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이후부터 분단이 이루어졌다고 보면 70년간 분단되어 온 한반도의 실체를 간을 조리면서 실감했다. 한국 전쟁 이전에도 남과 북이 국지전을 벌였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참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이에 대한 정치적 뒷담화와 해석들은 차치하고라도 참으로 악몽 같은 며칠간의 시간이었다.
전쟁의 위협을 겪으면서 지난 대선 때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당시 우리는 잠시나마 복지 국가의 꿈을 꿨다. 맞춤형 복지(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격돌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는 복지 국가를 하게 될 줄 알았다. 다만, 증세 없는 복지 국가를 제시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 미심쩍기는 했으나 아무튼 복지 국가 논쟁에 불을 붙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복지국가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강력하게 복지 국가를 제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지 않아 깨지게 되었다.
전쟁과 복지의 미묘한 관계
역설적이게도 복지는 전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너무나 전폭적이어서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 자체가 비극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가족 관계와 사회관계가 파괴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게다가 범죄와 질병의 창궐로 사람들의 삶은 지옥 같은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는 해당 국가든 국제 사회든 기본적인 복지를 제공하도록 만든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복지 국가'를 천명했던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에 근거하여 전쟁으로 인한 빈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 보장 제도의 확충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 국가 건설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또한 리처드 티트머스가 지적하였듯이 전쟁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유대감을 갖도록 하여 평등주의와 집합주의(collectivity) 국가 개입의 확장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복지 국가를 가능케 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 중 방임적 상황의 혼란과 공포보다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더욱 안전하다는 경험과 전쟁 피해에 대한 반대 급부의 기대 심리 등이 복지 국가 건설에 전제적 요건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복지 국가'라는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 측에서 독일을 '전쟁 국가(warfare state)'로 규정하면서 연합국은 평화를 추구하는 '복지 국가(welfare state)'로 규정하는 정치적 선전을 펼쳤다는 것은 명백히 알려진 사실이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조국에 바칠 것을 요구했고, 조국(영국)은 국민들에게 전쟁이 끝나면 복지 국가를 만들어서 보답하겠다고 했다. 물론, 처칠은 베버리지 보고서의 대안을 거부하여 전후 노동당에게 전권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복지 공약으로 국민의 충성심을 자극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복지는 내부 국방
국방(national security)과 사회 보장(social security)의 관계는 밀접하다. 전자가 대외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대내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평화 시에 보훈 복지와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를 충분히 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전쟁 국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 보장을 중심으로 국가 복지를 튼튼히 하는 것이 곧 국방이다.
그런가하면, 양자는 대립적 관계에 있기도 하다. 특히 국가 예산 분배에서 국방비를 우선할 것인가, 복지비를 우선할 것인가가 긴장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영국이 한국 전쟁에 거액의 군사비 부담을 지게 되자 무상 의료 복지 제도인 국민 보건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예산을 삭감하였다. 이에 영국 노동부 장관이 사회 보장 예산 삭감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도 하였는데, 그 당시 군비와 사회 보장비 지출 논쟁이 벌어져 '총이냐 버터냐(guns or butter?)'는 유명한 질문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 예산과 복지 예산이 동반하여 상승했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기도 하다. 분단국가이며 내부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선택했던 현명한 정책 노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평소의 복지체계가 국방의 초석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복지 국가
전쟁과 복지의 관계는 밀접하면서도 대립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전쟁이 아니라 복지라는 점이다. 야만적인 전쟁 국가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는 복지 국가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복지 국가는 민간의 자선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제도화된 장치를 통해 국가의 책임 아래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객관적 욕구(need)에 따라 분배되는 제도적, 체계적 장치를 마련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2008년 1월에 채택되고 그 해 10월과 2012년에 수정 보충된 북한의 사회보장법을 보면 제2조에서 대상자를 노인, 장애인, 아동에 국한하고 있다. 전형적인 선별주의적 복지 체계이다. 아마도 교육, 의료, 주거 등은 사회주의 방식으로 제공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와 노선이 유사하다. 또한 같은 법 제4조에서는 보훈 대상자들에 대한 우대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보다 앞선 규범으로 볼 수 있다. 국가를 위해 생명을 담보하거나 희생한 사람들과 가족에 대해서는 국가가 일차적, 우선적으로 보호와 보장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남한과 북한이 전쟁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한 통일은 어렵다. 통일이 되더라도 오히려 재앙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평화적인 복지 국가를 추구하는 것이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에 있는 금강산을 한민족이 공유하려면 일단 서로 잘 먹어야 한다. 그게 통일을 위한 복지 국가를 구축하는 길이다.
남한도 북한도 평화를 추구하는 복지 국가 건설을 약속하자. 더 이상 공포 마케팅은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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