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단식으로 선거제도 개정 논의에 불씨를 살려낸 손 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말로 이날 회견을 시작하며 "(이는) 한국 정치의 새 길을 열고 새 판을 짜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저는 강진 만덕산을 내려오며 제7공화국 건설을 외쳤고, 당 대표 선거에 나서며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을 공약했다"며 "이런 저와 바른미래당의 약속이 실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의미를 기렸다.
손 대표는 "한편 이번 협상과정에서 당이 숱한 분열과 내홍을 겪은 데 대해 당 대표로서 송구스런 마음"이라며 당내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이제 당은 단합해서 정치의 새 판을 짜고 한국 정치 구도를 바꿔 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 경제 실패와 안보 불안, 인사 실패와 숱한 부정부패는 총선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으로 열어갈 것이다. 다른 한편 자유한국당은 수구 보수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여야를 모두 싸잡아 비판한 후 "당 내에서 바른미래당을 진보·보수 한 쪽 이념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세력이 있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은 중도개혁 정당"이라며 "일말의 정치적 이득을 보겠다고 바른미래당을 한쪽 이념으로 몰고가려는 책동에 강력 경고한다"고 반복 강조했다. 이는 보수 정체성을 강화를 요구해온 유승민 의원 등 당내 바른정당계를 공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른정당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과의 선거 연대나 제휴를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김관영 원내대표도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김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당 내 많은 혼란이 있었고, 특히 사개특위 사보임 문제는 오신환·권은희 의원에게 다시 한 번 죄송하다"면서도 "그러나 이 모두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됐다는점을 한 번만 이해해 달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존경하는 유승민 의원 이하 반대 의견을 지속적으로 줬던 여러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숙고하겠다"며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갈등이 작다고 하기 어렵지만 지도부가 충분히 소통하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패스트트랙 당론추인 과정에 대해 "어렵게 민주주의 과정을 거쳐 투표를 했고, 심지어 이 의사결정을 과반으로 할 건지 2/3로 할 건지도 투표를 했다"며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은 투표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승복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투표 결과에 따라 4당 원내대표 합의가 추인됐고 저는 추인된 합의사항을 이행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며 "원내대표로서 주어진 책임과 권한을 적절히 활용해야 했다"고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대해온 당내 바른정당계와 일부 안철수계 의원들은 지도부 사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른정당계 좌장 유승민 의원은 이날 새벽 패스트트랙 의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우리 당이 불법과 거짓으로 통과시킨 측면은 분명하다. 그에 대한 책임은 당 내에서 끝까지 물을 것"이라며 "불법 사보임과 거짓말, 또 당론이 아니지만 당론으로 밀어붙인 부분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할 분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책임져야 한다"고 사실상 김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유 의원은 또 "지도부 전체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김 원내대표를 넘어 손학규 지도부 전체를 겨냥했다. 그는 다만 "본인의 처신을 보고 저희들이 움직일 것"이라며 일단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반응을 보겠다고 했다. 유 의원은 패스트트랙 처리와 관련해서는 "매우 참담하게 생각한다"며 "저희가 꼭 막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했다. 그는 "아직 표결도 남아 있다. 오늘이 끝이라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막겠다"고 언급했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교통방송(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원내대표는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두느라고 국회를 굉장히 비이성적으로 만든 책임이 있다"며 "정상적인 판단을 한다면 오늘 중 자진사퇴를 하는 게 맞다. 사퇴하는 게 그나마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하 최고위원은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동반 사퇴를 주장하면서 "(지도부가 사퇴하면) 중간 과정에서 과도적 비대위가 있을 것이고, 그 이후 체제는 그 과정에서 정해질 것"이라고 청사진까지 그렸다.
다만 한 바른정당계 의원은 "이날 중 공개 회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즉각적으로 대응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의원은 "지금 당 리더십이 유명무실하지 않느냐. 패스트트랙은 얼기설기 꿰매서 여기까지 왔다고 쳐도, 이 상태로 당의 진로·비전·대안을 내놓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면서 이같이 말했다.
안철수 전 대표 측근인 이태규 의원도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갈등과 분열이 있었고, 또 의원총회에서 강제 사보임은 없다(고 했다)는 부분 공식 확인이 됐음에도 단행됐기 때문에 이 부분이 당에 큰 문제로 남아있다"며 "김 원내대표가 강제 사보임에 대해 사과했다.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는 게 정치의 상례이고 도의"라고 김 원내대표 사퇴를 우회 촉구했다.
이 의원은 "오랫동안 누적돼온 지지율 답보·정체가 지난 4.3 보궐선거 참패로 나타났다"며 "결국 현재 지도부가 어떤 비전과 대안이 없다, 총선 전망이 굉장히 어둡다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이 (패스트트랙) 부분이 계속해서 당의 분열·갈등 요소로 남아 있으면 안 된다. 본인 임기가 6월이면 어차피 끝나니 그런 부분에서 본인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거듭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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