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애경, '가습기 참사' 입 맞춰 대응했다"

사참위, 27일부터 이틀간 진상규명 청문회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해기업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진상조사에 부적절하게 대응하고 피해구제법 입법을 방해한 정황이 드러났다.

27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가 주최하고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 규명 청문회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해 기업인 SK 케미칼(전 유공)과 애경산업이 협의체를 구성해 전방위적으로 대응한 정황이 나왔다. 최예용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관련 정황이 담긴 애경산업 내부 회의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 가습기살균제참사진상규명청문회가 8월 27일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프레시안(최형락)

"애경과 SK케미칼 현안 논의했다"

최 부위원장이 공개한 '주간업무계획'은 2017년 10월경 애경산업 법무팀이 작성한 것으로, 애경산업 법무팀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그해 10월 18일 SK케미칼과 현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날 참석한 비공개 증인은 "당시 주간보고를 받는 담당 임원은 양성진 당시 전무"라고 증언했다.

양 당시 전무는 지난 7월,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증거 인멸 및 은닉 실행을 총괄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이사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최 부위원장이 공개한 '2018년 10월 19일 1차 회의 자료'를 보면 '형사 관련 모니터링'이라는 소제목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새로 부임한 검찰의 형사 2부 박○○ 부장검사는 공정위로부터 자료를 받은 적은 없고 당장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다고 함', '또 살인죄 등의 명백한 죄가 성립되지 않은 이상 무혐의로 종결하고 나머지 부분은 환경부의 실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로 처리할 예정'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검찰 내부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해당 회의록에는 환경부의 실험에 관한 SK케미칼 측의 발언도 기록돼 있다. '85배 농도까지는 폐손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고 100배로 농도를 올리니 증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쥐가 사망했다고 함'이라는 문구를 두고 최 부위원장은 "환경부가 진행하던 CMIT/MIT 흡입 노출 실험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최 부위원장은 "해당 실험은 2017년 12월에 끝나서 2018년 3월에 최종보고서가 공개되는데 2017년 10월에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환경부 공무원들로부터 (실험에 관한 보고를) 받은 게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관련해서 증인으로 참석한 양정일 SK케미칼 법무실장은 "(공무원들로부터) 따로 받은 건 없다"며 "여러 자료를 취합해서 그런 결론을 내린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가습기특별법 도입 지연하려 한 정황도

가습기특별법 도입을 지연하려 시도한 정황도 기록돼 있었다. 최 부위원장은 "같은 회의록에는 '현재 김앤장에 개정안 내용을 비판한 의견서 작성을 요청한 상태', '야당 측 의원에게 적어도 올해 안에는 법률 통과되지 않도록 지연시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고', 'SK케미칼 측이 원보이스 낼 수 있도록 김앤장 의견서 공유 요청', '일부 보수매체 선정해 (가습기특별법) 개정안 비판기사 보도 될 수 있게 조치'라는 문구가 등장한다"고 말하면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가습기특별법 도입을 지연하려 시도한 정황을 공개했다.

법안을 저지하려는 시도는 2017년 11월 1일의 2차 회의에서도 드러난다. 최 부위원장은 "회의록에는 '가습기살균제특별법관련'이라는 소제목에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작업은 양사 단일안이 완성되면 SK에서 작업할 의원 명단을 공유하고 애경은 겹치지 않는 범위에서 작업 진행', '김앤장은 국회 상임위 전문위원들 중심으로 의견전달, 설득작업을 적극 진행하겠다고 함', '상황상 참관해 입장표명이 어려운 국회의원들에게는 본 법률이 논란이 있음으로 상임위 전문위원의 의견 받아보자는 식으로 설득 예정'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고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최 부위원장은 관련해서 "SK케미칼은 국회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로비해왔느냐"며 "2013년경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4건 발의했을 때 결국 이렇게 해서 법 제정이 무산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최 부위원장이 공개한 2차 회의록에는 '공정위 대응관련' 항목도 등장한다. 최 부위원장은 "SK의 경우, '전 그룹사에서 WPM 문서삭제프로그램을 사용 중이며 이 프로그램은 워드나 한글문서를 정기적으로 강제삭제하고 파일이 남지 않도록 완전 삭제', '직원은 별도로 보안처리된 특정프로그램을 통해서만 파일이 보여지는 USB 사용'이라고 한 기록이 있다"며 "당시 SK 쪽에서 애경에 이런 의견 전달하면서 압수수색에 공동대비하자고 제안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양 실장은 관련해서 "저 시스템은 지금도 사용하는 시스템"이라며 "그런 내용으로 문서관리 시스템이 돼 있다고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8월 2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진상규명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최창원 전 SK 케미칼 대표가 피해자들을 향해 사과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우리 사회 폐단이 시스템조차 작동하지 않게 한다"

이날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관료와 재벌, 정경유착과 같은 우리 사회의 폐단들이 기존에 있는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사법방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단순한 처벌이 이런 행위를 되풀이시킨다"며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그 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경제, 사회적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문회에 참석한 박혜정 피해자연합대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SK그룹이 세정성분 하나 없는 독극물을 세정제로 허가받아 유통시킨 사기행위"라며 "이 참사에 정부와 대기업 모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현재 옥시의 PHMG 피해자와 SK의 CMIT/MIT 피해자를 차별해 피해구제는커녕 피해자들 간 갈등을 조장했다"며 "그마저도 폐질환에만 한정해 6000명이 넘는 피해자 중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사람은 8%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증인으로 출석한 최창원 전 SK케미칼 대표와 채동석 애경산업 부회장이 피해자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사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피해 대책방안을 묻는 질문엔 "재판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이 자사 바이오텍사업팀에서 개발을 제안해 만들어지게 됐다. 당시 유공 내 생물공학연구실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제조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달 뒤 유공은 서울대 수의학과 이영순 교수에게 흡입독성 실험을 의뢰하지만 이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1994년 12월 가습기살균제는 시중에 판매됐다. 흡입독성 보고서는 다음 해 7월에 나왔다. 그 보고서에서도 가습기살균제가 안전하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럼에도 유공은 가습기살균제 판매를 중단하지 않는다. 이후 가습기살균제는 SK케미칼이 원료를 공급하고 애경이 만든 '가습기 메이트', 이마트 PB상품인 '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등으로 출시돼 판매된다. 지난 23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 중 사망한 사람은 1431명으로 확인됐다.

이번 청문회는 2016년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에서 미비했던 점을 집중적으로 짚어보고자 마련됐다. 청문회는 28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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