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회를 맞은 화엄제가 지난 23일 지리산 화엄사에서 열렸다. 세계적인 영성음악가들이 모여 현대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들려준지도 어느덧 5년. 2010 화엄제는 '길눈 뜨다(Wisdom's Eyes)'를 주제로, 종교를 초월한 영성 음악이 다채롭게 소개됐다. 사진작가 이창수 씨가 2010 화엄제 관람기를 보내왔다. <편집자>
'모든 법은 인연으로 생하고, 모든 법은 인연으로 멸한다.'
깨닫고 나니 그렇다한다. 깊은 계곡의 돌덩이가 바다의 모래알이 되듯 마음의 돌을 부수어 모래알로 만들고, 그 모래알마저 부수어 그 마음을 비우라했다. 몇 억 광년의 별은 사라졌어도 별빛은 우주를 꿰뚫고 '한소리'를 전한다. 길을 걸어 털어 낸 마음에 '한소리'를 담는다. 길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길을 얻어야한다. 어린 선재는 꿈이라했다.
법고와 범종, 목어와 운판의 두드림으로 세상을 깨웠다. '각황전'에서 금강경을 외던 스님들이 태평소 소리를 앞세워 말없이 걸으며 '길눈뜨다'를 알렸다. 가을바람 따라 흘렀다.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구름이 바람을 탔다. 대웅전 용마루 끝에서 선정에 들었던 까마귀가 그 바람을 타고 날았다.
| ▲ 스님들의 묵언 행진. ⓒ이창수 |
바람 따라 소리도, 구름도, 까마귀도 제 길을 갔다. 빛바랜 단청을 시간의 무게로 간직한 각황전이 배경이고, 석등과 오층석탑 그리고 대웅전과 크고 작은 전각들을 길벗삼아 아티스트와 관객들이 일제히 반야심경을 읊는다. 웅장한 울림이 절집에 가득차고, 뭉클한 마음이 어깨의 떨림으로 이어진다. 갇혔던, 혹은 닫혔던 영성이 들숨과 날숨으로 깨어난다. '길눈뜨다'의 첫 발걸음이다.
인도와 남미에서 영적체험이 가득한 '실비아 나카치'는 오랜 영적체험으로 얻은 환희의 표정으로 노래를 한다. 그녀의 입소리는 인간이 갖고 있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품은 채 퍼졌다. 그녀는 인간을 노래했다.
기교를 깎아낸 무덤덤함으로 첼로를 켜는 마이클 크냅. 묵직한 몸을 갖은 그는 음을 찾았다. 너른 몽골초원에서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그리고 가장 낮은 소리를 가장 깊은 뱃속에서 끌어올린 후미 아티스트, 아리옹볼뜨 다쉬도르즈.(이름도 길다) 그는 초원을 한 번의 날개 짓으로 가르는 대붕을 노래했다.
| ▲ 몽골의 후미 노래와 마두금 연주. ⓒ이창수 |
두 줄 현, 마두금에서 애달픔을 뽑아내는 바트사이항 출템. 그는 게르를 짊어지고 초원을 지나는 낙타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편 언덕에서 저편 언덕으로 향하는 울부짖음의 몸짓.
이애주, 그녀는 몸짓으로 세상을 노래했다. 박순아의 가야금 독주, 이어지는 이아람의 대금과 박우재의 거문고, 원일의 두드림은 쉽게 와 닿는 친숙한 어울림이다. 초롱초롱한 눈을 살포시 감으며 빙긋 웃는 젊은 여인의 버선발소리였다. 이 모두를 뒤에서 씨실과 날실로 엮어낸 박치음. 그의 소란스런 꿈이 자연과 삶과 예술의 어울림으로 가을을 갈무리했다.
| ▲ 이애주의 영가무도. 바람곶의 음악. ⓒ이창수 |
| ▲ 실비아 니카치의 영가. ⓒ이창수 |
흰 연꽃과 붉은 연꽃이 객석을 돌았다. 깨달음의 인연이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기쁨이고 행복이다. 법열이다. 바람을 타고 오른 까마귀가 한 점되어 사라졌다. 빈 하늘을 빈 마음으로 걷는다. 길눈뜨다.
| ▲ 화엄사 주지 스님의 게송. ⓒ이창수 |
| ▲ 이애주, 연꽃을 객석으로 전하다. ⓒ이창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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