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 전 FDA 연구원 "식약청, 어디다 FDA 규정 갖다대나"**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은 23일 식약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식약청이 에이즈 오염 혈액이 원료에 섞인 혈액제제를 파기하지 않고 그대로 유통시킨 것에 대해 "제약회사의 제조비용을 감안해준 것으로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시라고 볼 수 없다"며 식약청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고경화 의원은 특히 이형기 미국 피츠버그 의과대학 교수가 혈액제제의 감염성 질환 오염 가능성에 관해 작성한 분석보고서를 공개했다. 이형기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객원 연구원을 역임해 선진국의 혈액제제 관리실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형기 교수는 "식약청은 국내 혈액제제의 안전성 관리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매우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불활화 공정의 도입으로 바이러스 오염 혈액이 일부 공정에 투입됐더라도 제품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며 "이는 혈액제제 생산과 관련해서는 감염성 질환의 전파를 예방하기 위해 원료수급부터 생산공정 전반에 걸쳐 국제적으로 공인된 제조공정 규정(GMP)이 확립돼야 하고 그 운용과정이 실사를 통해 검증돼야 한다는 기본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적십자사-제조업체, 혈액제제 바이러스 오염 확인 제대로 안 해"**
실제로 혈액제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우리나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적인 혈액제제 제조업체인 박스터와 사노피-아벤티스의 경우에는 본격적인 혈액제제 공정이 시작되기 전에 두 차례에 걸쳐 핵산증폭검사(NAT)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는 1000명 이상의 혈액이 섞이는 공정에 대해서는 사전에 500명 미만에 해당하는 원료(mini-pool)만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해 오염혈액이 검출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000명 이상의 혈액이 섞인 다음에는 설사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이 들어있더라도 그것을 검출해낼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적십자사 혈장분획센터의 경우에는 1000명 이상의 혈액이 섞여 있더라도 따로 작은 규모의 원료표본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검사 역시 핵산증폭검사보다 그 판별이 부정확한 효소면역검사(EIA)만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녹십자와 같은 국내 혈액제제 제조업체의 경우에도 적십자가사 공급하는 혈장에 대해서는 1000명 이상의 혈액이 섞여 있더라도 작은 규모의 원료를 대상으로 핵산증폭검사를 따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식약청, 제조업체 실사도 제대로 안 해"**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혈액제제의 원료 수급부터 생산공정 전반에 걸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큰 수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바이러스 불활화 공정도 제대로 된 제조공정이 없다면 헛일일 수 있는 것이다.
이형기 교수는 "혈액제제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제대로 된 제조공정을 따르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미국 FDA는 1990년대 이후 혈액을 취급하는 모든 산업체에 대해 적어도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인 실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혈액제제 제조업체인 녹십자에 대해 2001년에 단 한번 국제적으로 공인된 제조공정 규정이 지켜지고 있는지 실사를 했을 뿐이다.
유럽연합(EU)의 FDA라 할 수 있는 유럽약물평가위원회(EMEA)는 혈액제제 제조업체가 반드시 적절한 방법으로 바이러스 오염 유무를 확인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설사 헌혈자 검체에 대한 최초 바이러스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검사 당시의 여러가지 오류의 가능성이나 다른 혈장과 섞는 과정에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바이러스 오염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제조업체가 자체적으로 이중, 삼중의 대비책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식약청이 올해 1월 입안해 예고한 규정을 보면 원료를 공급받는 경우 적십자사의 성적서로 갈음하도록 해 혈액제제 제조업체의 자체 재검사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국제보건기구(WHO)도 '혈액제제의 최종 완제품의 방출은 원료에 대한 검사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가 얻어졌을 경우에 한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먼 조치다.
***"기간 규정-바이러스 검사 항목도 국제기준에 한참 미달"**
국내 혈액제제 제조 수준이 선진국 수준이라는 식약청의 주장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박스터와 같은 제조업체는 원료 혈장을 제조공정에 투입하기 전에 반드시 채혈일로부터 60일을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60-days inventory hold). 잠복기(window period) 등의 문제로 바이러스를 미처 검출하지 못한 경우에 나중에라도 위험한 혈액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최근까지 30일간만 보관을 했고 제조업체도 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WHO는 진작부터 에이즈(HIV), B형 간염(HBV), C형 간염(HCV), A형 간염(HAV) 등에 대한 NAT 검사법에 대한 표준안을 마련하고 각국의 규제기관 및 제조업체가 이를 따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박스터와 같은 제조업체들은 이들 바이러스에 대한 검사를 이미 실시하고 있지만 적십자사가 올해부터 시작한 NAT 검사의 경우에는 에이즈, C형 간염에 대한 검사만 하고 있다.
공급된 혈장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사실이 밝혀지면 미국에서는 검사기관에서 직접 제조업체에 통보해 생산공정에 원료가 투입하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적십자사가 이를 식약청에 보고하면 나중에 식약청이 제조업체에 통보를 하도록 돼 있다. 늑장 대응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국민건강 보장' 뒷전 식약청 문제점 또 드러나"**
이형기 교수는 보고서의 결론에서 "이번 일 역시 식약청이 '국민의 건강을 보장한다'는 사명을 분명히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며 "식약청이 '환자' 중심으로 업무와 조직을 재편하지 않는다면 혈액제제를 둘러싼 파문은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경화 의원도 이날 예정된 식약청 질의에서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할 예정이다. 고경화 의원은 "국내 혈액제제 생산공정이 선진국 수준이라는 식약청의 해명은 거짓말"이라며 "우리나라의 혈액 안전관리 수준과 혈액제제의 제조 및 관리 수준이 선진국 수준에 이를 때까지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지침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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