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 친박', 커질수록 작아지는 '극우화의 마술'

자유한국당 지도부 강경 극우 일색…107석 제1야당 맞나

3일 자유한국당의 새 지도부로 선출된 신임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면면이 강성이다. 의석수 107개(전체 중 35%)를 점유한 제1야당의 지도부가 이념적으로 편향적인 강경파로 채워졌다. 수도권 보수 민심, 중도 보수 여론, 보수 성향 청년층을 대변할만한 '쇄신과 혁신'이 오히려 난관에 처했다는 평가다.

이날 당 대표로 선출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44년 전 '돼지 흥분제' 강간 모의사건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막말'의 대명사다. '성완종 리스트' 사태로 공직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그는 전당대회를 '사적인 재판 투쟁' 도구로 쓰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당심은 역시나 '홍 트럼프'였다. 홍 신임 대표는 원유철·신상진 후보를 누르고 압도적 득표율(65.7%)로 당선됐다. 지난달 30일 수도권 지역 합동 연설회 후 "선거 운동 끝났어"라며 '셀프 종료' 선언을 하고 사실상 전대 레이스 전체를 해태하다시피 했음에도 벌어진 일이다. TV토론회를 일방적으로 불참했고 상대 후보들을 상대로 "애들 데리고 토론 못 하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최고위원으로는 이철우, 류여해, 김태흠, 이재만, 이재영(청년) 후보가 당선됐다. 국가정보원 출신으로 안보 이슈에서 특히 강경한 이 의원은, 지금도 때마다 NLL 논란을 끄집어 내 논란을 만드는 인사다. 경북·김천을 지역구로 하며 한때 친박계로 분류됐었으나 대선을 거치며 '친홍(親洪)'으로 변신했다. 이 의원은 20.9%의 득표율을 올리며 1등 최고위원이 됐다.

류여해 서울 서초갑 당협위원장은 한국당 팟캐스트인 '적반하장'의 진행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번 전대 과정에서는 합동연설회 무대에서 1955년 작 '조국찬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절대 저 좌빨(좌익빨갱이)들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극우' 표심에 호소했다. 벌써 당내에서는 '잔 다르크'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막말'로 뒤지지 않는 김태흠 의원(충남 보령·서천)은 이번 지도부에서 '소수파'가 됐다. 김 의원은 홍준표 대표에 맞서 친박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2013년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이 되면 노동 3권이 보장된다.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고 해서 사회적 비난을 산 바 있다.

김 최고위원은 2014년에는 '땅콩 리턴' 사건의 주인공인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자 "이 사안이 이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고 시끄럽게 할 정도인가. 이건 마녀사냥"이라며 "교각살우란 말이 있다. 잘못된 부분만 들어내야 하는데 회사가 망가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봉착하고 친박계 의원들을 상대로 '정말 최순실을 몰랐느냐'는 여론의 의구심이 커지던 지난해 말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부인이 제일 늦게 안다"는 말로 친박계를 감쌌다.

이재만 대구 동구을 당협위원장은 지난해 대구·경북 지역 총선 후보들 중 가장 대표적인 '진박' 선수로 분류됐다. 그는 친박계의 물밑 지원에 힘입어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공천 신청을 했었다. 친박계가 공천권을 거머쥔 상황이었던 만큼, 무난히 공천을 받고 20대 국회에 입성할 것으로 기대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이 위원장은 김무성 당시 대표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대구 동구을 지역 단수 추천(이재만 공천) 등을 막기 위해 공천의 '최종 관문'인 최고위원회를 열지 않고 부산으로 도피한 '옥새 파동'을 법정으로 가져갔다. 김무성 당시 대표가 "무소속으로 출마할 유 의원을 당선시킬 목적으로 고의적 (공천) 봉쇄를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17일 옥새 파동은 위법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안양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2차 전당대회 수도권 합동 연설회'에서 당 대표에 도전한 홍준표 후보가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vs. 친박…"내부 총질은 안 된다" 숨은 뜻은?

이번 전당대회로 뽑힌 새 지도부는 1년 후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한다. 압승을 거둔 홍 대표를 비롯해 그와 가까운 이철우 류여해 이재영 후보의 지도부 입성으로, 이대로면 홍준표 친정 체제가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간판이다.

친박계에서는 최고위원 2명(김태흠·이재만)을 배출하는 데 그친 만큼, 향후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홍준표 1인 지도 체제로 운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 대표와 친박계 간 물밑 신경전이 없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는 별로 없다.

홍 후보는 이날 당 대표로 선출된 후 기자 간담회를 열고 "단합해야 한다"며 "내부 총질은 안 된다. 기득권을 위한 주장은 분열과 파탄만 낳는다"고 말했다. 이는 역으로 말해 홍 대표도 그간 당내 주류였던 친박계가 앞으로 자신을 향한 물밑 공격을 계속 시도할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요 당직 인선권을 쥐고 있는 홍 대표는 이날 "당의 전면에 소위 '핵심 친박(親朴)'들은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물론 지방선거 공천권이 가장 큰 분란의 요인이 되겠지만, 당의 정체성과 진로를 놓고도 양측이 사사건건 대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인 현안이 혁신위원회 구성이다.

홍 대표는 이날 "이 땅의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온 그런 분들과 보수 우파의 대표적인 분들을 섭외해서 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혁신위로 하여금 인적혁신, 조직혁신, 정책혁신을 모두 전권으로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인적혁신'이 누구를 겨냥하는지를 두고는 당 안팎의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홍 대표가 이날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허위 사실 (유포는) 넘어가면 안 된다. 그건 지도자의 아량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발언은 바른정당의 정병국 대표가 최초 공개하고 자유한국당의 원유철 당대표 후보가 거론한 '홍준표 바른정당 입당 시도' 논란을 문제 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게다가 홍준표 대표는 자신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된 이유를 '친박계의 정치 공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친박계를 '양박(양아치 친박)'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고, '바퀴벌레'라고 공격하기도 했었다.

홍 대표가 비록 "당내 선거 때는 끝나면 다 하나가 되는 게 여태 관례다"며 단합을 강조했지만, 이는 친박계에 대한 홍 대표의 관용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홍 대표에 대한 친박계의 '패배 선언'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연합뉴스
홍준표 + 친박…'막말 극우당'으로 왜소해지는 한국당

다만 홍 대표와 친박계는 '반공 보수'로 대표되는 극우적 정치·역사·사회관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적으로는 자유한국당이 일사불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새누리당 시절에는 친박계가 당의 기득권을 손에 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뒤만을 쫓으며 극우적 발언 및 행태를 할 때 비박계 일각에서나마 '쓴소리'를 하는 구성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쓴소리'를 하며 중도 보수, 수도권 보수, 청년 보수, 시장 보수 등의 입장을 대변하려 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올해 초 탈당해 바른정당으로 분화됐고, 일부는 바른정당으로 갔다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지만 숨을 죽이고 있다.

당의 '마이크'는 친홍, 친박을 불문하고 전부 강경파 의원들에게만 쏠려 있는 형국이다. 적어도 대여 관계에선 지도부가 물밑 신경전을 뒤로 하고 일심동체로 움직이며 이전보다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어 보인다.

이렇게 당 지도부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좁아진 가운데, 때마다 터져 나오는 막말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도 한국당은 더 이상 아파하지 않는 모습이다. 홍 대표는 이날 "가장 솔직한 말들을 막말로 매도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예견됐던 바이긴 하지만 한국당의 새 지도부가 너무 강경 보수 일색"이라면서 "한국당은 20~30석 정도를 가진 군소 보수 정당이 아니라 107석을 가진 제1 야당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 10~20% 정도의 생각만 대변할 수 있는 지도부가 선출됐으니 당이 잘 운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특히 윤 실장은 "당 지도부와 의석수의 미스매치(부조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국당이 자칫하면 60대 이상, TK(대구·경북) 등 소수의 보수 진영만을 대표하고 국회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정부·여당에 비토(반대)만을 놓는 왜소한 정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제대로 된 대안 야당이 아닌 크기만 거대한 횡포 그룹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실제로 이재만 최고위원은 이날 당 전체를 대표하는 지도부로 선출된직후 "대구·경북 화이팅!"을 외쳤다.

특히 홍 대표가 앞으로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을 인선하면서 당내 수도권이나 충청권 그룹을 배제하고 극우 강경파 인사만을 골라 내 기용하면 당의 '보수 진영' 대표성은 더 낮아지고, 보수 정당 통합 논의는 아예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바른정당은 얼마 전 당내에서도 특히 개혁적인 인사로 평가되는 이혜훈 의원을 신임 대표로 선출했다. 국민의당은 문준용 제보 조작 사건으로 혼란 속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 속 정계 개편의 필수 에너지인 자유한국당의 인적·이념적 쇄신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전대는 그야말로 홍준표 후보의 '극우 이념 뽐내기' 장이자 '막말 대잔치'처럼 치러졌다.

윤 실장은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세 당을 보면 모두 내부가 힘든 것은 맞다"면서도 이 때문에 정계 개편이 이루어지기에는 각 당 안팎의 사정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윤 실장은 "한국당이 '우리 쇄신했다'는 사기라도 제대로 치지 않는 한 두 보수 정당 간 통합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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