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다니면 성적 오른다고? '아깝다 학원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아깝다 학원비!> 플래시몹 하던 날

11월 30일 오후 5시. 서울대 입구역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우루루 지하철에 올라 탔다. 어른들이 대다수였지만 어린 자녀를 동반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 손에는 모두 주황색 책이 들려 있었다. 자리를 앉거나 서서 이들은 모두 책을 펴 들었다. 책읽기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것)이었다. 책 표지에는 '아깝다 학원비!'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시민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고,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겐 소책자가 건네졌다. 이렇게 지하철 2호선을 잠실 쪽으로 한 바퀴 돌아 홍대입구역에서 내렸다. 2호선을 택한 건 부모와 학생이 흔히 원하는 학교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지하철 2호선에서 책홍보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경희)
이어 오후 7시. 홍대입구역에서 내린 이들은 근처 가톨릭청년회관 지하 1층 CY씨어터로 우루루 몰려갔다. 특별한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여느 기념회와는 달리 공식 명칭도 '출판 페스티벌'이다.

풍물패 '살판'의 신명 나는 공연으로 시작된 이날 공연에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연극팀은 '뭐! 학원비가 아깝다고?'라는 극을 올렸고, 회원들의 아이들은 '국악가요' 등을 선보였다.

70만 부 이상 배포된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 단행본으로 나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플래시몹에 페스티벌을 벌이기까지.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바로 지난 2008년 6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설립된 이후 공적을 모아 놓은 <아깝다 학원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지음, 비아북 펴냄)가 그 주인공이다. 조금은 특별한 행사를 연 것도 이 단행본이 단순히 책 한 권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깝다 학원비!>는 단행본으로 발간되기 이전 소책자로 이미 큰 인기를 끌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윤지희 공동대표는 "1년 3개월 동안 30여 차례 토론회와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학부모들이 잘 몰랐던 학원의 문제점 등을 담은 '아깝다 학원비!' 소책자를 만들어 70만 부 이상 배포했다"고 밝혔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교육감으로 출마하기도 했던 명지전문대 남지희 교수 역시 "서울시 교육청에 있을 당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으로부터 1000부를 받아 교육청에 홈페이지에 받기를 희망하는 사람을 모집했었는 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라고 회고했다.

윤 공동대표는 "이 책은 단순히 책 한 권이 아닌 운동의 하나로 오늘 이 자리는 이런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뜻을 공유하고 확산하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학원 강사도 우려하는 '사교육 과잉' 사회

학부모들은 사교육의 지나친 의존도에 불안해하면서도 쉽게 끊을 수 없는 불안한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다. 소책자의 인기는 이런 불안감의 반증이다. 이날 플래시몹 행사와 출판 페스티벌에 참여한 김정미(37) 씨 역시 이런 문제 의식에서 시작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이 됐다.

두 딸의 엄마이자 실제 자신이 독서 선생님으로서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김 씨는 "꼭 필요한 것만 해야 함에도 요즘은 지나치게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 같다"며 "사교육이 과잉된 것이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 씨도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거의 시키고 있지 않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이런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완해 준다고 생각해 회원이 됐다.

▲ <아깝다 학원비!> 출판 페스티벌이 지난 30일 열렸다. ⓒ프레시안(이경희)

<아깝다 학원비!>는 사교육으로 무조건 성적이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의심 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과 수기를 담고 있다. 흔히 학부모들이 가질 수 있는 의문들 10가지가 주요 꼭지로 실렸다.

예를 들어 "학원에 보냈더니 성적이 오르던데요?"라고 묻는 학부모들에겐 전직 학원 강사 J씨의 고백과 이범 전 메가스터디 강사, 현직 교사 등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원에 의존하는 학생은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아요. 이른바 '학원발'로 성적을 유지하던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교에서는 성적이 추락하는 경우가 많죠. 학원에 의존하는 학생들은 학원 숙제에 치여서 스스로 복습하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이범)

그밖에 이 책에는 박재원 소장(비상 공부연구소), 조남호 대표(스터디코드) 등 22명의 교육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엄마는 93점이 그렇게 좋아?"

그렇다면 이런 전문가들의 말만 믿고 학원을 줄였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은 학원을 줄이는 게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기보단 성적에 얽매여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하고 있다.

수기를 써 최우수상을 받은 경기도 성남의 김선희 교사는 중간고사에서 수학을 93점 맞아온 아이에게 진심으로 칭찬하고 기뻐해 줬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는 93점이 그렇게 좋아?"라며 "난 그렇게 잘한 것 같지 않다"고 오히려 풀이 죽어 있었다. 며칠 뒤 김 씨는 아이가 속한 학년의 수학 평균이 95점이란 말을 들었다. 친구들 성적에 비추어 자신의 점수를 상대적으로 평가해 실망했던 것이다.

김 씨는 수기에서 "엄마가 바른 의식을 가지려 해도 아이들이 속한 세상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오롯이 그들의 몫인가 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사교육 문제는 단시간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소책자 800만부 배포가 목표이다. ⓒ프레시안(이경희)

그래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 책이 널리 보급되어 사교육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를 희망한다. 송인수 공동대표는 앞으로 이 책이 많이 팔려 인세가 생긴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 놨다.

첫 번째 운동은 70만 부가 배포된 소책자를 800만 학부모에게 모두 배포하는 것이다. 또한 사교육 없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문패 달기'를 1만 가정이 실행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 밖에 목표는 △우습다 학벌! 국민운동 △학교·학원·종교기관 현수막 내리기 운동(무슨 대학 합격 등) △진로정보 공유 운동 △사업비 투명한 관리와 공개이다.

이제 2쇄를 찍어내는 책에서 많은 인세를 미리 예상하는 것이 어쩌면 섣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구체적인 구상을 가지고 진정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나라는 한해 사교육비 규모가 21조6000억 원(2009년 조사·통계청)에 이른다. 하지만 이 책의 광고 문구에 따르면 이 책은 '읽는 즉시 사교육비가 절약되는 희한한 책'이라고 하니 앞으로 사교육 없이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학원가의 항의와 영업 방해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협박도 수차례 받았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들은 그러나, 앞으로 희망을 가지고 운동을 확장해 갈 예정이다. 그 든든한 미래는 온라인 회원 1만3000명과 매달 1만 원 이상 회비를 내는 1200여 명의 후원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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