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직접 감청 시대가 열린다"

[인권오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에 주목하라

지금 국회에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안이라고 알려져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통상 '휴대폰 감청법'이라고 알려져 있듯 실제 그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이동통신사에 감청설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통신 수단인 휴대폰에 감청이 개시되는 것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으며 반대 여론도 꽤 높다. 다른 한편으로 한나라당과 정부 측의 법안을 설득하는 논리 역시 이 지점에 주력하고 있다. "범죄 수사를 위해 유선전화를 감청하듯 휴대폰 감청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휴대폰을 감청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예외적으로 직접 감청을 허용하는 것이다.

통신의 비밀은 헌법 18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국민의 기본권은 국가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데 통신비밀의 경우 범죄수사를 위한 국가의 합법적인 감청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헌법 제37조) 그래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서도 범죄수사 등을 위하여 합법적으로 감청할 경우라 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는 그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현저히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허가하도록 하였다.
▲ 통신비밀보호법 반대 집중행동주간 선포 기자회견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도감청의 역사

과거 도감청 사건들의 역사는 기본권 제한의 원칙이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능욕당한 역사이기도 하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부 하에서 1961년 중앙정보부 내에 20명으로 구성된 과(課) 단위의 도청 조직이 유선전화 도청을 시작하였고, 1968년에는 60명의 단(團) 규모가 약 70만 명의 전화가입자를 대상으로 도청을 시행하였다고 한다. 역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부의 말기에는 1,000만 회선으로 전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한국통신공사가 발족하여 통신 도청을 협조 지원하면서 도청 대상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이들 군사정부 하에서 도청은 아무런 법률적 근거 없이, 중앙정보부와 1980년에 이를 개편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국군보안사, 검찰·경찰 등의 국가기구를 중심으로 당시의 체신부, 한국전기통신공사와 같은 하위기구의 협조 체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문민정부 들어 1993년 12월 비로소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어 법률적 근거 없이 시행되던 정보·수사기관의 도청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2005년 7월 21일 안기부의 불법도청테이프(일명 X-파일)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지면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통신비밀보호법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는 1994년부터 이전의 군사정권과 마찬가지로 도청을 시작하였으며, 안기부(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개편)에서 불법적인 도청전담 조직인 미림팀을 유지하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도청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안기부는 법원 허가 없이 유선 전화를 도청하였다.

더구나 야당으로서 처음 집권한 김대중 정부 하에서도 도청이 계속 이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1998년과 1999년 언론을 통해 "CDMA 휴대폰은 기술적으로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누차 확언하였던 김대중 정부는 이면에서 CDMA 이동통신 도청 장비를 직접 개발한 것으로 밝혀져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1996년 1월부터 디지털 이동통신이 상용화되자 전화국을 통하는 유선중계통신망 도청 장비인 'R2'(1998년 5월 개발 완료)와 이동식 이동통신 도청 장비인 'CAS'(1999년 12월 개발 완료)를 직접 개발해 8국 사무실에 장비를 차려놓고 도청에 활용했다.

도감청에 대한 통제를 늘려야

이러한 정보·수사기관의 불법 도감청을 통제하기 위하여 통신비밀보호법은 계속 개정이 되었다. 주요 취지는 도감청에 대한 법원과 국회의 통제를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통신비밀보호법은 정보기관의 비밀스런 불법 감청을 통제하는 데 사실상 무력하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불법 도감청에 대한 통제는 무엇보다 정보기관의 비밀 감청 권력을 제어하는데 그 핵심을 두어야 한다. 지금도 대개의 감청이 정보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더욱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 전화번호/아이디 건수별 감청 통계 (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 발표)

이한성 의원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유선전화, 무선전화, 인터넷 등 사실상 모든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장비를 구비해야하는 의무를 지운 점이다.(안 제15조의2) 이후에는 정보·수사기관이 직접 감청 장비를 운용하지 않고 간접 감청을 의무화하여 감청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안 제9조제1항제1호)

그런데 이 개정안의 핵심적인 부분은 그 뒤에 나온다. 간접 감청에서 정보기관의 일부 감청은 예외로 두었다.(안 제9조제1항제2호) 즉, 정보기관의 직접 감청을 허용한 것이다.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은 이 조항의 개정 필요성을 직접 역설하면서 외국인들은 전용선을 쓰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감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외국인 감청을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정보기관에 직접 감청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보기관의 감청은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서 유일하게 영장주의의 예외가 허용되어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에 대한 감청의 경우 법원이 아니라 대통령의 승인만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으며(제7조 제1항 제2호), 긴급한 경우 그나마 있는 대통령 승인조차 불필요하여 국가정보원장의 승인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긴급감청과 달리 외국인에 대한 정보기관의 긴급감청은 36시간 이내에 종료되는 경우 법원 등 어느 곳에도 통보할 필요가 없다.(제8조 제8항) 결론적으로 감청 대상이 정말 외국인인지 여부를 정보기관 외에 사전이든 사후이든 확인할 수 있는 입법·사법적 감독 구조가 현재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국가정보원의 직접 감청을 허용하겠다니.

이것은 매우 중대한 사태이다. 감청의 절대 다수를 집행하고 있는 정보기관에게 직접 감청은 허용한다면 '감청의 간접화'라는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아니, 평상시 감청 설비를 구비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비용을 통신사업자에 일임하고 정보기관은 필요할 때 찾아가서 감청하기만 하면 되니 역사상 최고로 간편하고 완벽한 감청 체계가 수립된 셈이다. 정보기관에게 법원을 비롯한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비밀스런 감청 권력이 부여되는 것이다.
▲ 법제사법위원장과 사회단체 면담 모습 (사진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국가정보원의 직접 감청 막아야

일반적으로 정보화는 감시권력의 범위와 능력을 신장시킨다고 할 수 있다.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권력의 감시 방식은 비인격적이고 전자적인 데이타 감시로 이동하며, 유선전화, 이동전화, 인터넷 등 모든 통신수단을 아우르는 통합감시가 가능해진다. 이는 미행이나 신체적 감시에 따른 피감시자의 저항이나 피감시자에게 노출되는 위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더욱 광범위한 사람들에 대한, 더욱 광범위한 정보를 보다 은밀하게 수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이다. 정보화가 고도화할수록 생활의 많은 부분을 통신수단에 의존하게 되는 만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정보 감시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통제되지 않는 감시 권력의 비대화는 수집된 정보를 권력의 토대로 하여, 국가 권력을 남용하고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 등 인권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불투명한 정보기관에게 불투명한 감청 권력 부여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직접 감청은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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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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