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춘의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 "건국은 1948년"

"광장민주주의 위험", "강성귀족노조 기득권" 등 논란 소지 '지뢰밭'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향후 당 혁신 작업의 방향성을 담은 '혁신 선언문'을 작성, 발표했다. 그러나 선언문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성격 규정은 빠졌다. 박 전 대통령의 당적 정리 문제도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1948년 건국" 등 뉴라이트 사관(史觀)을 담은 표현이나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 "강성귀족노조 등 민주화 세대의 기득권"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문구가 담겼다.

류석춘 한국당 혁신위원장은 2일 서울 여의도 한국당사에서 혁신 선언문을 발표했다. 류 위원장은 먼저 한국당이 처한 현실에 대해 "지난 10년간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이은 현재의 한국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국리민복과 국가발전을 위해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역할을 망각했다"며 "무사안일주의와 정치적 타락은 자유민주 진영의 분열을 초래하면서 총선 공천 실패,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라는 쓰라린 결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A4 2장 분량의 '선언문' 전체에서 '탄핵'이라는 낱말이 나온 것은 여기서 언급된 1회가 유일했다.

류 위원장은 이어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이래 자유민주 진영이 피와 땀으로 일으켜 세우고 지켜온 나라"라며 "그 정통성을 이어 받은 한국당은 철저한 혁신을 통해 분열된 보수우파 세력을 통합하고 자유민주 진영의 단합된 지지를 얻어 정권을 재창출하고, 대한민국을 선진대국으로 이끌고 마침내 자유민주 통일을 이룩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규정했다.

류 위원장은 혁신의 방향으로 "자유한국당 신(新)보수주의"를 제시했다.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의 내용으로는 4가지가 꼽혔다. 류 위원장은 "한국당은 이상과 같은 '신보수주의' 이념에 기초한 혁신을 통해 가치 중심의 정당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며 "이념과 조직의 재정비에 상응해 대대적인 인적 혁신과 인재 영입 또한 이뤄야 한다"고 해 시선을 모았다. 다음은 혁신 선언문에서 '신보수주의' 내용을 정리한 부분을 그대로 전재한 것.

1.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이 옳고 정의로운 선택이었다는 '긍정적 역사관'을 가진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꾸준히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켜 세계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성공의 역사를 만들었다.

2.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믿는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 자유의 침해를 방지하며, 시민적 덕성의 함양을 통해 더불어 사는 공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다.

3.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는 부정부패와 반칙, 특권을 배격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법치주의에 기초해 경제적 자유를 추구한다. 이와 동시에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도 함께 꿈을 이룰 수 있는 국가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서민중심경제'를 지향한다. 산업화 세대의 기득권은 물론 강성귀족노조 등 민주화 세대의 기득권도 비판하고 배격하는 혁신을 통해 중산층과 서민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활성화하고, 서민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주력한다.

4.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는 대내외적인 개방을 통해 우리나라를 '글로벌 대한민국'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목표를 가진다. 글로벌 대한민국은 대내적으로 다문화가족과 탈북자 등 소외계층을 포용하며, 대외적으로 젊은이들과 기업이 세계 속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개방을 지향한다. 북한의 개방과 자유화를 통한 통일의 실현 역시 글로벌 대한민국이 추구할 핵심 가치다.

한국당은 이 혁신 선언문이 "혁신의 당위성, 방향 및 철학 등을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라이트 세력이 주도해 온 '건국절 논란'과 같은 맥락에 있는 "1948년 건국"을 거듭 강조한 부분, 탄핵 사태의 동력이 된 촛불집회를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으로 묘사한 부분, 홍준표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집요하게 제기한 "강성귀족노조" 주장을 되풀이한 부분은 혁신의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광장 민주주의"를 비판한 대목과 관련, 한국당이 여전히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탄핵에 대한 태도는 향후 혁신의 방향성과 진정성, "인적 혁신" 작업의 강도와 기준을 가르는 잣대가 될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류석춘 위원장은 지난달 1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탄핵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실제로 저지른 잘못보다 너무 과한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관련 기사 : 류석춘 "박근혜 출당은 시체에 칼질하는 것")

이옥남 혁신위 대변인은 기자들의 관련 질문이 이어지자 "헌법적 결과인 탄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탄핵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그런 부분은 추후 혁신위 회의 등 과정을 통해 논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변인은 "탄핵 자체가 보수정당의 위기를 가져온 주요 원인이지 않은가"라며 "그것을 받아들이냐 안 받아들이냐는 인적 혁신과는 다른 부분"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에 한 기자가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자연스레 인적 청산도 이뤄지고 박 전 대통령 출당도 논의될 것 아니겠느냐'고 재질문하자 이 대변인은 "선언문은 가치지향적 부분을 담은 것이고, (탄핵에 대한 구체적 판단 등은) 향후 회의를 통해 논의될 것"이라고 재답변했다.

이 대변인은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위험성"이라는 표현이 촛불집회에 대한 문제 제기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기보다는) 헌법에 나와 있는 대의민주주와는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지적한 것"이라며 "대의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자는 의미로 봐 달라"고 했다.

이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 당적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저희가 인적혁신 문제를 다룰 때,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보수정권 실패 원인 분석에서 자연스레 나올수 있는 부분"이라며 "선언문은 철학, 가치를 담는 부분이어서 선언문에 (박 전 대통령 당적 문제가)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류 위원장이 언급해 관심을 모은 '인적 혁신'이 박 전 대통령이나 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추가적 징계나 제명 등의 조치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대변인은 "그런 사안은 아주 세부적 사안"이라며 "향후에 논의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구체적 부분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만 했다.

이 대변인은 선언문에 "분열된 보수우파 세력 통합"이라는 표현이 담긴 데 대해서는 "인위적으로 한다기보다 현재로서는 혁신이라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면 바른정당 등 보수세력 통합은 자연스레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인위적 통합은 혁신위 차원에서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혁신위가 지난달 28일 선언문을 발표하려다 보류하게 된 원인은 이 선언문에 '서민중심경제'라는 표현을 담는 데 대해 혁신위 내부적으로 찬반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나, 이날 발표된 최종본에는 이 표현이 그대로 들어갔다.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2일 한국당 당사에서 '혁신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류 위원장 오른쪽부터 혁신위원인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이옥남 혁신위 대변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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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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