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선택이 뭐길래…문재인 "비열한 범죄 행위"

추미애 "법적 조치" vs 우상호 "실체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당 내에서 '역(逆)선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역선택이란, 본선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그와 경쟁하는 정당에서 '더 쉬운 상대'인 약체 후보가 선출되도록 하는 일종의 공작 행위를 말한다. 국민참여경선이나 오픈프라이머리 등 당원이 아닌 이들에게까지 당직이나 공직 후보자 선거 참여 문호를 개방하면서부터, 일각에서는 늘 역선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내에서 '역선택 우려론'이 나오는 것은 경선에서 특정 후보의 유불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어 눈길을 모은다.

문재인·추미애 "역선택은 범죄"

민주당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는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른바 역선택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가 국민경선을 하는 이상 어느 정도 자연적인 역선택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경쟁하는 정당에서 의도적·조직적으로 역선택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비열한 행위이고 처벌받아야 할 범죄 행위"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원천적으로 그런 것을 막을 수 있는 법제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는데, 그것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형사적 고발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더 근원적 해결책은, 보다 많은 국민들이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선거인단으로 참여해 준다면 역선택조차 희석되면서 오히려 민주당 선거인단 규모를 키우고 더 '붐업'시켜 주는, 오히려 우리 당에 도움이 되는 그런 결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역선택 무력화를 위해 자신의 지지자들이 더 많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문 전 대표의 '범죄 행위' 발언은 이날 아침 나온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추 대표는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일각에서 역선택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박사모(박근혜 대통령 팬클럽) 등 특정 세력이 특정 후보를 겨냥해서 방해하려는 태세가 보인다. 만약 박사모가 이런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고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겠다는 말을 유포하면서 타 당의 선거에 훼방을 놓는 것은 선거의 자유를 방해하는 중차대한 범죄 행위"라며 "우리 당은 이런 특정 세력에 대해서 엄중히 경고하면서 법적 조치를 단호하게 취할 것"이라고 했다.

추 대표가 언급한 '특정 후보'는 바로 문 전 대표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지난 15일 "문재인이 후보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게시물에는 민주당 선거인단 신청 ARS 전화번호까지 첨부돼 있었다. 민주당 자체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인 양승조 의원은 전날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사모가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행동을 해서 만약 몇십 만 명이 동원된다고 하면 커다란 문제"라며 "10만 명이 들어온다는 것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우려조의 말을 하기도 했다.

양 부위원장은 기자 간담회에서도 "일반론적으로 역선택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역선택이 현실화될 때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많은 분들이 더 많이 선거인단으로 참여해서 역선택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 부위원장은 "실제로 역선택이 벌어져서 경선 결과를 좌지우지 할 것인가, 우려할 만한 건은 (전례를 볼 때)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간담회 자리에서 '역선택에 대한 우려를 지나치게 제기하는 것은 특정 주자에 대한 편들기로 비칠 수 있다'는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양 부위원장은 "그 지적은 전혀 맞지 않다"고 일축했다.

안희정 측 "안희정 미는 게 왜 역선택이냐"

'지나친 역선택 우려가 특정 주자 편들기 아니냐'라는 질문의 배경에는, 역선택 우려론이 '안희정 지지는 보수의 역선택'이라는 프레임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실제로 안 지사는 중도·보수층에서 꽤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날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61%가 문 전 대표를, 24%가 안 지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안 지사는 국민의당 지지층(25%)과 바른정당 지지층(27%)에서도 유의미하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바른정당 지지층의 27%가 안 지사를 지지한다고 답한 것은, 이 당 소속 유승민 의원에 대한 지지(24%)보다도 높다. (☞관련 기사 : 안희정 20% 돌파…황교안 한자릿수 추락)

때문에 안 지사 쪽에서는 '역선택'이라는 말 자체를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등 예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 지사를 돕고 있는 한 국회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희정 선택이 '역선택'이라고 하지만, 본선에서 황교안 되게 하려고 안희정을 미는 게 역선택이지 본선에서도 안희정 찍어주겠다고 하는 게 왜 역선택이냐. 정(正)선택이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안 지사를 민주당 후보로 가정한 가상 3자 대결에서도 문 전 대표가 민주당 후보일 때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도 '역선택 우려론'에 대한 반론 근거로 꼽힌다. 전날 발표된 MBN-리얼미터 조사에서 '안희정-황교안-안철수' 구도의 3자 대결 결과는 안희정 48.9%, 황교안 23.8%, 안철수 18.4%로, 문 전 대표를 넣은 3자 대결(문재인 48.1%, 황교안 25.6%, 안철수 19.0%) 때와 거의 비슷했다. (☞관련 기사 : 특검 연장, 찬성 여론 67.5% '압도적') 인터넷 등에서 일부 후보 지지자들이 '박사모가 선택한 후보'라고 안 지사를 공격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보면 '북한이 좋아할 후보는 안 된다'는 색깔론 공세와 다를 바 없다. 야당 후보들이 북한과 내통한 바 없듯, 안 지사도 박사모에 당 경선 참여를 부탁한 적은 없다.

안 지사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수현 전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보수적 지역의 어르신까지 민주당 국민경선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바라는 국민 통합의 꿈 아니냐"며 "(역선택으로 인해 유리해질 거라는) 상상이나 기대를 해본 바 없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역선택'은 구시대적이고 관습적 발언"이라고 하기도 했다.

우상호·금태섭 "역선택, 별 우려 안 해도 돼"

민주당 고위 당직자들 사이에서도 추 대표나 양 부위원장의 '우려'와는 결이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 간담회를 열고 "많이 등장하지만 한 번도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게 '역선택'이라는 용어"라며 "지난 20년간 증명된 예가 없다"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개인적으로 역선택 참여가 한두 명 있을 수 있지만, 집단이 움직이는 것은 엄청난 범죄"라며 "자기(당) 선거도 아니고 다른 당 선거에서 역선택을 하려고 한다면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이 경선에 참여한다든지 이런 것이 다 드러나게 된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려면 결국 돈을 줘야 하고, 돈 주고 움직이면 다 드러난다"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을 했다.

우 원내대표는 나아가 "역선택은 항상 자기에게 불리한 걸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쓰는 용어"라며 "조직이 강한 사람이 참여경선, 국민경선에 역선택의 소지가 있다고 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대선후보 경선은 국민경선이기 때문에 역선택이라는 용어는 실체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있었던 적도 없고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어느 캠프에서 이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역선택 얘기 하지 말라. 옳지 않은 얘기"라고까지 말했다.

금태섭 당 전략기획위원장도 "선거인단이 몇백, 몇천 명일 때는 역선택 가능성이 있겠지만, 몇만, 몇십만 단위로 커지면 역선택의 위험성은 거의 없다"며 "선거인단 등록을 할 때 본인 확인 절차를 밟기 때문에, 그 정도로 정성을 들여 역선택을 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우 원내대표는 '당내 순회경선에서 주소지를 조작해 서울에 사는 사람이 호남 지역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무슨 상관이냐"며 "(지방선거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등) 권역으로 막혀있을 때는 주소지가 다른 사람이 오면 반칙이지만, 대통령(후보) 경선은 사실 전국 어디 살든 상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굳이 서울이 주소지인 사람이 광주에서 하려고 한다면, 한두 명(이 그렇게 하는 것)은 못 막지만 경선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집단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느냐"며 "집단적으로 하려면 한 명 한 명 주소지를 다 불러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막대한 돈과 인원을 써야 하는데, 어느 미친 후보가 사무실 만들어 선관위 추적을 피해 가며 사람 고용해서 그렇게 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라고 일축했다.

우 원내대표는 "그런 일이 '형식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조직적으로 수만 명이 움직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역선택을 위한 보수층의 민주당 경선 참여나 주소지 변경 조작 문제 모두에 대해 '별 일 아니다'라는 태도를 취했다. 양승조 선관위 부위원장도 "캠프 차원에서 그런 일을 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자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위해 주소지를 바꿔서 신청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그 규모가) 대세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날 간담회에서 말했다.

이 기사에 인용된 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17일 한국갤럽,16일MBN-리얼미터)는 해당 기사 링크 또는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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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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