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국민의당 믿고 "손에 장 지진다" 호언?

與 비주류 '탄핵 이탈'·野 일각 '총리 협상' 기대…두문불출 김무성

공세적으로 탄핵 찬성표를 모아가던 새누리당 비주류가 '국회에서 거취를 정해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29일 대국민 담화 이후 크게 흔들리고 있다.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 측 대변인 황영철 의원은 "탄핵 의결 정족수는 반드시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으나, 이미 이탈 흐름이 눈에 보이는 수준이다.

'박 대통령이 거취를 국회에 백지 위임한 만큼 임기 단축을 위한 거국 내각 구성과 분권형 개헌 등에 대한 여야 간 협상을 우선 해봐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일보 후퇴' 논리다. 성난 민심 앞에서 대놓고 '탄핵 반대'를 외칠 수는 없었던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에게 박 대통령의 전날 담화가 탄핵 대오에서 이탈할 명분을 준 모습이다.

'선 협상 후 탄핵'으로 요약되는 새누리당 내 이런 흐름이 더욱 힘을 얻을 경우, 늦어도 9일로 예상되는 탄핵 소추안 표결이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새누리당 비주류 일부뿐 아니라 야권 일부에서도 친박계와 마찬가지로 '분권형 개헌을 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들이 화학적 결합을 이룰 가능성도 여전하다.

이를 반영한 듯,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이날 야3당이 박 대통령 임기 단축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해 야권이 이를 "실천하면 내가 뜨거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국회 안에 예정대로 탄핵을 진행한다는 야3당의 연대가 깨질 것이며, 야권 일각이 결국 새누리당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이 경우 탄핵 투표 자체가 위험해진다. (☞ 관련 기사 : 야3당 "임기 단축 협상 없다…예정대로 탄핵 추진")

새누리 비주류 "朴 대통령, 4월 사퇴 시점 명확히 밝혀야"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가진 후 '박 대통령이 사퇴 시점을 4월로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모아 냈다. 비상시국회의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회동 후 브리핑에서 앞서 여권 "원로들이 모여 말했듯 (퇴진) 시점은 4월 말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진정성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스스로 자진 사퇴 시한을 명확히 밝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4월 하야·6월 조기 대선'으로 의견을 모은 것은 여야가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해 거국 내각 구성과 분권형 개헌을 둘러싼 협상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과 같다. 황 의원은 "대통령의 임기 단축만을 위한 개헌은 명분이 없다"며 그러나 "여야가 합의하면 (권력 체제 개편 등) 많은 부분이 (개헌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황 의원은 다만 "12월 8일 밤까지라도 협상해야 한다고 본다"며 여야 협상의 마지노선을 8일로, 불발 시 탄핵 표결일을 9일로 제시했다. 황 의원은 협상이 안 될 경우 "탄핵 절차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주장에 따라 여야 간 협상을 진행하더라도 협상 불발 후 9일 표결 시 새누리당 비주류 탄핵 찬성표가 '충분'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이미 찬성표를 예고했던 의원들 중 일부가 박 대통령 담화 이후 빠르게 이탈 중인 것이 가시화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 총회에서도 비박계 일부가 이탈 조짐을 내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의총 상황을 보니 어제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면서 "부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석간인 <문화일보>가 전날 박 대통령의 담화 직후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 52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를 한 결과도 이런 분위기 변화를 보여준다.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1명 중 19명이 탄핵 찬성, 2명이 탄핵 반대, 10명이 유보라고 답했다.

유보 10명 중 7명과 반대 2명은 지난 21일 이 신문이 한 같은 설문 조사에서 찬성 의견을 피력했던 이들이다. <문화>는 입장이 바뀐 9명(유보 7·반대 2) 중 6명이 영남권 지역 의원이었고, 2명이 비례대표, 1명이 수도권, 1명이 충청권 의원이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담화 이후 영남 민심이 일부 '대통령 동정론'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한 의원들이 고민에 빠졌다는 추론이 나온다. 실제로 대구를 지역구로 하는 한 재선 의원은 탄핵 찬성표 대열에서 자신을 빼달라는 의사를 시국회의 측에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탄핵하자'던 김무성, 왜 말이 없나…권성동 "즉각 탄핵 반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산을 지역구로 하며 동시에 탈당 흐름을 선제적으로 만들었던 김무성 전 대표의 입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와 비상시국회의 회의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조차 않았다.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어떠한 입장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이 없다.

다만 김 전 대표와 가까운 권성동 의원이 입을 열어 김 전 대표의 의중이 이에 담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탄핵 의결 시 국회를 대표하는 탄핵소추위원장이 될 권 의원은, 이날 의총 후 기자들을 만나 박 대통령이 "자진 사퇴를 하겠다고 하는데 굳이 힘을 뺄 이유는 없다"며 "그렇게까지 합리적으로 자진 사퇴를 하겠다는데 야당이 지금 당장 탄핵하자는 것도 반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4월 (퇴진으로) 가는 게 좋겠다. 퇴진 시기를 정해놓고 협상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둘러싸고 김 전 대표가 청와대에서 4월 퇴진을 못 박아 발표해주면, 비박계 일부라도 친박계와 연대해 개헌·거국 내각 협상 등을 야당에 밀어 붙여보겠다는 딜(거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관건은 따라서 탄핵 투표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비주류, 그 중에서도 분권형 개헌을 원하는 비주류와, 마찬가지로 개헌과 거국 내각 협상 의지가 여전한 야권 내 일각이 '개헌'이라는 공통의 이해로 모일 가능성이다. 이 결합이 이루어질 경우 탄핵 투표는 부결되거나 더 나아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당 김동철 "협상하자"…'개헌'으로 '탄핵' 막나

여기서 다시 시선은 국민의당 쪽으로 쏠린다. 국민의당 내부 중 호남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위한 협상을 하자는 주장이 이날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당의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오전 "어제 대통령의 담화를 단순히 꼼수다, 획책이다 그렇게 폄훼하고 넘어가는 것이 100% 옳은 길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은 "탄핵의 끈을 놓아선 안 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하지만 탄핵 전선이 약간 흐트러진 것도 사실이 아닌가"라며 "탄핵 명분을 공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대통령의 1% 진전성이라도 믿고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 퇴진 일정을 국회가 논의하고 책임총리를 논의하는 것이 맞다"며 새누리당과의 협상을 주장했다.

김 비대위원은 국민의당 차기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임기는 내달 2일까지다.

국민의당 소속이자 박주선 국회부의장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박 부의장은 "더이상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국민이 바라지 않는데 대안을 모색해야 않겠나. 범국민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급진 진보세력으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우리가 주장하고픈 내용을 못한다면 수권정당의 자세도 아니고 국민에 대한 예의도 도리도 아니다"라고 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이날 야3당이 임기 단축 협상 거부를 "실천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이 같은 야권 내 일부 기류와 비주류의 '선 협상 후 탄핵' 흐름이 가속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설명도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나하고 손에 장 지지기로 내기를 한 번 할까요"라며 "그 사람들(야 3당)이 그걸(협상 거부) 실천하면 내가 뜨거운 손에 장을 집어 넣을 것"이라고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9일 표결시 "가결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본다"며 "우리당 내부 사정도 물론이지만 야당 정치인들도 다른 생각을 하실 줄로 믿는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심상정 상임대표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만나 박 대통령 탄핵안을 흔들림 없이 공동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이 같은 탄핵 연대가 머지않아 깨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상황을 종합하면 탄핵 투표 '캐스팅 보트'이자, 동시에 부결 '리스크'는 새누리당 영남권 비주류와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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