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은 중앙정부 책임'…박근혜 약속 어디로 갔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보육 예산으로 본 복지 예산 전쟁

요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 폭행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누리과정 예산이 바닥나 '보육대란'이 온다는 얘기가 언론에서 쏟아져 나오니 부모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초부터 누리과정 예산 문제로 지방교육청, 정부, 국회 간에 논쟁이 뜨겁다. 이 논란은 지난해부터 예정된 것이다.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가 2015년 국가예산안을 올리면서 만 3~5세 누리과정 예산을 빼버리고, 그 비용을 고스란히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으로 떠넘겨 버렸다. 이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2015년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였고, 정부와 여당 측에서는 법적 근거가 없는 무상급식에 대한 시·도교육청의 지원을 중단하라고 압박하면서 정부와 시·도교육청 간의 갈등이 심해졌다.

그러나 11월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예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부족한 예산 1조7000억 원 가운데 5064억 원을 목적예비비로 지원하고, 나머지 모자란 부분은 시·도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지방재정법을 개정하는 것으로 여야 간 합의하여 보육예산 전쟁 1라운드는 일단락되었다.

무상보육 예산을 둘러싼 갈등구조

현재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무상보육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보육료 예산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의 문제이다. 특히 무상보육 예산은 정부 간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하다. 먼저, 무상보육을 둘러싼 논쟁을 정리해서 시시비비를 가려보자.

2012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만 0-2세 영·유아 무상보육을 전 계층에게로 확대하기로 하였는데 무상보육 예산은 중앙정부가 50%, 지자체가 50%를 부담하고, 서울의 경우 중앙정부가 20%, 서울시가 80%를 부담한다. 급격히 늘어난 보육 예산에 2013년 서초구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양육수당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서울시의 무상보육 중단 위기가 촉발되었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간에 예산 갈등이 시작되었다.

▲ 지난 1월 29일 인천의 한 어린이집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박 대통령은 "무상보육은 국가(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었다. ⓒ연합뉴스

만 3-5세 아동에게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관계는 조금 더 복잡하다. 만 3-5세 아동 중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동과 유치원을 이용하는 아동이 있다. 어린이 집에 대한 예산은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부담하고, 유치원에 대한 예산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 부담한다. 2013년 3·4세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2014년까지 국고·지방비, 교육교부금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2015년부터 누리과정에 소요되는 모든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마련하는 교육교부금으로 전환하기로 하였다. 정부에서는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지방비 부담금을 교육교부금으로 전환함에 따라 발생하는 지자체 재정 부담 절감분으로 양육수당 재원을 충당하도록 하였다. 이는 당시 논란이 되었던 영·유아 무상보육료에 대한 지자체의 예산문제를 일시적으로 해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에서 부담하는 예산을 모두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 지방교육청과 지자체 간에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앙정부의 입장은 이렇다. 지난해 2월에 영유아보육법시행령(제23조)을 개정해 무상교육 비용을 '교육교부금'으로 부담한다는 규정에 따라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시·도교육청에서 먼저 지방채를 발행하여 누리과정 예산 확보 노력을 한다면 국고 5064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도교육청 입장은 이렇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서 교육교부금은 교육기관 및 교육행정기관에 한정하는데, 유아교육법 시행령과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적용하는 것은 상위법에 배치된다. 또한 올해 예산은 지방채로 해결하더라도 교육교부금 증액 없이 매년 지방채 발행엔 한계가 있어 무상보육 중단 위기는 조만간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더해 시·도교육청과 지자체 간 마찰까지 불거지고 있다. 지난 18일 강원도의회에서 강원도교육감은 영유아보육법상 지자체가 보육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강원도는 누리과정 예산은 보건복지부가 아닌 교육부가 편성해 교육청으로 내려 보내는 것으로 교육청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반박하면서 시·도교육청과 지자체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시·도교육청과 지자체가 갈등하는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보육은 중앙정부(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예산 부담을 지방에 떠넘겼기 때문이다.


복지 예산 떠넘기기

중앙정부가 지방에 예산을 떠넘기는 문제는 누리과정 예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복지예산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2008년 기초노령연금 도입부터 2009년 양육수당 신설, 2010년 장애인 연금, 2011 영유아 보육료 확대, 2013년 3-4세 누리과정 도입, 2014년 기초연금까지 국고보조사업을 확대하면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 예산의 경우 2005년 25.0%이던 사회복지 예산이 2014년 29.6%로 4.6%포인트 증가한 반면, 지자체는 동일기간 동안 13.3%에서 24.5%까지 8.8%포인트 증가하였다. 2005년 이후 지난 9년 동안 중앙정부 복지예산이 연평균 8.8%씩 증가했으나, 지자체는 연평균 증가율이 14.4%로 중앙정부보다 2배가량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재정 결정권이 없는 지자체에서 해결책은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앙 정부에서는 재원 대책 마련 없이 지방으로 예산 부담을 전가하여 예산 갈등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복지 재원구조 논의해야

복지 예산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근본적인 재원 대책 마련이 없이 정부 재정 부담 책임을 외면하고, 지자체와 시·도교육청과 예산 논쟁을 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지난해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국민에게 은연 중 복지 피로감이 쌓여 무상복지에 대한 반발까지 확대되고 있다.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추가적인 복지제도의 확대는 물론 기존의 복지제도마저 흔들릴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복지 예산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려면 재원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첫째, 기본적으로 복지 재정 분담구조를 손질해야 한다. 국가복지사업은 중앙재정으로, 지방복지사업은 지방재정으로 충당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다. 재정 부담의 책임을 결정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무상보육,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과 같이 보편적 성격을 갖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둘째, 국가복지사업의 집행을 지자체에 위임할 때 국가는 지방의 재정 부담을 줄여 주어야 한다. 또한 지자체에 소요되는 복지 사업비를 포괄적으로 교부하여 자치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교부금'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더 근본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폭넓게 검토해야 한다. 복지 지출 구조조정이나 지방채를 발행해 빚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여당 대표도 인정한 사실이다. 복지를 확대하는 만큼 조세 부담을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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