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다큐' 감독 "박 전 시장, 일방 주장에 성희롱범 낙인 찍혀"

감독 "박원순 위한 첫 변론"…김재련 "끝난 주장 재탕 삼탕하며 피해자 괴롭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의 감독이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실을 직접 부정하고 나섰다. 피해자 측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둘러싼 2차 가해 논란에 대해서도 전면 부정했다.

김대현 다큐멘터리 감독은 11일 오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동안 어떻게 보면 (박 전 시장은)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서 성희롱범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라며 본인의 영화 제작 목적이 "(박 전 시장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영화 제작위원회(박원순을믿는사람들)가 영화의 예고편을 공개하자 해당 영화가 '박 전시장의 성추행을 부인하고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냐'는 논란이 인 바 있다. 이날 인터뷰는 영화의 제작 목적 자체가 '성추행 부인'이었다는 점을 감독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방어권 없었다", "혐의 대부분 거짓" … 김 감독 주장 사실일까?

김 감독은 특히 박 전 시장과 관련해 "(피해자 측이) 지목한 혐의는 12가지였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그중 두 가지 혐의를 인정했다"라며 "그런데 이걸 달리 말하면 이건 김재련 변호사 등이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혐의가 인정받지 못했다. 즉 거짓이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피해자 측이 주장한 피해사례 중 인권위가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사례 전체가 거짓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그러나 인권위의 2021년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에서 핵심은 '몇 개의 혐의가 인정되느냐'가 아닌 '박 전 시장의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가'였다. 인권위는 당해 1월 발표한 직권조사 결과에서 △서울시의 비서운용 관행 △박시장 언동 성희롱 해당 여부 △성희롱에 대한 서울시의 묵인·방조 여부 △피해자 보호조치 미흡 △피소사실 유출 등 5가지 사안을 조사의 쟁점으로 밝혔다.

조사 당시 인권위가 △박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낸 일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진 일 등 2개 사례만을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사실'로 인정한 것은 맞다.

다만 인권위는 당해 1월 결과발표에서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이 사건의 경우 위 인정사실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애초에 '피해자의 모든 주장을 객관적 사실이라 판단할 수 있는가'가 주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셈이다.

박 전 시장은 자신의 성폭력 피소 사실이 알려진 지난 2020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써 피소 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바 있다. 김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조사 당시 이미 사망한 박 전 시장의 '방어권'이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보장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본인의 사망으로 조사 과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결국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서 성희롱범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는 게 김 감독의 지적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조사 당시 "피조사자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피조사자의 진술 청취가 불가능해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한 결과 피해자 진술 이외 입증 증거가 없는 모든 혐의는 사실로 인정되지 않았다. 애초 '열두 개 혐의 중 두 가지 혐의만' 사실로 인정된 것이 그 때문이다. 즉 인권위가 피해자의 직접 진술 등 "일방적인 주장"만을 조사에 활용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고 박원순 전 시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의 포스터.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피해자 측 고통 호소 이어지는데 … "2차 가해 아니라 토론"?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피해자의 고소 건이 별도의 판단 없이 종결되면서, 당초 박 전 시장의 가해행위에 대한 공적 판단은 인권위 직권조사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직권조사 결과 박 전 시장의 성희롱 행위가 인정되자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 씨가 이에 대한 행정소송을 냈고, 이로 인해 지금은 해당 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 또한 확인할 수 있는 상태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인권위의 판단을 이어 박 전 시장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강 씨가 즉시 항소하면서 현재는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영화를 둘러싼 2차 가해 논란에 대해 김 감독은 이날 해당 2심 재판을 근거로 "법원의 판단이 완결이 된 게 아니"라며 "그래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영화가 일방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며 "한번 영화를 보시고 그런 부분들을 같이 판단하자는 의미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측의 영화 상영 중단 가처분 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는 "여성계가 기자회견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저희가 그걸 말린 적이 있나" 되물으며 "영화 상영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굉장히 저는 비합리적인 그런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자들로 인한 2차 가해가 전부터 만연한 상황에 해당 영화의 개봉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일종의 쐐기를 박는 행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박 전 시장의) 무수한 지지자들이 2열, 3열, 4열... 순서를 기다리며 피해자와의 싸움을 준비한다"라며 "이런 광경을 보고 누가 위력 성폭력 피해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날 김 감독의 인터뷰 직후에도 글을 올리고 "가해자의 지지자들은 인권위에서 조사를 할 당시 이미 주장했던 내용을 재탕, 삼탕하면서 피해자에게 심대한 정신적 고통을 가하고 있다"라며 "(이는) 여성폭력방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전형적, 조직적, 지속적 2차 가해 행위"라고 강조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3조는 "수사·재판·보호·진료·언론보도 등 여성폭력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를 '2차 피해'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법의 18조는 2차 피해의 예방 및 2차 피해 발생시의 피해 최소화 의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부여한다.

이날 같은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논란 때문에 생산되는 인터뷰나 각종 콘텐츠의 존재 자체만으로 피해자에게 다시 더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이런 2차 가해가 자행될 게 뻔했기 때문에 피해자는 최소한의 법적 판단이라도 받아 둬야 했던 것이고, 그래서 나온 게 지금 (2021년) 국가인권위의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박 전 시장 유족 측 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지난해 10월에도 "(인권위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라며 피해자와 박 전 시장 사이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해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유족 측은 피해자의 호의 섞인 메시지를 공개하며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성희롱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여성계가 낸 반박 자료에선 해당 메시지들이 이미 인권위 직권조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직접 제출한 것임이 밝혀졌다.

법원 또한 이후 11월 행정소송 판결에서 해당 메시지를 두고 "망인이 피해자에게 대답이 곤란한 성적인 언동을 하자 이를 회피하고 대화를 종결하기 위한 수동적 표현", "망인에게 밉보이지 않고 망인을 달래기 위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한 말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등의 판단을 내렸다.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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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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