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ff2009] 사회의 분열적 계급 정체성이 충돌하는 곳, <더 클래스>

[Film Festival] 메가박스유럽영화제 상영작 <더 클래스> 프리뷰

올해로 10회를 맞는 메가박스 유럽영화제의 상영작들을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허지웅 프리미어 기자, 신지혜 아나운서가 미리 소개한다. 프레시안은 영화제와 손잡고 이번 메가박스 유럽영화제에서 상영될 작품들의 프리뷰를 영화제 기간동안 게재할 예정이다. 메가박스 유럽영화제는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다시 만난 유럽'이라는 슬로건 하에 열린다. - 편집자 주

로랑 캉테의 이 영화는 현직 교사의 수기에 바탕한 것이라고 한다. 감독은 이 소재를 기록영화적인 수법으로 스케치하듯 찍고 있다. 카메라맨들이 현장에 입회해서 교사와 학생들, 교사들끼리의 대소사를 곁에서 지켜보듯이 포착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68혁명 이후의 민주화된 프랑스 교육의 실상이 잡히는 것 같고 아프리카계 인종이 흡수된 다인종사회로서의 프랑스 사회의 정체성도 부각된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주인공 프랑소와에게 프랑스어는 모국어이지만 그에게 수업을 듣는 상당수의 검은 피부 학생들에겐 제2 외국어일 수도 있다. 일례로, 아프리카 대륙 축구대회가 열리는 것에 수업의 화제가 미쳤을 때 흑인학생들은 모두 자기 출신 국가들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태어난 곳이 조국이냐, 살고 있는 곳이 조국이냐 라는 화두로 학생들에게 논쟁이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스쳐지나가듯이 소개된다. 교육이란 것이 사회화를 위한 통합적 기능에도 상당한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선생과 학생 모두 만만치 않은 시련을 겪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몰론 영화가 그런 것들을 내밀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대로 <더 클래스>는 파리 교외의 다인종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무대로 일상적인 수업풍경을 주로 보여준다. 이런 저런 사건들이 나오지만 대개는 이 학교에서 늘상 있을 법한 일들이다. 그게 형식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우리 입장에선 놀라울 만큼 개방적이다. 모든 수업이 토론식으로 진행되는데 아이들이 선생 말 한 마디에 꼬박꼬박 대든다. 그것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불성실한 학생들이 대든다. 학급에 대해 평가하는 자리에는 선생들뿐만 아니라 학급 대표인 학생들도 참여한다. 학생들은 선생들이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데도 지들끼리 킬킬대며 안하무인이다. 누구도 그런 학생들을 면전에서 제지하지 않는다. 교장이 수업중인 교실에 들어섰는데 일어서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교장은 말한다. "일어서세요. 복종이나 굴종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어른에 대한 예의입니다." 우리로선 경천동지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 <더 클래스>

프랑스의 민주주의 교육 시스템이야말로 형식적 완성을 이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해결 불가능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게 <더 클래스>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질문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제지간의 수평적 관계의 정립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이 영화의 질문이다. 주인공 프랑소와는 성실한 교사이고 학생들에게 억압적이지 않은 교사지만 그 역시 인간이다. 수업 중에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과 말싸움을 벌이다가 그는 학급 평가회에 참석했던 두 명의 여학생들의 태도가 몸파는 여자처럼 품위가 없었다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한다. 그의 말은 즉각적인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화제가 다른 것으로 눈덩이처럼 퍼지면서 거친 흑인 남학생이 욕설을 남발하며 교실을 떠나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 학생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프랑소와 교사의 적절치 못한 언행이 소문나면서 그도 곤란한 처지에 직면하게 된다. 사태를 무마하려고 하교 중인 학생들의 무리에 다가가 따지던 프랑소와는 거꾸로 선생의 일관되지 못한 언행을 공격하는 학생들의 말에 궁색해진다. 그 상황 직후 교내 식당에서 금연이라는 식당 아주머니의 타박을 들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프랑소와의 모습에서 우리는 민주주의 교육 시스템의 수평적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의 바람직한 위계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오래 전 프랑소와 트뤼포는 감옥과 같은 학교교육 제도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춘기 소년의 슬픔을 영화로 만든 <400번의 구타>로 영화사에 등재됐다. 아이가 제대로 크려면 400번 이상 맞아야 한다는 프랑스 속담을 제목으로 빌어온 이 영화의 현실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다음에 프랑스 사회는 많이 변했다. <더 클래스>의 교실에는 백인 학생보다 더 많은 흑인학생들이 있다. 선생은 이전보다 더 억압적이지 않지만 학생들은 더 반항적이다.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해 동기부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프랑스 사회에서 이제 교실은 사회통합적인 기능을 수직적으로 전달받는 공간이 아니라 바깥 사회의 분열적 계급적 정체성이 마구 충돌하는 곳이다. 그것에 대해 프랑스 학교는 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방학을 앞두고 선생들과 학생들은 비좁은 학교 마당에서 축구를 한다. 웃고 떠들며 그들은 즐거운 놀이를 즐기는데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선생과 학생들이 어울리는 기쁜 시간이다. 교실 바깥에서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은 해결된 게 하나도 없는 교실 안의 문제를 상기하게 만든다. 선생과 학생은 여전히 따로 놀고 선생의 가르침과 상관없이 학생들은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하긴, 늘 그렇지 않았던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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