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책임 없느냐" 되레 따지는 옥시RB 대표

가습기살균제 청문회 주요 핵심 증인 대거 불출석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 보다는 정부의 안전 기준 미흡이 참사를 불러왔다는 식으로 발언해 논란이 됐다.

전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이어 28일 서울시청에서는 옥시PB와 LG생활건강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특조위는 이날 오전 △옥시RB 본사 임직원 개입 여부 △LG생활건강의 119가습기세균제거 개발 경위 및 원료 선정 시 흡입독성 등 안전성 검토 미흡 문제 등을 청문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박동석 옥시PB 대표이사와 박헌영 LG생활건강 대외협력부문 상무를 포함한 네 명의 증인이 참석했다.

옥시RB의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은 전체 가습기살균제 판매량 중 5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팔린 제품이다. LG생활건강의 '119 가습기 세균제거'도 110만 개 이상이 팔린 제품이다.

옥시RB 측 증인으로 출석한 박동석 옥시RB 대표이사는 "옥시RB는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사과하고 책임을 인정했으며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며 "1994년 유공, 지금의 SK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를 최초로 개발하고 판매했을 때나 1996년 옥시가 유사제품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정부기관에서 보다 안전한 기준을 만들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또 "옥시RB는 2016년에 늦었지만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절차에 들어갔다"며 "정부기관이나 원료물질 공급에 책임이 있는 SK케미칼 등 관련 제조업체들이 공동배상을 노력했더라면 지금처럼 피해자들이 고통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방청석에서는 "옥시가 할 소리는 아니다"는 등의 항의가 터져나왔다.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옥시RB가 2016년 4월에 사과를 하긴 했다"면서도 "피해 신고자의 절반 이상이 옥시RB의 제품을 사용하고 그중 배상이 이뤄진 건 극히 일부"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부위원장이 "기존의 대책보다 더 전향적인 피해 대책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박 대표이사는 "이런 복잡한 문제에 저희 회사가 단독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건 어렵다"고 답을 피했다.

▲28일 서울시청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또 불참한 핵심증인

청문위원들은 옥시RB가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 여부를 알고도 판매를 지속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 그러나 핵심 증인인 거라브 제인 전 옥시RB 대표이사 등이 대거 불참하면서 의혹은 말끔하게 해소되지 못했다.

'거라브 제인'이라는 이름은 옥시RB 가습기살균제 참사 곳곳에서 등장한다. 거라브 제인 전 옥시RB 대표이사는 문제가 된 '옥시싹싹 뉴 가습기 당번'이 판매되던 시기에 옥시RB 마케팅 디렉터를 거쳐 대표이사를 지낸 인물이다. 옥시RB가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 현재 외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2016년 검찰조사와 국회 국정조사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최예용 부위원장은 2005년도 옥시RB 내부 이메일을 공개했다. 해당 이메일에는 옥시RB 자체 연구소 측에서 가습기살균제의 라벨에 표기된 '아이에게도 안심'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살균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안심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메일에는 이외에도 "기존 라벨에 있었던 '아이에게도 안심' 문구를 빼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일 수 있으니 마케팅 디렉터인 프레데릭 몰리에게 보고해야 한다", "마케팅 디렉터가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에 (퍼레데릭 몰리가 후임자인) 거라브 제인에게 라벨을 바꾸는 과정에 대해 연구소 쪽에서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살균성분의 안전성에 문제제기가 있었으며 적어도 마케팅 디렉터에게까지 그 사실이 보고됐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최 부위원장은 옥시RB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도 추가로 공개했다. 2008년 KBS <이영돈의 소비자고발>이 가습기 살균제 안전성을 취재하기 시작하자 "방송국에서 인체에 안전한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테스트 자료 등 검증할 수 있는 자료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한다)", "아주 오래 전에 흡입독성 관련 외부 시험기관에 의뢰한 자료가 있으나 그 후에 주요 성분이 바뀌어서 현재 제품에 대한 인체안전성 자료는 없다"는 내용을 주고받는다. 또 "이정도 사항이면 당연히 대표이사에게까지 보고되는 내용이다", "(마케팅) 디렉터 거라브 제인이 보고했을 것"이라는 내용도 공개됐다.

최 부위원장은 "안전성 자료가 전혀 없다, 문제가 있다, 외부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런 사실들을 대표이사까지 다 알고 있다는 것 아니냐"며 거라브 제인 전 옥시RB 대표이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거라브 제인의 이름은 이후에도 계속 등장한다. 2011년 10월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가습기 이슈에 대해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계획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 변호사를 한국에 불러 오겠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서울대 조모 교수와 옥시RB 자문계약서에서도 "우리 제품이 인간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작전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 계약서는 거라브 제인의 이름으로 계약됐다.

한국의 수사에는 불응하는 외국인 전 대표, 본사에서는 승승장구?

이처럼 가습기살균체 참사의 핵심 증인인 거라브 제인은 2016년 검찰조사와 국회 국정조사 출석 요구에 모두 불응했다. 2012년 11월 1일 이후에는 호주RB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를 담당하는 고위 부사장 및 지역이사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2019년 8월에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서울 중앙지검 출석요구 2회에 불응하면서 체포영장이 발부돼 현지 지명수배 상태로 기소중지상태에 있다. 당시 우리 정부가 인도 정부에 거라브 제인에 대해 범죄인 인도요청을 했지만 인도 정부는 거절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인터폴에 적색수배상태다.

"본사에서는 거라브 제인이 한국에서 기소중지상태이고 인터폴에 적색수배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최 부위원장의 질문에 박 대표이사는 "개인적인 형사사건이기 때문에 회사가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LG생활건강에는 BKC라는 물질을 사용하면서 흡입독성 실험을 하지 않은 부분을 추궁했다. LG생활건강은 BKC와 테고51을 혼합해 만든 '119 가습기 세균제거'를 1997년부터 2003년까지 110만 개 이상을 판매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2011년 조사 대상에서 제외돼 2016년에야 조사가 시작됐다. 몇 명의 피해자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현재 '119 가습기 세균제거제'를 단독으로 사용한 피해 신고자는 두 명이고 이중 한 명이 폐질환으로 피해구제 대상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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