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국과 무역협정을 타결해 상호관세를 15%로 낮췄다. 협상의 일본 쪽 최대 초점이었던 자동차 관세도 15%로 인하됐다.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대미 무역 흑자국이자 자동차가 주요 수출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일본의 협상 사례는 한국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거 참패에도 대미 협상 등을 이유로 버텼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거취에도 다시 주목이 모인다.
22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일본과 대규모 협상을 완료했다"며 "일본은 미국에 15% 상호관세를 지불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달 초 서한으로 통보된 관세율 25%보다 인하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자동차, 트럭, 쌀, 다른 특정 농산물을 포함해 무역을 개방"할 것이며 "미국에 5500억 달러(약 758조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도 했다. 자세한 협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본 쪽은 최대 관심사였던 자동차 관세 또한 인하됐다고 밝혔다. 일 NHK 방송을 보면 23일 오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을 만나 미일 무역 합의가 이뤄졌음을 밝히고 특히 "국가 기간사업인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해 올해 4월 이후 부과된 25%의 추가 관세율을 절반으로 줄여 기존 세율을 포함해 15%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자동차에 대한 품목관세 25%를 합의를 통해 절반인 12.5%로 낮추고 기존 관세 2.5%를 더해 15% 세율을 매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상호관세 15%가 "대미 무역 흑자를 안고 있는 나라 중엔 가장 낮은 숫자"라며 협상 성과를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반도체, 의약품 관세 등에 대해서도 "일본이 다른 나라보다 나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확약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NHK는 일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는 50%로 유지된다고 전했다.
이시바 총리는 쌀 수입 관련해선 일본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MMA) 범위 내에서 "미국산 쌀 조달 비율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이 무관세로 수입하는 연간 약 77만톤(t) 규모 쌀 중 미국산 비율을 늘린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시바 총리는 합의에 농산물을 포함해 일본이 미국산 물품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며 "농업을 희생시키는 내용은 일절 없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무역 합의를 발표할 땐 미국의 무관세 수출을 강조했지만 일본과의 합의 발표 땐 그러한 내용을 적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이 미국에 5500억 달러 투자를 할 것이라고 한 데 대해 이시바 총리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일본 기업의 미국 투자를 통해 반도체, 의약품, 철강, 조선, 중요 광물, 항공, 에너지, 자동차, 인공지능(AI)·양자 등 경제 안보상 중요한 분야에서 미일이 동시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강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긴밀히 연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방위비 관련해 일 <교도통신>을 보면 관세 협상을 이끈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이번 합의에 방위비 문제를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관세 합의에 이어 일본의 알래스카 가스전 투자를 재강조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공화당 의원들과의 행사에서 일본과 "하나의 협상을 완료했고 또 다른 협상을 완료할 것"이라며 일본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관련해 미국과 합작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신은 다만 일본 정부 관계자가 이러한 계획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시한인 8월1일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미 무역 흑자국이자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인 한국엔 이번 미일 합의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또한 자동차가 주요 대미 수출품이고 방위비 연계 여부도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알래스카 가스전 투자 관련 일본과 함께 한국을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한국 대통령실은 23일 미일 무역협상 타결 관련 "세부 내용은 파악 중이며 우리 정부 협상에도 참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 안보실장, 통상교섭본부장이 방미 중이며 금주 경제부총리, 산업부 장관도 미국 주요 인사와의 면담이 잡혀 있다"며 "우리 정부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미국과의 협의에 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 언론 "총리, 8월 퇴진 의향 굳혀"…이시바 "거취 얘기 일절 없어" 버티기
미일 무역 합의가 이뤄짐에 따라 이시바 총리의 거취에도 다시 관심이 모이게 됐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 20일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퇴진 압박을 받고 있지만 미국과의 무역 협상 진행을 이유로 들며 버텨 왔다.
일본 언론에선 이시바 총리가 8월께 퇴진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23일 <마이니치신문>은 이시바 총리가 오는 8월 말까지 퇴진을 표명할 의사를 굳혔고 이미 이를 주변에 전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당내 퇴진 요구 분출 정도에 따라 시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같은 날 <요미우리신문>도 이시바 총리가 미일 합의 타결 뒤 퇴진 의향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오후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 소속 전 총리들인 아소 다로,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를 만나 이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전 총리들과 면담 뒤 기자들에게 "내 거취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었다"며 보도를 부인하고 물러날 의향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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