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호남 정치인'을 버리고 싶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호남, 야당의 텃밭인가 무덤인가?

축구인의 신조가 있다. 10개의 계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 번째 계명이 "우리는 승리를 위하여 경기한다"이다. 축구라는 경기는 승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친선 경기라 할지라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기기 위한 것이므로 친선 경기 도중에 거친 반칙 때문에 심판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축구 경기에서 최대의 악은 승부 조작이다. 이기지 않으려는 경기를 하는 것은 '반(反)스포츠적'인 행위로서 축구인의 신조 제1의 계명을 어기는 중대한 범죄이다.

정당의 존립 목적은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소수 정당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정권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당 정치는 마치 축구 경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정권을 잡으려는 의지가 없는 정당이 있을까?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이 그와 같다. 정권을 찾아오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5공 시절 관제 야당이라고 했던 민한당(민주한국당)보다 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지배 체제에서 편안한 제2당의 지위에 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다. 호남 지역을 밑천으로 하여 전국 정치에서 승리는 못 하더라도 제2당의 몫을 누리는 데 길들여져 있는 것 같다. 자기들 내부에서 자리를 놓고 싸울 때에는 그렇게 사납고 치열하면서도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하는 전투에서는 왜 그렇게 너그러운지 정치적 승부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안락한 2위?

정부와 여당이 아무리 거짓을 행하고 우격다짐의 정치를 해도 각종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에 승리를 거두고 있다. 최근 4.29 재·보궐 선거조차 새정치연합은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새정치연합은 국회에서 압도적인 제2당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굴욕을 당해도 국회 내에서는 여전히 굳건한 2위다.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참패를 당해도 새정치연합은 여전히 제2당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개혁적인 입법과 예산이 좌절되더라도 그것은 새누리당의 전횡 때문이라고 주장하면 자신은 면책된다고 보는 것이 제2당의 입장이다. 호남 지역은 어차피 새정치연합의 텃밭이고, 작지만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이 자그마한 텃밭에서 밀려나지 않는 것이 호남 정치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진보 정당은 정부와 여당이 "종북"이라고 낙인찍으면 일어서기 힘들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이 새정치연합에는 그다지 나쁠 게 없다. 그러한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입장은 제2당 유지에 프리미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 구도 속에서 제2당의 지위는 매우 안정적이고 안락해 보인다.

장권을 잃은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새정치연합은 정권 교체나 권력 투쟁의 의지와 능력이 급격히 소멸되었다. 그래도 제2당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새누리당 정권이 진보 정당을 억지로 찍어 눌러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새정치연합은 끊임없이 호남당으로서 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지형이 이렇게 고착화되니 새정치연합 정치인들은 당 내에서 제한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남 유권자는 정치적 인질인가?

새정치연합은 누가 뭐래도 호남당이다. 호남에서 적당히 호남 정신과 호남 민심을 팔면 정치적으로 장사가 된다. 호남 정신이나 호남 민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호남"이라는 단어를 내세우면 기본적으로 얻는 게 있다. 즉, 영남 패권주의를 대변하는 새누리당에 맞서는 그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것이 "호남"이다. 그러므로 호남 지역에서 호남을 대변한다든가 호남 민심을 받들겠다든가 호남 정신을 지키겠다가고 하면 뭔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호남당에 속한 사람들을 새누리당 정치인들과 비교했을 때 이렇다 할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입으로는 늘 호남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남인은 참으로 민망하다. 호남을 팔아서 자신의 공천과 당선을 노리는 족속들 때문에 호남민들은 참으로 창피하고 분노하게 된다. 최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과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전남과 광주에서 당선됐지만 전체적으로는 새정치연합을 견제할 만한 새로운 세력은 형성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호남 유권자들이 호남 정치권의 물갈이를 강력히 소망하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나물에 그 밥이 차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충청권의 정치적 위력이 커지면서 호남은 정치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제 "영호남"이라는 전통적인 축이 위협받고 있다. 오히려 영남-충청의 연합적 틀에 호남이 미약하나마 맞서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런대도 호남당 정치인들은 당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호남"이 상징하는 이념이나 의미는 이미 망각했다.

고쳐 쓸까 새칠로 갈까?

호남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심정으로 새정치연합에 채찍질을 가하여 변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새칠로(전라도 사투리) 신당의 창당을 도모할 것인가? 지금 민심은 엇갈리고 있다. 아직은 고쳐 쓰자는 쪽이 조금 더 우세한 것 같다. 김상곤 전 교육감이 혁신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고쳐 쓰기에 대한 희망이 조금 우세해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민심과 여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한다. 새정치연합의 혁신과 신당 창당이 엇비슷하게 엇갈리고 있는 지금의 민심은 향후 어떻게 바뀔 것인가? 결국, 새정치연합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 신당 창당의 압력을 잠재울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김상곤 혁신위원장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로 나타나느냐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될 것 같다.

호남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을 것인가? 경상도였다면 당연히 새누리당이었을 인물들이 새정치연합 깃발 아래에서 호가호위를 하고 있는 마당에, 이들을 쓸어버릴 혁신위원회가 될 것인가 오히려 이들의 힘에 밀려 혁신위원회가 쓸려 나갈 것인가?

텃밭에서 무덤으로

호남의 저항 정신과 개혁 정신을 뭉개면서 이렇게 간다면, 새정치연합에게 호남은 텃밭이 아니라 무덤이 될 것이다. 호남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신장시킬 수 있는 정치 세력을 원하는 것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과 같은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다고는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너무 무기력하다. 독재에 항거하면서 민주 정치 발전을 도모했던 DJ, 영호남 지역주의와 수도권 중심주의를 타파하려던 노무현의 정신이 호남정치의 바탕이다. 이제 신자유주의의 양극화라는 자본 독재에 맞서 저항하는 경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정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호남 지역의 내년 총선은 박근혜 정권이나 새누리당을 심판하기보다 새정치연합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싸워야 할 상대와 싸우지 않는 정당은 더 이상 표를 얻을 수 없다. 홈그라운드에서조차 졸전을 펼치는 팀은 결국 홈 팬들에 의해서 외면당하고 강등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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