 돌렸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그렇다. 누구보다 조심스러워야 할 정부가 사회적 편견과 분열을 앞장서서 조장하고 있는 꼴이다. 벌써부터 축산농가에선 이주노동자 해고가 잇따르고 있는데, 설사 이들에 의해 바이러스가 전파된다고 해도 그 책임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에게 있는 거다. 그걸 사회적 약자에게 돌리나. 너무나 비열한 짓이다.

프레시안 : 대규모 살처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의 방식을 중단해야 하나.

우희종 : 앞서 말했듯이 살처분은 구제역 발생 초반엔 필요하나, 지금과 같은 전국적 상황에선 효과적이지 않다.

특히 전부 매몰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영국의 경우 광우병이 창궐했을 때 소 200만 마리를 대부분 소각했다. 영국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결코 국토가 넓은 나라가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땅덩이가 넓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한국처럼 인간과 동물이 함께 밀집해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매몰 처분하면 환경오염 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매몰 지역에서 핏물 섞인 침출수가 나오고, 지하수 오염까지 우려되는데, 이대로 가면 또 다른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쟁이 끝나면 전염병이 유행한다고 하는데, 부패한 사체에서 미생물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살처분 된 가축 매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구제역이지만, 문제는 그 이후"

프레시안 : 예전에도 구제역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상황이 심각한 것은 처음이다. 구제역, AI, 돼지인플루엔자 등 가축 전염병의 발생 빈도도 최근들어 급격히 늘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프레시안(최형락)
우희종 :
사실 질병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사람, 동물과 함께 미생물 역시 생태계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질병은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병이 왜 생겼냐고 묻는 건 인간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린, 상당히 오만한 질문일 수 있다.

질병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이유 뿐 아니라 사람의 생활 방식, 사회문화적 요소와 깊은 관계를 맺는데, 지금과 같은 생태계의 불균형과 인간중심적인 사육 환경은 앞으로 더 많은 질병의 창궐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인구의 증가에 따른 육류 소비의 증가가 지금의 밀집 사육 환경을 낳았고, 신자유주의적인 과도한 생산성 추구가 품종 개량을 통한 유전자 다양성의 소실을 초래했다. 일단 바이러스가 돌면 무서운 속도로 전파될 수밖에 없는 조건 자체를 만든 셈이다.

거기에 더해 인간의 과도한 위생 의식이 가축에 대한 항생제 남용으로 이어졌고, 결국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바이러스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생태계에 연동돼 있는데, 그 균형이 깨진 셈이다.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지구온난화와 같은 생태계 변화도 가축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 생태계는 온도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종다양성이 줄어들면고, 질병의 종간 장벽(species-barrier)을 뛰어넘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 낳은 질병, 인간을 공격한다"

프레시안 : 동물 질병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인가?

우희종 : 그렇다. 지금은 구제역이지만, 더 큰 문제는 구제역 그 이후다. 더 우려되는 것은 광우병, 에이즈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人獸共通傳染病·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걸리는 전염병)이다.

지난 30년 간 새로 나타나는 전염병의 75%가 인수공통전염병이었다. 인간이 만든 환경의 변화 내지 생활습관의 변화는 동물의 질병이 종간 장벽을 넘어 우리에게 오게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종간 장벽을 뛰어넘은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인체가 이 새로운 병원체에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구제역과 AI가 유행하지만, 지금의 생태적 불균형 상황이 지속된다면 또 다른 광우병, 또 다른 에이즈가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가축 사육 환경이나 정부의 방역 대책 등도 중요하지만, 아주 밑바닥부터 본다면 사람들이 인간, 동물, 미생물 모두가 생태계의 대등한 구성원이란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프레시안(최형락)

"가축 질병은 식량 문제도 위협…'질병의 사회문제화' 대비를"

프레시안 : 장기적으로 가축 질병에 대한 정부 대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우희종 : 가축 질병, 더 나아가 인수공통전염병에 대비하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일단 축산과 가축 질병 분야를 총괄하는 농림수산식품부 내의 직제 개편이 필요하다. 사실 정부 부처 내에서 수의는 축산의 보조 수단에 불과한 실정이다. 수의직 자체를 가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온 경향도 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고 있다. 가축 질병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식량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당장 구제역만 해도 사회적 재난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수의과학검역원을 '수의과학검역청'으로 격상해 국가적 방역 체계를 구축할 필요성 있다.

광우병, 에이즈 등 인수공통전염병이 서구사회에서 확산된 것이 1980년대고, 이제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질병의 사회문제화'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국가가 길게 보고 대비해야 한다. 구제역 이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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