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 시간강사제의 부메랑…무너지는 대학교육

[한국의 워킹푸어]'교수'라 불리는 '초단시간 근로자', 대학강사②

학력이 낮을수록 워킹푸어(근로빈곤층)이 될 확률이 높은 게 전 세계적인 추세다. 학력이 낮을수록 비숙련 노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외적인 집단이 있다. 군부독재정권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교원' 지위가 박탈당한 대학의 비정규직교수(시간강사)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학력자본은 최상위에 속하지만 노동시장에서 지위는 가장 취약한 '초단시간근로자'다. 정년이 보장된 전임교수를 정점으로 위계화된 학계의 질서는 고용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학의 경제적 이익과 맞물려 30년이 넘게 이 부당한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의 워킹푸어는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 비정규직 교수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어느덧 하나의 직업군이 된 시간강사 문제가 대학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2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전편 바로보기 ☞"가방 끈이 길어 슬픈…")

A대 불어불문학과 조교는 국문학과 대학원생이다. 불문과 대학원생이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오겠다는 학생들이 하도 없어 실력과 상관없이 대학원에 오겠다고만 하면 무조건 받아들이죠. 그러다보니 요즘은 대학원 수업인데도 원서를 읽으라고 하면 학생들이 힘들어 합니다. 이대로 가면 학문의 재생산이 불가능하겠죠. 이미 인문학은 고사될 대로 고사됐습니다."

지방 사립대인 이 대학 독문학과 비정규교수(시간강사)가 전한 인문학 대학원의 실상이다. 그는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따봤자 연봉이 1000만 원도 안 되는 시간강사로 전전하는 현실에서 누가 대학원에 진학하겠느냐"며 "자연히 대학원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후학 양성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학문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평균 연봉이 정규직 교수의 1/10 정도에 불과한 시간강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대학사회의 존속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대학 입장에서 지금 당장은 시간강사들을 착취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챙길 수 있겠지만 그 부작용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등 고급 지식인력을 생산하는 대학교육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 등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이들 중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7년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1529명 가운데 68.3%가 미국 체류를, 26.3%는 한국 귀국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 체류를 선택하는 이들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고급인력의 위기상황이 감지되는 셈이다. 이는 세계경제가 지식기반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하나의 '위험신호'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인재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도 고민해야할 문제다. 국가인권위는 2004년 대학 강의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시간강사가 법적인 신분이 보장되지 않고, 의료보험·국민연금 등 4대보험 혜택이 없으며,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상태에 있는 것을 개선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했다.

이주호 차관, 의원 시절에 "시간강사 교원 지위 부여하자"

▲ 친이계인 이주호 교육부 차관은 국회의원 시절 대학강사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차관은 그러나 주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으로 영전한 뒤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지난 2007년 대학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돈을 국고에서 상당 부분 부담하도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다. 교육의 시장주의적 기능을 강조하는 보수적 입장에서 봐도 시간강사 문제를 이 상태로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다.

이주호 차관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시간강사들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할 경우 소요되는 예산에 대해서도 계산해 놓았다. 그는 교원의 법정강의시수 1주당 9시간을 충족하는 '필요전업강사'를 5만2780명으로 잡고, 이들의 최소 임금을 국·공립대 전임강사 평균연봉인 4500만 원의 50% 수준으로 보장하고, 교원 지위에 걸맞게 4대 보험을 보장할 경우 총 1조2913억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2005년 현재 전국 4년제와 2년제 대학에서 부담하고 있는 강의료와 사회보험료는 총 5560억 원에 이르므로, 총 인건비에서 이 금액을 뺀 7353억 원이 추가로 투입이 돼야 한다는 것. 국공립대는 전액 국가가 부담하고 사립대에서 추가로 필요한 인건비 중 국고에서 얼마를 지원할지에 따라 국가가 부담해야할 금액이 달라진다.

어쨌든 이 차관은 일부 낭비예산과 부처 간 중복예산을 파악해 국가전체 예산에서 고등교육 부문의 비중을 늘려 재원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대학도 건물 신증축이나 과도한 이월·적립금 축적을 지양하고 예산을 배정할 때 전임교원 신규 임용과 시간강사 처우 개선에 우선 배정해 교육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차관이 발의했던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이들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압력을 넣고 개정안을 통과시킬 경우 낙선 운동하겠다고 협박했다. 교육위원들은 교육부로 공을 넘기고, 교육부는 미적미적 시간을 끌었다. 결국 17대 국회가 끝나면서 이 차관이 발의한 개정안도 자동 폐기 됐다.

18대 국회에선 법 통과될까

18대 국회에서도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자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지난해 11월 야3당 의원 10명과 함께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현재 교원의 범위를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한정한 조항을 '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 및 강사(연구강사 및 시간강사)'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법안은 교육위에 계류 중이다. 앞서 2008년 8월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 역시 강사의 교원 지위를 회복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18대 국회 임기가 2년 남은 상황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등록금 상한제 논란 등에서 대학의 수익 증대 분위기는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MB정부 들어 더 벼랑 끝에 몰린 시간강사들

지난 연말과 올해 초를 거쳐 영남대 시간강사들은 20일간 파업을 했다. 비정규직교수노조 영남대 분회는 지난해 6월부터 대학 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벌였다. 노조는 시간당 강의료 1만1000원 인상, 강의준비금 5만 원 인상 등을 요구했으나 대학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학생 등록금 동결로 교직원 임금이 동결됐으나 시간강사의 강의료도 동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강의료는 동결하되 강좌당 강의준비금을 5만 원에서 8만5000원으로 인상하라"는 중재안을 냈으나 대학 측은 지노위 중재까지 거부했다.

그러자 영남대 시간강사들은 지난해 12월 21일 학생들의 2학기 성적 입력을 거부하는 등 파업에 들어갔다.
▲ 영남대 강사들은 20일간 대학 측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비정규직법 시행 등 이명박 정부 들어 시간강사들은 더 '벼랑 끝'에 몰렸다. ⓒ비정규직교수노조 영남대분회

하재철 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 분회장은 "정규직 교수의 평균 연봉이 7000-8000만 원이다. 60세가 넘은 교수의 경우 1억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임금 동결과 시간당 5만3000원의 강의료를 받는 시간강사들의 임금 동결은 의미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학 측은 '동결'이라는 입장만 반복한 채 노사협상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파업에 들어간 뒤 대학 측은 12월31일 강의준비금을 5만 원에서 8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노조는 처음에 이를 거부했다.

문제는 성적 입력 거부에 따른 불이익을 학생들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해외 유학이나 타 대학으로의 편입을 준비하고 있는 일부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노조는 해당 학생들의 성적만 학교 측에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대학은 이를 거부했다. 하 지부장은 "경북대, 성균관대 등에서 시간강사들들의 파업 당시 성적 입력이 급한 일부 학생들의 성적만 수기로 입력한 전례가 분명히 있었다"며 "결국 학생들을 볼모로 삼은 것은 대학이 아니냐"고 말했다. 노조는 어쩔 수 없이 대학 측으로부터 연구공간을 추가로 확보하는 성과를 하나 더 따내는 선에서 파업을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하 분회장은 28차에 이르는 '마라톤' 노사협의와 20일의 총파업 등을 거쳐 어렵사리 대학과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더 큰 걱정을 털어놓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확 바뀐 학교 측의 태도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학교와 관계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지난 2008년 노사협상 때는 대학 쪽도 유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이명박 정부가 노조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무조건 밀어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공무원 노조나 철도노조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정부의 입장이 노사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를 거부한 것은 노조가 아니라 대학이었습니다. 지노위 쪽에서도 오히려 대학이 중재를 거부하니까 당황한 것 같더라구요. 협상의 의지가 없었던 것은 학교 쪽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노조에도 분명 영향을 미치겠죠. 영남대는 한때 전체 700여 명 비정규교수 중 노조 조합원이 660명에 이를 정도로 조직화가 잘 됐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노조원이 100명 넘게 줄었어요. 앞으로 현 정부 임기가 3년이나 남았는데 걱정입니다."


돈이 없다구요? 정말?

영남대 강사들의 파업을 앞두고 이 문제가 학내 이슈가 됐을 때, 한 강사가 수업시간에 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똑같이 수업을 하는데 어떤 교수님은 정규직이고, 어떤 교수님은 비정규직인가요?"

이 강사는 수업 시간에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고 나중에 질문을 한 학생을 따로 불러 좀더 자세한 얘기를 해줬다고 한다. 그 질문을 던진 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해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자세한 설명을 듣고 크게 실망하면서 공부를 계속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돈이 없다." 시간강사들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대학들이 되풀이해온 말이다. 또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반응으로 이어진다. 돈이 없기 때문에 시간강사들의 강의료를 현실화할 경우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더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학생들과 시간강사들을 대립구도로 놓으려는 계산이다.

정말 대학들은 돈이 없을까? 2008년 말 현재 전국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 규모는 6조3186억 원에 달한다. 상당수 대학들이 늘상 '공사 중'이라는 사실도 '돈이 없다'는 대학의 변명을 곧이 곧대로 믿기 힘들게 만든다.

하재철 분회장은 "시간강사들의 요구는 모두 정규직 교수를 보장해달라는 게 아니다.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선 엄청난 재정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고등교육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 예산은 0.48% 수준(2005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은 1.1%다. 이런 결과로 한국의 고등교육 민간재원 비율은 75.4%나 된다. OECD 평균인 29.6%의 3배 가까이 된다. 국가의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상당 부분 민간자본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에서 사립재단은 그에 필요한 비용을 학생들의 등록금과 시간강사 등 일부 고용인에 대한 착취를 통해 충당하고 있는 게 대학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고등교육예산 증액에 의지가 없다. 기획재정부가 제시한 2008~201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GDP 대비 고등교육예산 규모를 0.41%~0.43% 수준으로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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