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퉁'쳤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한일관계 정상화? 스텝만 꼬인 셈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2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회담을 가졌다. 이후 그동안 냉랭했던 한-일 관계가 정상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양국이 정상회담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회담이 끝난 이후 일본에 돌아가 위안부 문제는 이미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끝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위안부의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전 입장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아베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의 시인과 사과는 없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대체 이 '가속화 협의'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서 "어느 정도 일본과 타협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아무런 성과도 없으면서 국민들에게 기대만 갖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회담은 결국 한-미-일이 손을 잡고 중국 압박을 강화하길 바라는 미국의 필요 때문에, 한-일 간 얼굴 한 번 보고 악수하면서 '한-일 관계 이제 더 이상 문제없다'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북한은 지난달 30일 내년 5월에 제7차 노동당 당 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80년 10월 10일 이후 36년 만에 개최되는 이번 회의에 대해 정 전 장관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들어서면서 여러 면에서 군보다는 당 중심으로 갈 것 같은 암시가 많이 나왔다"며 "36년 만에 당 대회를 열겠다는 것은 지난 36년을 총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김정은이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가졌던 25분짜리 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인민 생활을 위한 경제발전과 이를 위한 주변 정세 안정을 좀 더 확실하고 자세하게 정리해서 비전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3년 반 만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가속화하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는데요. 이후 한-일 관계가 정상화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한-일 관계는 정상화 단계에 진입한 것인가요?

정세현 : '정상화'라는 말을 쓰기도 민망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소위 말로 '퉁'치고 넘어간 겁니다. 박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돼있던 시점에 연내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래서 국민들은 이번에 이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고 넘어가려나 하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는 이미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끝난 문제라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는 셈입니다. 한-미-일이 손을 잡고 중국 압박을 강화하길 바라는 미국의 필요 때문에, 한-일 간 얼굴 한 번 보고 악수하면서 '한-일 관계 이제 더 이상 문제 없다'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준 것에 불과합니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를 일종의 '통과의례' 쯤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위안부 문제 협의를 가속화하겠다는데, 이미 지난해 4월부터 올해까지 9번이나 한-일 국장급 회의가 열렸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속화한다는 것이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 겁니까? 아베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의 시인과 사과는 없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대체 이 '가속화 협의'의 목적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일본과 타협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아무런 성과도 없으면서 국민들에게 기대만 갖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완고하게 버티는 일본을 향해 연내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문제입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인정 안 하고 그저 밀어붙인 겁니다. 그래놓고 대통령이 공언했던 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은 누가 지는 겁니까? KF-X(한국형 전투기) 사업도 그렇고 책임지지 않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트렌드' 입니까?

1965년 당시 한-일 협정을 체결할 때도 굉장히 저항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산업화의 종잣돈으로 써야 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협상을 마무 리지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를 받았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겁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미화시키려고 역사 교과서까지 국정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대통령이, 이 문제만큼은 아버지의 잘못을 들춰내서 뒤집으려고 하는 것이 신기하긴 합니다만, 논의를 가속화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일-중 간에 합의했다는 내용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합의를 해놓고 합의했다고 국민들앞에 들이밀고 있는 셈입니다.

3국은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한 '의미 있는 6자 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의미 있는 6자 회담'은 비핵화 조치를 위한 북한의 선(先) 행동과 중국 역할론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연장선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조건이 붙지 않은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연결될 수 있는 사안입니까? 이건 그냥 양쪽 입장을 한 문장으로 붙여놓은 것뿐입니다. 이걸 보고 합의했다고 믿으라고 하니, 국민을 바보로 알고 하는 소리 아닙니까?

프레시안 : 당시 1965년 협정도 사실상 미국의 압력에 의해 체결됐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결국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군사 동맹을 위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국은 원하는 바를 얻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앞서 지난 10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한국의 지배가 유효한 범위는 휴전선의 남쪽"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북한지역으로 자위대가 들어갈 때는 한국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지난 2일 제47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참석 차 방한한 애쉬턴 카터 미국 국방 장관은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은 국제법을 기반으로 한 동맹"이라면서 "국제법 안에는 각 나라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부분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자위대의 북한 진출에 대해 여지를 남겨둔 셈입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가 싫어도,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위대의 북한 진출을 저지할만한 실질적인 장치가 우리에겐 없습니다. 그리고 국제법상으로도 남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기 때문에 제3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별개의 나라가 맞긴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이 사안과 관련해 미국이 우리 입장을 지지하도록 만들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지도 얻지 못했습니다.

한-일 양국 정상은 3년 반 만에 만났지만 오찬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필요로 회담을 했다는 방증입니다. 결국 이 회담이 미국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면, 미국의 확실한 입장 표명을 얻어내는 정도의 성과는 거둬야 했던 것 아닙니까? 물론 어차피 한반도 유사상황에서는 전작권이 없는 우리는 미국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죽을 때 죽을망정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지난 2일 정상회담 차 청와대에 방문한 아베 신조(오른쪽) 일본 총리가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청와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을'의 자세로 일본에 협조를 구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일본은 "관심있게 보고 있다"고만 말했습니다. 강력한 반(反) 중국 경제동맹인 TPP에 참여하면 '균형외교'인줄 아는 박근혜 정부가 TPP 가입에 얼마나 몸이 달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셈입니다.

남중국해 문제만 해도 일본은 할 말 다하고 갔습니다. 아베 총리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미국과 동일한 입장이고, 박 대통령에게 이 입장에 동조하라고 한겁니다.

남중국해에 대한 입장 표명은 우리가 처한 주요한 외교적 딜레마 중 하나입니다. 일단 영해 범위부터 살펴보면, 확실하게 확립된 국제규범이 없는 상황입니다. 해양 강국은 육지로부터 3해리만 영해라고 인정합니다. 3해리 밖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활동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국가들, 예를 들면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뒤늦게 해양 진출에 눈을 돌린 국가들은 12해리를 주장합니다.

중국은 역사적 연원을 언급하며 남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명나라 초 해양 원정대 대장이었던 쩡허(鄭和)가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는데, 그가 거쳐 갔던 곳이 남중국해의 남사군도라면서 그의 해상 활동 기록을 기반으로 중국에 영유권이 있다는 겁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먼저 지나갔던 곳의 근방에 인공섬인 수비 환초(중국명 주비자오·渚碧礁)와 미스치프 환초(중국명 메이지자오·美濟礁)를 만들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이곳이 일대일로(一带一路) 중 '일로', 즉 해상 실크로드의 중요한 전진기지입니다.

미국 구축함은 이번에 이 인공섬으로부터 12해리 내 해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중국의 인공섬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인데요. 중국은 구축함 등을 파견해 대응했구요. 이 부분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일본 아베 정부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편을 들라고 촉구하고 있는 겁니다. 아베 정부는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때문에 미국의 편을 들고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여기에 잘못 끌려들어 가면 독도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곳인데, 남사군도의 일부 섬 역시 중국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미-일의 뜻에 동조해서 중국의 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어지는 겁니다.

또 우리가 미국편에 설 경우, 중국이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지고 우리를 압박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됐습니다. 하나가 꼬이기 시작히니까 사방에서 꼬이는 셈인데, 여기서 우리쪽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앞의 수를 미리 내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대비가 약하다보니 남중국해에 대해서는 미-일에 "알겠다"고 하면서 중국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 된겁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외교 목표가 도대체 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남중국해 훈련은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태평양사령관이 밀어붙였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정세현 :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고 레이더를 돌리면, 태평양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미군 군함이나 비행기들이 사사건건 중국의 손바닥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기존에 자기 바다처럼 쓰고 있던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양으로 가는 길목을 확실하게 차단당할 위기에 놓인 겁니다. 태평양사령관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묵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겁니다.

36년 만의 당 대회, 김정은의 속내는

프레시안 : 북한이 내년 5월 초, 1980년 6차 노동당대회 이후 36년 만에 7차 당 대회를 열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북한의 전반적인 국가 운영 방향이 군 우선에서 당 우선으로 넘어가려는 시도라는 평가와 동시에 경제를 정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정세현 :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김정은 제1위원장이 들어서면서 여러 면에서 군보다는 당 중심으로 갈 것 같은 암시가 많이 나오긴 했습니다. 36년 만에 당 대회를 열겠다는 것은 지난 36년을 총정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뜻인데, 마침 김정은 자신의 집권 5년차이기도 합니다.

▲ 1980년 열린 6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일(왼쪽) 국방위원장이 김일성(가운데) 주석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마지막 당 대회였던 1980년 10월 10일 6차 당 대회 이후 북한은 1980년대 내내 제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구요. 1995년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임을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1996년 연말,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개교 50주년 기념식에서 경제문제에 대해 당은 손을 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군이 경제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이후 1998년 김정일은 헌법을 고쳐서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북한을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북한 경제가 안 좋았던 책임이 당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이 열심히 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당에 책임을 돌리고 손을 떼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군정치를 표방하기 시작했죠.

이 부분에서 김정은은 아버지 시대와 차별화되는 부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시대와 똑같이 갈 수는 없고, 아버지 시대보다 경제가 나아진다는 느낌을 북한 인민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책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열릴 당 대회를 당 중심으로 가기 위한 공식적인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 본인의 호칭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일의 경우 1998년 본격적으로 본인의 통치를 공식 선언하면서 헌법을 고쳤습니다. 그러면서 헌법 전문에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이라고 박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본인은 주석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석의 권한보다도 강화된 '국방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김정은이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당 중심의 기조를 확실하게 가져간다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통치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직함을 가질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지금의 직함에서 변화를 줄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프레시안 : 당 대회를 36년 만에 개최한다는 것은, 북한이 그만큼 체제의 생존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다는 표시라고 볼 수 있나요?

정세현 : 그렇죠. 당 대회는 지난 당 대회를 개최한 이후에 새로운 당 대회를 열 때까지 중간 기간 동안 당의 사업을 종합·정리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지난 36년 동안 북한 경제가 뚜렷하게 좋아진 징후는 없지만, 최근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김정은은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있었던 25분짜리 연설에서 밝힌 것처럼, 인민 생활을 위한 경제발전과 이를 위한 주변 정세 안정을 좀 더 확실하고 자세하게 정리해서 비전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내년 3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중국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세현 : 당 창건일 기념행사 당시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경제적으로 중국이 북한에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사인을 주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당 대회와 연결지어서 생각해보면, 2월 16일 김정일 생일과 4월 15일 김일성 생일 때까지는 특별한 일정을 잡기 어렵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 5월 초면 계절적으로도 여러 희망이 부풀어오르는 시기라고 판단하고 이 때 당 대회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당 대회를 잘 치르려면 북한 주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3월 말이나 4월 초쯤에 중국에 다녀와서 지원에 대한 확약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재화가 별로 없습니다. 외부로부터 지원을 보장받은 이후에 비로소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을 시작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개 일의 결과를 정해놓고 움직입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도 처음에 "당신들이 뭘 해줄 수 있는지부터 이야기 해라"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철도를 연결한다고 해도 얼마를 줄 것인지부터 약속하라고 하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일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북한의 일정을 보더라도 3월 말에 방중을 하는 것이 좋긴 합니다. 내년 4월에는 최고인민회의를 할 텐데, 이 회의에서 전년도 결산하고 예산 통과시키고, 행정부 기구 개편 등등을 하게 됩니다. 이 회의 전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서 중국 최고지도부로부터 큰 덩어리의 지원 약속을 받아내려 할 것입니다.

▲ 지난 10월 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만난 김정은(왼쪽)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류윈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남북, 북-미 관계에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황임에도 북한이 저렇게 당 대회를 개최하려는 것은, 북-중 관계가 원상회복됐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일까요?

정세현 : 그런 측면도 있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의 대외, 대중, 대남 정책이 과거와 조금 다른 패러다임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튀는 것보다는 한 템포 늦게 움직이면서 상대방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대외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 창건 70주년인 지난 10일 한-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핵-경제 병진노선도 언급하지 않았고,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 발전에 필요한 주변 정세 안정 등을 이야기하면서 꽤나 얌전한 내용의 연설을 진행했습니다. 그랬는데 지난 10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이야기는 북한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언사들로 꽉 찾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별다른 반발이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북한은 '줴쳐댔다'는 등 강한 언사로 남한 대통령을 비난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비난보다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 과정에서 북쪽 적십자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던 것처럼, 유화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이 내년 당 대회를 염두에 두고 상황을 관리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자신들의 귀책사유로 인해 유엔 제재에 돌입할 정도의 사고를 치면 중국의 지원을 받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당 대회를 원만하게 치르기가 어려워집니다. 내년 당 대회를 잘 치러내서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려면, 북한이 자기 성질만 부리고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김정일과 김정은의 근본적인 차이도 있어 보입니다. 김일성 주석 때는 대외적으로 벼랑 끝 전술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겠다는 강수를 둔 것도 사실상 김정일의 작품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김정일은 대체로 대미 관계에서 주로 벼랑 끝 전술을 써왔고, 대남 관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행태를 보면 일정 정도는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대신, 평화협정 이야기를 다시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은 북-미 수교를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비핵화까지 연결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북한은 미국과 수교를 한 뒤에, "기왕에 있는 핵도 인정해달라"라고 말하고 버티고 있을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미리 협상 카드를 꺼내지 않았을뿐이지, 사실상 미국에 비핵화 메시지를 전달한 겁니다. 물론 성김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기만전술이라고 하니까 북한이 좀 섭섭하긴 했을 겁니다.

그래서 풍계리 핵실험장의 새로운 장소에서 굴착 공사를 하면서 새로운 핵실험을 준비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을 수 있습니다. 1차 북핵 위기 때도 그랬습니다. 당시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 체결 이후 케도(KEDO,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협상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협상장에서 밀고 당기기가 굉장히 심했는데, 그 때 미국 측 이야기가 북한 사람들이 미국 위성을 통해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미국 위성이 북한 상공을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영변에서 수증기를 내보내는 식으로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번에 풍계리에서 저런 활동을 하는 것도 일상적인 행동인지 미국 관측위성이 북한 상공을 지나갈 때만 보여주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행동이 미국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평화협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달라는 겁니다. 평화협정 체결되지 않으면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좋으냐고 미국에 되묻는 거죠. 기만전술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고도의 사인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항상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인데, 북한이 유연하게 나오는 것을 '아 드디어 굽히고 나온다'라고 해석하면 호기를 놓칠 수 있습니다. 분단된 상태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권은 북한이 군사적으로 남쪽을 위협하지 않도록, 한반도 안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일단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있으면 이쪽에서도 좀 여유를 두고, 대북지원을 좀 완화하고 덩어리 큰 지원도 승인해주면 북한에서도 반응이 올 겁니다.

지난 8.25 합의 이후 지금까지 당국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는데 굵직한 정상회담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합의한 날로부터 70일이 넘도록 우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놓고, 합의 이행하지 않는다면서 북쪽에 책임을 묻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겁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 할 때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더니 왜 당국 회담은 이렇게 미온적으로 나가는 겁니까? 일단 남북이 대화를 하면, 그게 고위급이든 실무급이든 간에 대화가 진행되면 한반도 상황은 요동치지 않습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현재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한반도가 어디 다른 데로 이사 간 줄 알았습니다. 정말 신뢰 프로세스를 잘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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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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