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낙향할 때 하더라도…"

[송기호 칼럼] <1> 지지자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그동안 <프레시안> 지면을 통해서 날카로운 분석과 해설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진실을 알렸던 송기호 변호사가 새해부터 한미 FTA를 비롯한 국내외 경제, 통상, 농업, 식품 현안을 알기 쉽게 분석, 해설하는 연재로 독자를 찾아갑니다. '송기호 칼럼'은 격주를 원칙으로 하되 현안이 있을 경우 실시간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예정입니다.

송기호 변호사는 현재 수륜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농업법, 식품법, 통상법 분야의 법률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미 FTA 대책위원장을 맡아, 지난 2년간 한미 FTA의 진실을 알리고 정부와의 관련 소송을 도맡아 왔습니다. 최근 조선대 법대 겸임교수를 맡아 앞으로는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을 예정입니다. <편집자>


일본에는 '일미 FTA 연구회'가 있다. 이 나라 재계, 관계, 학계의 자유무역론자들의 모임으로 하야시 료조 도쿄대 교수가 회장이다. 이 모임은 한미 FTA 타결 직전, 이렇게 평가했다.

"이 협상은 한국 측이 일방적으로 제의하였고, 미국은 한국과 FTA를 체결할 특별한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 한국이 열심히 접근하자, 미국은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이냐고 물었다. '농업을 개방하겠다는 것인가?'. 협상은 완전히 일방적이었다." (<일미 FTA 전략>, 57쪽)

그렇다. 일방적이었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제대로 얻은 것은 없다. 방문 비자 면제? 그것은 FT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국인에게 진짜 필요한 비자는 미국 취직에 필수적인 '취업 비자'이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보다 더 많은 유학생을 미국으로 보내는 나라가 미국과 FTA를 하면서 전문직 취업 비자 쿼터조차 얻지 못했다. 민변이 외교통상부에 소송까지 해서 어렵게 구한 자료를 보았더니, 취업 비자는 한국이 마지막에 미국에 제시한 "우리 측 관심 사항"에 빠져 있었다. 그 자리를 엉뚱하게도 방문 비자 면제가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 시장 선점?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악명 높은 미국의 반덤핑 무역 장벽의 대표적인 피해국이 이 장벽 하나 넘지 못했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지적하였듯이, 지금의 한미 FTA가 다시 개정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민변 소송에서,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은 "한미 FTA의 내용은 국회의원에게도 3급 비밀이었다"고 밝혔다. 그래놓고 청와대는 지난 해 9월에, 한미 FTA 동의안을 서둘러 국회에 제출했다. 그 까닭은 구티에레즈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 달,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연설에서 칭찬한 것과는 달리, 결코 국회의원 교육용("educate")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선용이었다. 만일 이해찬 전 총리나 유시민 전 장관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면, 이들은 선거에서 한미 FTA를 침이 마르도록 활용했을 것이다. 유 전 장관의 남북 FTA 대선 공약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FTA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살아 있다. 이제 이 괴물은 이명박 정권에 충성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재벌 독식 경제, 지대 추구 경제를 성실히 지켜 줄 것이다.
▲ 송기호 변호사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지지자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전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철회"라고 주장한다. ⓒ프레시안

낙향 준비 중이라는 현직 대통령이 한미 FTA는 먹고 사는 문제라고 말한 것은 절반은 옳다. 문제는 그가 말하지 않는 나머지 절반이다. 한미 FTA가 되면, 우리가 먹고 사는 과정에서 맺는 관계의 성격이 달라진다. 무너지고 있는 미국 경제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짜 경제의 수혜자들은 그 누구도 한미 FTA 광고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한미 FTA가 내부용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규제 폐지 이데올로기와 한미 FTA 앞에, 한국의 공익 영역은 돈벌이 산업화로 전락할 것이다. 공익을 위한 국가의 정당한 규제는 철수를 강요당할 것이다.

국민의 대표들이 만든 법률이 단 한 명의 투자자에 의해서도 뉴욕의 중재 변호사들 앞으로 끌려가 국제법의 이름으로 재판받는 한미 FTA에서는, 타인을 배려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돈이 없는 자들은 그저 경쟁의 낙오자들일 뿐이다. 돈과 자가용이 없어 피난을 가지 못한 자들을 기다리던 것은 굶주림과 약탈, 공포 뿐 이었던 뉴올리언스의 비극은 더 이상 미국의 사건이 아닐 것이다.

한미 FTA의 용도는 개헌용이다. 한미 FTA 고속도로의 최종 목적지는 미국 시장이 아니라 개헌이다. 이미 자칭 뉴라이트들은 헌법의 경제 민주화 조항 폐지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한미 FTA는 경제 민주화 헌법 조항을 낙오병으로 낙인찍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낙향 채비를 하는 현직 대통령께 정중히 권한다. FTA를 이명박 정권에 선사하고 정녕 어디로 가시려는가? 안 된다. 판사였던 그대는 적어도 한미 FTA는 '입법 사항', 곧 국회의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에 관한 조약이기 때문에 국회에 동의안을 제출한 사정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대의 정부는 2500쪽의 한미 FTA 중에서 몇 조 몇 항이 '입법 사항'인지 표시조차 하지 않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는가? '입법 사항'과 '비입법 사항'이 뒤범벅이 된 동의안을 국회 본회의 의결 안건으로 제출한 것은 국회법 위반이다(제98조의 2).

현직 대통령은 이회창 씨 대신 자신을 뽑아 준 지지자 덕분에 청와대에서 열과 성을 다해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지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주시기를 기대한다. 낙향하시기 전에, 국회법 제90조 제2항의 절차를 밟아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철회하시기 바란다. 더 중요한 낙향 채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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