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구조조정? 비정규직만 잘린다!

[기자의 눈] 죽거나, 잘리거나…전쟁터 같은 일터

사망자 : 송 모(45) 씨
소속 :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 진성CE
장소 : 2야드 도장1공장 블라스팅 작업장
사망원인 : 2842호선 S40(s) 블라스팅 중 컨테이너와 고소차 사이에 가슴이 협착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울산에서 비보가 전달됐다. 하청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세 번째 사망 사고였다.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블라스팅 공장 내에서 작업하다 사달이 났다고 현장 노동자들은 이야기했다. 이날 공장 내 총 100개의 작업등 중 27개가 꺼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것은 죽음의 끝이 아니라 과정에 불과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뒤, 다시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이틀 연달아…. 굴착기에 끼어 사망(18일)하고, 지게차에 깔려 숨졌다(19일). 역시나 어이없는 죽음들이었다. 2016년 4월이 지나기도 전에 올해만 5명의 노동자가 죽은 셈이다. 이중 3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하루 5명이 죽어나가는 대한민국

"허 기자님, 한 번 뵙지요."

이렇게 연달아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한 달 전으로 기억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내심 기대했다. 그간 일어난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요지는 "답답하다"는 거였다. 안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하청업체에 지속해서 요구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단다. 자기네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억울함도 호소했다. 자기네만 집중포화를 받는 듯하다고 했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일하다가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자기네만 너무 집중해서 쓰는 게 아니냐는 토로였다.

아무 말 안 하려다가 그 대목에서 한마디 했다. 현대중공업에는 사내하청지회라는 하청 노조가 있기에 언론에서 관심을 가진다고. 하청 노조도 없는 곳에서는 그런 소식도 언론에 전하지 못하기에 그런 듯하다고 했다.

사실 현대중공업 관계자의 '왜 우리만 그렇게 비판하느냐'는 말은 사실 반은 맞는 말이었다. 노동부 집계로 2014년 한 해 동안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1850명이다. 보수적으로 잡은 통계에서도 하루에 5명이 죽고 있다. 현대중공업 그룹에서 2014년 한 해 동안 13명이 죽었으니 전체 사망자 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일지도 모른다.

매년 산재 사망자수는 줄어들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2014년 한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사망자 수(357명), 1991년 걸프전 때 미군 사망자 수(382명)보다 약 5배나 높은 수치다. 이라크전 종전 때까지 사망(총 4412명)한 미군 사망자 수(1년 평균 490명)보다 3.6배나 많다.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동안 사망(총 2346명)한 미군 사망자 수(1년 평균 180명)보다 10배나 많은 수치다.

물론 전체 인원 대비 사망 비율을 봐야겠지만, 사망자수로만 본다면 전쟁터 병사 못지 않게 위험한 삶을 한국 노동자들은 살고 있는 셈이다. 말 그대로 '산업 역군(役軍)'이다.

올해 최소 2만 명 이상 해고되는 하청 노동자들

주목할 점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이런 죽음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공개된 노동부 통계자료에는 1850명의 죽음에 '등급'이 매겨져 있지 않다. 누가 더 많이 죽었는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다른 여러 수치와 통계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이 죽고 있다는 사실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중소 사업장일 경우, 하청업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들 사업장에서의 사망률은 대형 사업장에서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조선소도 마찬가지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2014년 조선업종에서 37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이들 중 3분의 2 이상이 중소 사업장에서 일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수백 명의, 아니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조선업 불황이라는 딱지가 붙여진 채 길거리로 쫓겨나고 있다. 2014년 12월 말 4만1059명이었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은 2016년 3월 말 기준으로 3만331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1년 3개월 사이 7742명이 사라진 셈이다. 이 수치는 매일 업데이트되고 있다. 죽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감사해야 할까.

2016년 1분기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배는 3척에 불과하다. 금액으로 2억 달러다. 해양플랜트 관련 수주는 2014년 11월 이후 전무하다.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청 노동자들이 사라지는 이유다. 이러한 현상은 거제에 있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조선업종 노조에 따르면 남은 해양플랜트 일감은 2016년 6월부터 급격히 감소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올해에만 최소 2만 명 이상의 하청 노동자가 대량해고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워낙 하청 노동자들이 많기에 이들을 밀어내면 앞으로의 물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조선업 노동자 20만 명 중 하청 노동자는 14만 명 정도 된다. 해양플랜트 쪽은 하청 비중이 90% 가까이나 된다.

아직 조선 '빅3'(조선, 대우, 해양)에는 조선건조 관련 1.5년~2년 정도의 물량이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고 회사 측도 판단하는 듯하다. 파업이라도 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헐값에 사용되다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그들

답답한 일이다. 개미처럼 일해 온 하청 노동자들이다. 노조라도 있으면 구조조정의 파고 속에서 한목소리라도 내볼 텐데 그러지도 못한다. 이들이 조선소 내에서 해온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위험한 일들을 떠맡아 왔다.

하청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도장(16.7%) 일은 원청 노동자들이 가장 꺼리는 업무다. 유해 물질을 취급하는 업무로 인식돼 있을 뿐만 아니라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할 경우 폭발 및 질식 위험이 있어 조선소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원청 노동자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한다. 2014년 기본급 기준으로 2년차 하청 노동자가 원청 노동자의 73.8%를 받았다. 성과금 등을 합하면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자녀 학자금 지원 등은 언감생심이다. 같은 작업복을 입고 같은 조선소에서 일해도 등급은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 일은 비단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된 일일까. 그건 아닐 게다. 대다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 일이다. CCTV 설치로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아파트 경비원들, 한 달 120여만 원이 고작인 인건비도 아끼겠다며 해고되는 청소노동자들, 열정만 착취한 뒤 6개월 뒤에는 계약해지 되는 사무 계약직들…. 필요에 따라 헐값에 사용되다 이내 상황에 안 좋아지면 헌신짝 버리듯 버려지는 그들이다.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이 심각한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사회에서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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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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