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환주 기자 | 2015-12-02 14:35:54 | 2015-12-03 01: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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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지난 달 19일 <제국의 위안부> 쓴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기소했다.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했다는 이유다. 검찰의 개입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박유하 교수는 검찰이 자신의 의도를 곡해했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애초 한국에서 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을 향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 정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쓴 책"이라며 "그런 책이 위안부 할머니를 비판하거나 폄훼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2012년 봄, 민주당 정권이었던 일본에서 사죄와 보상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위안부) 지원단체가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법적 책임'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난 일이 있었다"며 "한국을 향해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때"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지원단체의 주장대로 움직였지만, 그 지원단체의 주장은 처음에 '군인이 강제로 11살짜리 소녀를 끌고 갔다'고 생각했던 때와 비교해 한 치도 달라져 있지 않았다"라며 "그러한 정황에 의문을 품고, 지원단체의 주장에 과연 문제가 없는지 검증해보고자 했던 것"이라고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위안부 피해자 109명은 2006년 정부가 대일외교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아 행복추구권 침해를 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11년 '일본군 위안부와 원자폭탄 피해자 문제의 해결에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박유하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데 힌트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2013년 8월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일본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는 반면, 지원단체는 위안부 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자 했다"며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 중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 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춰 고찰해 보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찰 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다"며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보상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향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강조했다"고 책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제 책은 그동안 위안부문제에 관여해 온 주체들을 모두 조금씩 비판하고 있다"며 "이는 다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세월이 20년이 넘은 이상, 각 관계자들이 그 원인을 자성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데 힌트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책에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똑같이 전쟁터에 동원하면서 조선인 일본군에게 했던 보장, 즉 생명과 신체가 훼손되는데 대한 보장 제도를 일본인 여성을 포함한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서는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근대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적 사고, 매춘 차별에 의한 것"이라며 "그것은 근대국가의 시스템 문제이니 그런 인식에 입각해 사죄와 보상의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의 책이 고발당한 것은 책이 나온 뒤 무려 10개월 후이다. 제 앞에 던져진 것은 로스쿨 대학생의 조악한 독해로 가득한 고발장이었다"며 "이들의 해석은 오독과 곡해로 가득했지만 이들이 읽은 대로 한국 사회에는 '박유하 책은 '위안부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의 형사 기소를 두고 지식인들도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박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주장하는 이야기가 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하나 이를 법의 잣대로 해결하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철 연세대 교수, 장정일 소설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 금태섭 변호사, 홍세화 작가, 류근 시인, 고종석 작가 등 190명의 교수, 문화예술인, 언론인들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제국의 위안부> 관련 검찰의 기소 결정을 비판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제국의 위안부>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하지만 종군위안부는 애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이라고 선을 그은 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런 이유에서 검찰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론을 국가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이라며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년 전 구속됐으나 음란풍속 관한 타당한 합의기준이 생겼는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소설가 장정일 씨는 "학문영역의 새로운 시각이 학문의 장에서 충분히 보호돼야 한다"며 "만약 문제가 있다면 학문의 장에서 논박이 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법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나는 약 20년 전 쓴 소설이 일반상식에 반한다는 이유로 구속‧수감됐지만 그 이후 한국사회 음란풍속에 관한 타당한 합의기준이 생겼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1997년 발표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구속·수감된 바 있다.
그는 "학문의 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를 시민‧사회나 학계 등에서 하나하나 확인해야지 법이 끼어들어 작가를 욕보이는 것으로 끝낸다면 이는 시범케이스 밖에 되지 않는다. 기준이나 사회 상식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도 "190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분들 중에서 박 교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상당수 있다"라며 "하지만 그런 분들도 검찰의 기소는 학문의 장을 막는 것이기에 이번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의 내용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지금의 사태를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비판과 반대를 확실히 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법정에 맡기는 것을 반대하는 게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철 연세대 교수는 "검찰 기소로 이제는 이 책 관련 논의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며 "이 책을 비판하면 마치 검찰 기소에 동의하는 식으로 돼 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발이 오히려 학계의 건전한 토론장을 막아버리는 결과가 됐다"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 책을 법정이 아니라 학계로, 학문의 장으로 다시 돌려 법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건전한 학문적 토론과 비판을 통해 이 책의 위치와 가치가 평가되는 그런 구조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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