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군비 경쟁, 폭탄에 불이 붙다

[정욱식 칼럼] 중국, 오버페이스 시작하나

최근 중국을 다녀온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으로부터 주목할 만한 얘기를 들었다. 그가 만난 중국의 저명한 안보 전문가가 "앞으로 3년간 중국 국방비의 매년 증액 규모가 한국의 국방비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가 약 350억 달러이다. 이 전문가의 말대로 하면, 중국이 3년간 모두 1000억 달러 이상의 국방비를 늘린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이는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 인민해방군 등 군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나오는 얘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언은 여러모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중국의 '100년간의 마라톤'

우선 이러한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김종대 편집장에 따르면, 중국 내에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잠재적으로 한국이 미·일 동맹에 편입될 가능성을 극히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남아시아의 인도,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및 베트남 등과도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 역시 골칫거리라고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아시아-태평양의 세력 균형은 중국에게 더욱 불리해진다. 이에 따라 대규모의 군비 증강이 필요하다는 게 중국 강경파의 시각이라는 것이다.

▲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遼寧)호의 함재기 '젠(殲)-15'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CCTV 캡처

또 하나는 중국의 거대 국가 전략의 변화 가능성이다. 중국은 미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다가 망한 소련을 반면교사로 삼아왔다. 그래서 페이스 조절을 대단히 중시해왔다. 이를 두고 '100년간의 마라톤'이라고 부르는 중국의 전략가들도 있다. 즉 1949년 신중국 건설을 출발점으로 삼아 2049년 도착점에선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100년간의 마라톤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버페이스'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만큼 중국이 대규모 국방비 증액을 공식화한다면, 이는 곧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는 걸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중국이 속도를 높일수록 오버페이스로 인해 중도에 마라톤을 포기하거나 후반부에 속도가 크게 처질 수도 있다. 중국의 딜레마인 셈이다.

병마개가 열리다!

지금까지 동아시아가 그나마 불안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군비 경쟁이 일정 정도 억제된 측면이 주효했다. 비록 중국이 20년 동안 매년 국방비를 10%대로 늘려왔지만, 아직까진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은 군사 대국화를 추구하면서도 국방비를 국내 총생산(GDP)의 1% 미만으로 유지해왔다. 이로 인해 일본의 국방비는 1990년에는 중국의 2배에 달했지만, 오늘날에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미국 역시 2011년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발표했지만, 연방 정부 자동 예삭 삭감(시퀘스터)으로 인해 국방비를 소폭 감축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중국은 아직 공식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국방비 증액률을 대폭 상향하는 문제가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2012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매년 국방비를 소폭 늘려왔고, 특히 이번에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전 세계로 확대키로 한 상황이다. 작전 범위가 넓어지면 전력 투자비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의 상당수 전문가와 언론은 미국이 돈이 없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한국과 일본의 역할 확대를 주문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미국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재편하고 둘 사이를 연결해 한-미-일 삼각 동맹을 추구하려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 역시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회계년도 2016년 국방부 소관 예산으로 5343억 달러(해외 군사 작전 예산 509억 달러 제외)를 제출해 놓고 있다. 이는 전년도보다 8% 늘어난 것이고, 또한 시퀘스터 상한선인 4990억 달러보다 353억 달러가 많은 것이다. 또 오바마 행정부는 지속적인 군비 증강 계획도 내놓고 있다. 펜타곤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470억 달러, 2018년 5560억 달러, 2019년 5640억 달러, 그리고 2020년에는 5700억 달러를 국방부 소관 예산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해외 군사 작전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 내에서 대규모 국방비 증액론이 고개를 든 배경에는 미국의 이러한 계획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은 미국의 군비 증강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위해 군비 증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일 동맹의 성격도 이번 방위 협력 지침(안보 가이드라인) 개정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됐다. 미·일 동맹이 일본의 재무장을 억제하는 '병마개'에서 오히려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하는 '가속기'로 변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미·일 동맹은 군비 증강과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전략적 우위를 확고히 점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를 예의주시해온 중국도 군비 증강 페이스를 높여 미·일 동맹과 격차를 줄여보겠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거울 영상 효과'를 유발하면서 동아시아 군비 경쟁이 본격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 낀 한국의 처지도 더욱 곤란해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미·일 동맹이 한국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기려는 자력이 커질수록 중국이 여기에서 한국을 떼어내려는 힘 역시 강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자화자찬만 하고 있다. 이러한 자만심과 무능력이야말로 한국 외교의 최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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