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文대통령은 보수정부 9년의 희생양"

"미국, '준비된 군사 행동' 구상하는 듯"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지난 7월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군사회담을 추진했을 때 미국이 이에 상당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정착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고뇌를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26일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을 맞아 통일부‧노무현재단‧서울특별시가 '위기의 한반도 평화구축 해법은 무엇일까'를 주제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공동 주최한 기념 강연에서 문 특보는 현재 한반도 위기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아주 초기 단계"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늘은 대통령 특보가 아니라 학자로서 개인적인 견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운을 뗀 문 특보는 "북미 사이에 불신을 해소하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면 결국 미국과 북한이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밀리에 특사를 보내서 극적으로 타결하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와 더불어 남북 간 대화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베를린 구상에서) 적십자회담과 군사회담을 제안했는데, 군사회담 제안에 대해 미국이 엄청 불쾌해했다"며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이에 대해)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고 전했다.

문 특보는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은 평화적 목적으로 북한과 대화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에 주도권을 준다고 했고, 우리 입장에서는 휴전선이나 서해에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갈등이 고조된다"며 "남북 간 대화가 있어야 미북 간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양측이) 우리를 통할 수 있는 것"이라며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반도 위기, 1976년 미루나무 사건 때보다 위중하다

문 특보는 현재 한반도의 위기 상황이 지난 1976년 미루나무 사건 때보다 엄중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당시에는 우발적인 사고로 미국의 군사적 행동도 갑작스럽게 전개됐지만, 지금은 허버트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에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미뤄볼 때 미국이 준비된 군사행동을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2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식에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북한은 또 여기에 맞춰서 미국에 강대강으로 나오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우리가 힘이 있어서 양쪽을 다 막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힘이 없고 중국과 러시아는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서 "여기에 안보가 중차대한 시점인데도 야당 대표는 (청와대-여야 대표 회동) 참석하냐마냐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회동 불참 의사를 밝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에둘러 비판했다.

문 특보는 "북한은 핵 탄두를 최소 10개에서 많으면 50개까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북한이 100개 이상의 핵 탄두를 보유하면 지금과 협상 태도가 또 달라질 것이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 그래서 북한이 더 이상 핵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조속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결국 현재 한반도 위기 극복에는 무엇보다 북미 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문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소 돌출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국무부는 대화하자는 입장으로 보이고 맥마스터 보좌관도 대화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대통령의 심기를 반영하다 보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철저한 군인이지만 지금은 외교적 협상을 해야 할 때라고 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화가 많이 난 것 같아서 예측불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대통령의 핵심 관료들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혼자서 군사 행동을 하겠다고 해도 관료들이 이를 쉽게 수락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특보는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제일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서 북한과 대화하게 하고,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할지 고민해야 한다"며 "미국에 군사행동은 안된다, 동맹을 잃을 각오를 하라고 하면 미국 대통령도 함부로 할 수 없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문 특보는 "10.4 정상 선언에 46개의 합의 사항이 있다. 지금 유엔 안보리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 중에 28개 사항에 대해서는 남북 간에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게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이야기했던 선이후난(先易後難 : 쉬운 것부터 풀어간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지금 단계에서 대화는 어렵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좀 자제해주면 당장 할 수 있는 사안들"이라며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문재인, 지난 9년 보수 정부의 희생양

문 특보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가 무엇으로 보이냐는 질문에 "촛불 민심이 지향하는 가치가 평화와 대화이고 대통령이 생각하는 본인의 임무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며 "북한만 좋은 행태를 보여주면 대통령이 밀고 나가기가 쉬운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시험 등의 도발을 하면 미국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말하고, 이렇게 하면 미국과 같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문 대통령이 미국에 너무 경도됐다고 하는데 대통령한테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고 답했다.

▲ 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문 특보는 "북한은 핵이 있고 우리는 핵을 가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한테 핵 억지력을 주는 것은 미국의 핵 우산이다. 한미동맹을 가깝게 하지 않으면 핵우산 보장도 힘들고 한미동맹 간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만약 미국이 북한에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하더라도 우리는 모르고 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도 (문 대통령은) 촛불 민심과 대통령으로서의 초심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미국을 고려해 어떻게 상황을 반전시킬 것인지 고뇌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이런 부분을 이해하셔서 문 대통령을 지지해주셨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은 지난 보수정부 9년동안 이뤄졌던 제도와 정책의 희생양이 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해서도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도 사드배치 반대하고 지금도 사드의 군사적 유용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드 배치 결과로 가져오는 민생 경제의 부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특보는 "그런데 북한이 저렇게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고 미국에서는 2만 7000여 명의 주한미군 보호를 위해서 사드가 필수적이라고 하면서 사드 도로 미국으로 가져가고 주한미군을 감축한다고 하면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추가 사드 배치에 미국으로부터의 상당한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국민들의 불안을 원치 않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시각으로 보더라도 대통령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지는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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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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