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끼려 노동자 건강·생계 '쥐어 짜는' 전기 민영화

[태안화력 고 김충현 대책위 연속기고] ③ 비용절감 명목으로 후퇴한 재생에너지 공적 투자와 안전 관리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님이 일하다 사망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은 발전소 폐쇄 국면 방치되고 있는 인력과 고용, 안전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25년을 기점으로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폐쇄될 예정이지만, 노동자 건강권 보장이나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과 같은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에 김충현 대책위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국면에서 노동자의 고용과 안전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총 4회의 연속 기고를 진행한다.

① 다단계 하청구조가 발전소 폐쇄 국면을 만나면 생기는 일

② 폐쇄 이후에도 추적, 치료되어야 할 발전소 노동자들의 건강

③ 민영화 비용 절감이란 명목으로 후퇴된 안전관리와 재생에너지

④ 발전소 폐쇄 및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담보되어야 할 공공성

지난달 2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차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님이 사망했다. 이 사고는 폐쇄를 앞둔 석탄발전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또한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 후에도 개선되지 않고, 윤석열 정부에서 더욱 악화한 발전산업의 문제와 하청 구조를 드러낸다.

발전공기업에 강요된 재정 건전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재무위험기관 14곳을 선정했다. 민간기업의 신용평가 방법을 적용해서 2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겨 14점 미만이거나 부채비율이 200% 이상인 기관을 재무위험기관으로 분류했다. 한국전력과 5개의 발전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은 모두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됐다. 기재부는 재무위험기관을 사업 수익성 악화기관과 재무구조전반 취약기관으로 구분했는데, 서부발전을 포함한 한전 계열사는 모두 전자로 분류했다.

재무위험기관은 부채감축 및 자본확충을 위해 자산매각, 경영효율화 등의 방식으로 2022~2026년 5년 동안 재정 건전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수익성 악화기관은 재무지표 점수를 개선하고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떨어뜨려 5년 안에 재무위험기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에 따라 발전공기업 등 재무위험기관은 재정 건전화 계획을 수립하고, 자산매각, 사업 조정, 경영효율화, 수익 확대를 추진했다.

▲화력발전소 내부 근무 풍경 자료사진.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공기업은 사회적 목표 달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기 공급이 과거의 주요 목표였다면, 지금은 그에 더해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재부의 재무위험기관 선정은 공기업의 역할과 운영을 민간기업처럼 수익성에 맞춘다. 사실 부채비율 200%라는 기준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전기를 공급하고 그에 따라 안정적으로 매출이 보장되는 공기업의 부채는 시장의 변덕에 노출된 민간기업의 것과 성격이 다르고 그 기준에 맞출 필요가 없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초기에 커다란 설비투자 비용이 들고 이를 20~30년 동안 회수하는 구조다. 국제시장의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고 전량을 수입해야 하는 화석연료와 달리 햇빛과 바람을 이용하기 때문에 연료비가 들지 않는다. 따라서 공기업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초기 설비투자 비용을 공적으로 조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공기업이 엄격한 부채비율을 맞추려면, 채권 발행을 할 수 없으므로 고비용의 민간 자본을 동원하거나, 지분 투자 방식으로 간접적으로만 사업을 해야 한다. 재정 건전화라는 굴레는 발전공기업이 기후위기 시대에 수행해야 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재생에너지 투자 축소와 발전 정비 비용 절감

발전공기업은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 재생에너지 투자를 줄이고, 발전소 정비 비용 절감을 계획했다. 예를 들어, 서부발전은 2022년 8월 정부에 '한국서부발전 22~26년 재정 건전화 계획'을 제출했다. 해당 계획서를 보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자체 사업 축소 1704억 원, 신재생에너지 투자사업 축소 3,870억 원이 포함됐다. 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그 비중이 가장 낮다. 재생에너지 핵심 시설인 태양광과 풍력 발전소 중 공기업의 비중은 2%에 불과하고 나머지 98%는 개인이나 민간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발전공기업의 재생에너지 직접 사업을 늘리고 공공부문 책임하에 에너지 전환을 책임지는 일이 중요해진 시기에, 재정 건전화 강요가 재생에너지 투자 축소로 이어진 것이다.

정부의 재정 건전화 압박은 발전소 노동자들의 안전도 위협한다. 서부발전은 발전소 계획예방정비 공사 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해서 5년간 1185억 원의 비용을 절감하고, 경상정비 축소 등을 통해서 5년간 1560억 원을 절감하겠다 밝혔다.

경상정비는 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정비 업무다. 발전공기업은 이를 한전KPS, 금화PSC, 한국발전기술 등의 하청업체에 외주화했다. 고(故) 김충현 노동자는 한전KPS가 재하청한 한국파워O&M 소속이었다. 발전사의 경상정비 예산이 축소되면, 발전소의 안전과 직결된 업무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하청업체에 비용압박이 전가되고,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와 노동조건에 영향을 준다.

▲한국서부발전이 2022년 8월 정부에 제출한 ‘2022~26년 재정 건전화 계획서’ 내용 갈무리

계획예방정비 공사는 발전소의 가동을 1~2개월 동안 중단하고, 터빈 등의 핵심 설비를 분해해서 점검하는 대규모 정비로 통상 2년 주기로 시행된다. 비용 절감을 위해 그 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늦춘다면 핵심 설비의 안전관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주기를 그대로 두더라도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이나 공기를 줄인다면 노동자의 안전에도 영향을 준다.

발전소 정비의 경쟁입찰은 2002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발전산업의 우회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본격 도입됐다. 비용 절감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저가 입찰 경쟁을 부추겨 안전과 하청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했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후 구성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경쟁입찰 중단과 발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안전을 위한 첫 번째 조치로 꼽았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발전정비산업의 민영화와 경쟁체제를 종식하고, 경상정비 업무 자체를 재공영화하는 것이 발전산업의 정상화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대안이다.

윤석열 정부가 강요한 굴레, 이제는 벗겨내야

윤석열 정부가 강요한 재정 건전화는 재생에너지 투자를 막고 발전공기업의 사업을 화석연료에 고착시키는 조치였다. 또한 발전정비 산업의 하청구조를 존속시키고 비용절감으로 더욱 악화시키는 조치였다. 2022년 재정 건전화 계획이 어떻게 집행됐는지는 더 따져 물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재정 건전화와 비용 절감이라는 잘못된 지침을 폐기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해 발전공기업의 비전과 운영을 혁신해야 한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서부발전(도급)과 한전KPS(원청), 한국파워O&M(하청)을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다. 발전산업의 하청구조가 만든 김충현 노동자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다. 재정 건전화 강요는 발전산업 하청 구조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고 김충현 노동자를 죽음에 내몬 발전산업의 구조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앞에서 한국서부발전·한전KPS 고발 및 엄중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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