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개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2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 주최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 진상규명 정부 분야 청문회에서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9월 중으로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에 대한 부분 입법 특별법을 제출할 예정"이라며 "가습기살균제 제5조와 시행령 등을 개정해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박 차관은 "법상의 개연성, 인과관계 등의 용어를 삭제할 것"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확인되고 그에 따른 건강 악화가 확인되면 피해를 인정한다'는 식의 문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해결 방식, 근본적인 성찰 필요"
현행 가습기살균제법 5조는 "생명 또는 건강상의 피해가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것으로 볼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 해당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생명 또는 건강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되어 있다. '개연성'은 절대적으로 그렇지는 않지만 확률이 높다고 해석되는 말이다. 환경성 질환의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환경성 질환과 관련된 법안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문제는 가습기살균제법 시행령이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를 "역학조사 등 관련 연구 결과 가습기 살균제 노출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로 적고 있다는 것이다. 특조위는 시행령에 따르면 확률적 가능성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 자체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 구제자의 범위가 협소해진다고 주장해왔다.
환경부 개정안은 개연성이나 인과관계와 같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법적 해석에 따른 논란을 없애고, 피해 구제자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신속한 구제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피해 질환을 인정해주는 기준을 완화하고 피해자를 단계별로 구분하는 기준을 철폐하는 등 피해자들을 향한 지원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은 피해자는 1단계에서 4단계까지 구분되고, 피해가 인정되는 증상은 폐질환·천식·독성 간염·폐렴·태아 피해·기관지확장증 등으로 한정돼 있다.
법적으로 피해 구제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황필규 청문위원은 "환경부 개정안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책임과 무관한 지원일 뿐이라는 게 과연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종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청문 과정에서 황 위원은 "(법이 개정되더라도) 국가나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각자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냐"고 질문했고, 박 차관은 "그렇다. (법적인) 인과관계 규명 문제는 이 법에서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공정위와 기업 간 유착 정황에 대한 질의도
이날 정부 분야 청문회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016년 가습기살균제 판매 제조사의 광고 표시법 위반 혐의 조사 당시 기업과 유착해 봐주기를 한 것 아니냐는 정황이 제시되기도 했다.
애경, SK케미칼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사는 2016년 5월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이라고 제품에 표시하고, 비슷한 취지의 광고형 기사를 내 허위 광고 및 표시를 했다는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됐다. 광고표시법에 대해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는 2016년 8월 "가습기 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법성을 판단하지 않고 심의 절차를 종결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유로 판매가 종료된 2011년 8월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최예용 청문위원(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2016년 공정위 조사 당시 주심이었던 김성하 전 공정위 상임위원이 신고자는 만나지 않고 기업 관계자만 다섯 차례 만났다며 기업과 공정위 간 유착 정황을 추궁했다. 최 위원은 당시 김 위원과 만난 가습기 제조 판매사 관계자 중 5명이 김 위원과 같은 시기 공정위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 위원은 "법적으로 정해진 사건 청취 절차였다"며 "신고자도 신청했으면 만났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업과 공정위의 유착 정황에 대해 증인으로 출석한 유선주 전 공정위 심판관리관은 "최 위원이 제시한 내용은 2018년 6월 검찰 조사 당시 언론과 국회를 통해 알게 됐지만, 저는 공정위에 가자마자 퇴직자, 로펌과 정보가 왔다 갔다 하고 밥도 먹고 직원처럼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을 봤다"며 "김 위원은 공식 절차라고 하는데 비공식 불법 관행에 해당하며 내부에서도 쉬쉬하며 했다"고 증언했다.
23일 기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접수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총 6509명이며 이중 1431명이 사망했다. 특조위가 주최한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청문회는 28일에도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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