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서울의 일부 지역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했으니 말그대로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전설처럼 회자되곤 했던 '2018년 폭염'도 이제 그 위명을 내려놓을 때인 듯하다. 여름은 명확하게 과거보다 더 덥고, 끈적하고, 괴로워졌으며 무엇보다 그 '보다 더'가 평범한 상황이 됐다.
라디오와 TV, 유튜브 따위에 얼굴을 비추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몇 년 전부터 경고한다. 올 여름이 당신이 겪는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고. 올해는 11월까지 반팔을 입을 것이며 모기는 9월과 10월이 돼야 찾아올 것이라고. 이런 기후위기와 이상기후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뉴노멀일 것이라고.
소셜미디어엔 극악한 더위를 활용한 유머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이 경우 대부분의 웃음은 긍정적이라기보단 자조적이다. 기후재난이 일상이 되고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은 곧 인류가 확정적인, 그것도 다음 몇 세대가 더 이어질지 모를 '가시권 내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니까.
기후위기로 인한 우울증의 확산은 이미 통계적으로 증명된 현상이다. 전세계 관계기구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가운데, 그 정보를 쉴 새 없이 (게다가 계절마다 본인의 몸을 통해서도) 접하면서도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세계시민들이 정서적 고통과 무력감 등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이들은 좀 더 공격적인 방식을 택하는 듯하다. 다소 쾌적했던 7월, 동북아와 유럽 지역의 기후가 뒤바뀐 양상이 화제가 되자 국내 SNS엔 그간 기후대응을 강조해 온 유럽의 자유주의진영을 비꼬는 밈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쾌적한 기후를 누리며 속편한 소리를 해왔냐. '당해봐라'라는 거다.
기후를 포함한 여러 진보 의제에 있어서 서구세계의 기득권적 모순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당장 다음 달 맞이할 기후위기의 결과물을 앞에 두고 기후대응의 구호를 조롱하는 모습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이런 '밈'이 빅테크 기술 속에서 어떤 '여론'으로 자리잡는 모습을 이미 여러번 목도하기도 했다.
실없는 유머(일단은 말이다) 콘텐츠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의 SNS 콘텐츠 시장은 하나의 유행을 포착한 크리에이터들이 비슷한 콘텐츠를 우후죽순으로 생산하는 공급과잉의 양상을 보이는 만큼, 이런 류의 '밈'들이 거의 무가치할 정도로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구조이기도 하다.
다만 네덜란드의 현대 작가 토미 비링하는 이른바 기후 부정론자들과 유사한 이 냉소적인 태도들, 그러니까 기후대응을 위선이나 속편한 "좌파의 취미" 따위로 보는 웃음 섞인 접근들이 빅테크 거대 자본과 맞물려 돌아가는 바로 이 '구조'를 보며 세계를 잠식한 '희망 없음'을 지적한다.
"이런 접근은 현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전제하지만, 그 현실에 수동적으로 대처할 뿐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정재계는 이런 접근이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를 통해 해로운 행위가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미 비링하, <희망 없는 낙관주의> 중)
책 <희망 없는 낙관주의>에서 저자는 기후위기, 정치적 극우화, 끝없이 반복되는 전쟁 등으로 "미래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시대"가 된 현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불가역적인 기후위기라는 전제 위에서,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활용하는 권력의 작동방식은 미래의 회복 불가능성을 실감케 한다.
"사람들이 더 고통받을수록 거짓말은 더 잘 먹힌다. 그들을 공포로 몰아 분노하게 하고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만든 다음 어디서든 믿게 만든다. 이것이 포퓰리스트와 극우 은행가들이 존재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자본화하는 방식이다. ... 이렇게 그들은 극단적 정치 세력의 활용 가능한 재료가 된다" (-책 본문 중)
기후위기 시대에 석유산업을 몰아붙이는 트럼프의 행보는 "화석연료를 통해 권력구조를 유지"하는 '약탈'의 단면이라고 저자는 통찰한다. "법과 협약, 소수자 권리, 여성과 소수자 해방에 구애받지 않는" 채 벌어지는 트럼프의 전쟁과 정책들은 그의 기후부정론과 맞닿아 있고,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전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다.
한편 정치권력의 폭주는 자본과 기술과 맞닿으며 완성된다. 오늘날 빅테크 기술의 소유자들은 "무한대의 경제적광고적 자본을 보유"하고 "수십억 사용자를 가진 유동적 세계 제국을 소유"했지만 어떤 국가나 연합체도 이들에게 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고,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 등의 테크 재벌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이 같은 '통제불능의 권력'을 유지시킨다.
가짜뉴스, 최소한의 규율을 벗어난 모욕과 조롱, 소수자에 대한 혐오 따위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따위의 플랫폼에서 폭주하는 일이 이 같은 메카니즘 하에 일어난다. 이는 당장 서구권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다시 한국의 SNS '유머' 콘텐츠로 돌아와 보자.
유럽의 7월 폭염을 두고 '이제야 아시아를 이해한 유럽' 따위의 제목으로 유통되던 릴스들은 곧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향한 조롱으로 이어진다. 나이 어린 좌파 여자에 대한 혐오 댓글이 쉽게 뒤를 잇는다. 당연한 '약탈'의 메카니즘이다. "이렇게 남의 고통을 즐기는 세계에서 여성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객체, 몸, 어머니, 가정부다."
얼핏 보면 '아무렇게나 지껄여대는' 모습인 이런 SNS 속 혐오와 조롱들은 실은 검증을 검열로 취급하며 "검증기능을 무력화시킨" 테크자본의 의도 하에 세워진 일종의 수익 모델이다. 자본은 '아무렇게나' 지껄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를 통해 수익을 얻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거부한다.
"검증된 진실은 수익과 권력을 방해한다. 진실에 기반한 게시물은 허위 정보 게시물보다 여섯 배 느리게 퍼지고, 클릭 수와 광고 수익도 훨씬 적다. ... 기후 위기를 배경으로 한 봉건적 빅테크와 복귀한 강자의 연합은 사실과 진실을 향한 완벽한 폭풍이다." (-책 본문 중)
테크권력이 폭주하는 가운데 전세계 곳곳에서 극우정부의 출범은 이미 익숙한 일이다. 내란사태로 얻은 일종의 반사이익이 아니었다면 한국의 정치지형도 세계의 트렌드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 최근은 진보를 표방한 세력들도 성장과 자본을 축으로 한 '약탈적' 키워드 없이는 정치적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으로도 보인다.
정치와 자본, 그리고 대중이 한 데 묶인 출구 없는 "무너진 세계"가 도래했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시대, 우리의 자녀들에게 "살 수 없는 땅"을 물려줄 수밖에 없는 시대에 개인은 어떤 행동원리로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희망을 버리되 절망에 잠심되지 않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그것은 거대한 희망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옳은' 실천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저자는 희망을 말해 달라는 질문자들에게 "왜 희망을 묻는가" 되물으면서도, "아무리 짧은 순간이었을지라도 이 눈부신 모든 것은 분명히 존재했었다"고 믿으며 쓰레기를 줍고 진실을 주장한다.
쉼 없이 약탈하는 정치·경제·미디어의 파도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강자의 권리에 맞서는 무기는 진실과 용기라는 기본 덕목"이라는 저자의 말은 진부하지만, 어쩌면 그에 대한 실행이야말로 "권력 체계에 맞서 수행하는 혼성 게릴라전"일 수도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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