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시간 공전…'소수당' 새누리, 강경 투쟁 시작?

보이콧·농성·난입…기싸움에 국회 파행, 얻은 것은?

정세균 국회의장 20대 첫 정기국회 개회사에 반발해 시작된 새누리당의 '의사일정 전면 거부(보이콧)'가 촉발 약 28여 시간 만에 해제됐다.

정 의장이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사회권을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 넘기는 양보를 하면서다.

다만 정 의장은 새누리당이 요구한 방식의 사과나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이날 오후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민생안이 제 때 처리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정기국회 개회사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발에 대해서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 의장의 사퇴와 사과를 요구하며 의장실 난입, 피켓 시위, 해임 촉구 결의문 제출 등의 집단행동을 벌여 온 새누리당은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된 20대 국회 첫 정기회부터 체면을 크게 구긴 꼴이 됐다.

"끝장 보겠다"던 새누리…사과 못 받고 일정 복귀

전날부터 무력 시위를 벌여 온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김성태 의원을 '반장'으로 하는 무기한 농성을 벌일 계획까지 짜두었었다.

농성 장기화를 앞둔 새누리당 의원들은 '복장 정비' 등을 위해 예결위 회의장을 나섰었으며,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을 만나 "주말까지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세균 의장이 사회권을 국회 부의장에게 넘길 테니 이날 중 추경안을 처리하자는 입장을 내며 상황은 급물살을 탔다.

새누리당은 당초 정 의장에게 △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과 △ 재발 방지 약속 △ 사회권 부의장에게 이양 3가지를 요구했으나, 결국 사회권 이양 달성에 만족하고 의사 일정에 복귀하기로 했다.

주말이 다가오는 가운데 '우병우 지키기'에 급급해 제 입으로 시급하다고 주장해 온 추경안 처리를 미룬다는 비판이 거세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가 만든 초유의 與 '보이콧'…'野 욕하더니'

20대 정기국회 첫날부터 벌어진 국회 파행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에 반발한 새누리당이 1일 의사일정 전체를 보이콧하며 시작됐다.

정 의장은 당시 본회의장에서 고위 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특별 수사기관 설치를 논의해달라고 여야에 당부하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언급했다.

그는 "최근 우병우 수석과 관련한 논란은 국민 여러분께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면서 "검찰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당사자가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라고 했다.

또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다"면서 "그런 과정이 생략되면서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관련 기사 : [전문] 초유의 여당 '보이콧' 부른 정세균 의장 개원사)

정 의장의 이 같은 개회사를 듣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며 고성을 지르고 항의하던 끝에 본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새누리당 의원 70여 명이 1일 밤 11시께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정세균 의장과 대치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정세균 의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아니 말이야.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고 사과를 못하면 사퇴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정세균 '유감 표명' 의사에도 제 손으로 출구 봉쇄

이들은 곧이어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고 정 의장 해임촉구결의문을 채택하며 의장의 사과 및 사퇴를 요구했다.

기어이 1일 밤 11시께엔 의장실에 70여 명이 집단 난입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한선교 의원은 경비 직원의 멱살을 잡아 '동물 국회'라는 빈축을 샀고, 다른 의원들도 집기를 던지거나 반말 고성 난동을 부리며 2시간가량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항의 방문한 의원 일부가 음주를 하고 고성을 질렀다"고 밝히기도 했다.

날이 바뀌고 '투쟁 2일 차'로 접어든 새누리당은 더욱 강경 일변도로 사태를 끌어갔다.

정 의장이 "국민께 송구스럽다. 새누리당의 문제 제기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란 유감 표명을 할 수 있다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밝히며 한발 물러섰지만, 새누리당은 이 같은 '출구'도 걷어찬 채 국회 파행 장기화에 앞장섰다.

이정현 대표는 "쉽게 물러설 것 같았으면 시작도 안 했다"며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사회권 이양 등을 요구했고, 이를 지켜보던 야당은 "시급하다던 추경부터 처리하자"고 새누리당을 압박했다.

친박 비박 불문 강경 투쟁…20대 내내 계속될까

그러나 새누리당은 결국 로텐더홀 무기한 농성이라는 계획을 접으며 정 의장의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 없이 이날 오후 6시 30분께 본회의장으로 돌아갔다.

그 사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는 야당 의원들만 참여한 채로 진행되었고, 두 후보 다 장관으로서 '부적격하다'는 보고서가 채택됐다.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도 새누리당 위원들이 전원 불참해 '반쪽'으로 진행됐다.

"정세균은 암과 같은 바이러스 악성균(염동열)" "정세균, 중증의 대권병에 오염(이정현)"과 같은 새누리당 발(發) 막말 어록이 또다시 수두룩 쌓이기도 했다.

지난 이틀간 싸움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성과라곤 친박 비박을 불문하고 모처럼 '단일 대오'를 형성한 것이 사실상 유일한 셈이다.

여소야대 국회가 만드는 이전과는 상이한 역학 관계에 적응 못 한 새누리당이 '강경 일변도'의 대야(對野) 공세를 계속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 의장의 개회사 하나를 두고 점거·연좌·피켓시위·보이콧 등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썼던 것부터 새누리당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대선 정국까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 싸움'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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